전출처 : 로쟈 > 김애란의 야간비행

창비주간논평(06. 07. 25)에 젊은 소설가 김애란씨가 나섰다. '야간비행'은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그 논평의 제목으로 쓰였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페이퍼의 제목은 '김애란의 야간비행'이라고 단다. 아울러 작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 올 정초에 이루어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도 자료 차원에서 옮겨다 놓는다.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가 현단계 한국문학의 듬직한 기대주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문단에 '김애란'이란 이름이 떠돌 때 나는 문단 마케팅의 일종이겠거니 하고 얕잡아봤었다. 하지만 얼마전에 읽은 그녀의 단편 '성탄특선'(<문학과사회> 여름호)은 마케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파워'를 느끼게 해주었다. <달려라, 아비>(창비, 2005)를 몇 주 전에 사다놓고 아직 손에 못 들고 있지만, 내 식으로 분류하자면 그녀는 현단계 '계급문학'의 가장 높은 성취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 논평 '야간비행'은 그러한 성취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살짝 엿볼 수 있도록 해준다. 작가의 계속적인 질주를 기대한다.

-상경 후, 처음 방을 구하러 다니던 날의 날씨를 기억한다. 8월이었고, 숨막히게 무덥던 날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비지땀을 흘려가며 낯선 동네를 헤매고 있었다. 서울 물정이라면 둘 다 무지했고, 가진 돈은 터무니없이 적고, 날은 대책없이 덥기만 했던 어느날. 그럴듯한 방을 얻지 못해 소가지를 부리고 있던 나를 길가에 한참 세워두고, 작열하는 도시 한복판에 서 있던 어머니의 얼굴은, 땀과 파운데이션이 뒤범벅된 탓에 진흙처럼 금방 흘러내릴 듯했다. 우리는 너무 지친 나머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집에 들러 얼렁뚱땅 계약을 했다. 이상하리만치 천장이 높은, 깊고 서늘한 방이었다.

-다행히 조건이 맞아 어머니는 내게 몇평의 애잔함을 떼어줄 수 있었다(*단편 '성탄특선'도 방, 이번엔 성탄을 맞아 그에 걸맞는 근사한 섹스를 남들처럼 해보려고 하는 커플의 여관방 구하기 이야기이다. 나는 작가적 체험의 밑바닥에 깔린 정서가 이 '지상의 방 한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남산 전망대에라도 올라가서 서울의 야경을 보노라면 그 수많은 아파트와 집들 사이에 정작 '나의 집' 한칸이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기이한 일이던가!).

-그날의 기다랗던 정오, 이 땅의 지난하고 유구한 상경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방을 구한 뒤, 머리를 맞대고 함께 팥빙수를 먹었다. 깊은 피로 사이로 투명하게 부딪치던 얼음 소리, 하얗게 질려 있던 여름 하늘.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수도(首都)의 볕은, 누군가를 미워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강렬했고, 어머니는 버스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연신 땀을 훔쳐댔다. 나는 멀어져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래전, 셋방을 스무번도 넘게 옮겼다는 아버지의 일기(日氣)도, 그날의 20세기 태양도, 저렇게 크고 어지러웠을까?’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나는 그날 우리들 머리 위로 떠 있던 크고 둥근 해를, 그 대낮의 따가웠던 서울의 빛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매일 몸을 뉘었던 방은 어둡고 선득한 곳이었다. 작은 문 안으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면, 세로로 놓인 관처럼 깊은 내부가 시원하게 나를 맞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방에 책상과 컴퓨터 등 참으로 학생다운 가재를 들여놓았고, 네모난 가구들이 만들어내는 깔끔한 각을 보며 흡족해했다. 나는 자주 밥을 거르고, 밤을 새우고, 술을 마셨지만, 스무살의 내 몸은 지나치게 건강해 아무 때고 벌떡벌떡 일어나 놀러 나갈 수 있었다. 음악은 잘 듣지 않았고, 책은 늘 엎드려서 읽었다. 빨래를 자주 미뤘고, 어머니에게 가끔 세금을 속였던 것도 같다.

-내 몸엔 아직 읽고 쓰는 습관이 배어 있지 않았지만, 이따금 나는 대가리가 커다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써보곤 했다. 시인이신 나의 스승이 좋은 문장이라도 한번 칭찬해주는 날엔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웃었다. 나는 그 작고 불편한 방에 신을 벗고 들어갈 때마다 이상하게 쉬러 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방을 구하던 날 이후 영원히 내 머리 위를 떠나지 않던 태양,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비록 고향을 떠나오긴 했지만 나는 내 몫의 그 작은 어둠과 고요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 몸에 꼭 맞는 그 육면(六面)의 어둠 안에서, 내 가슴팍을 향해 하늘에서 닻처럼 내려온 형광등 줄의 흔들거림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좋아했다. 딸깍이는 스위치 소리 한번에 세계는 일순 조용해졌고, 나는 반듯하게 누워 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지나간 빛을 한껏 빨아 통통해진 야광별들이 천장에서 총총 빛나고 있었다. '중국의 붉은 별'도, 루카치의 별도 아닌, 납작 엎드려 가까스로 빛나던 형광색 스티커들.

-그것은 이전 세입자들이 붙여놓은 무수한 별무더기였다(*나의 집 베란다 유리문에도 그런 별무더기가 붙어 있다). 나는 이사오자마자 그 별을 떼어내려 무척 노력했지만, 대체 어떻게 붙였는지 모를 정도로 그것은 손이 닿지 않았고, 희망처럼, 쓸데없이 접착력만 좋았다. 그것은 언제나 거기 있었기 때문에 보고 싶지 않아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보지 않을 수 없다면, 봐버리자고 생각하며, 꼼짝 않고 누워 야광별을 응시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거기 있는 별들의 수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나만한 크기의 몸을 가졌을 허약한 자취생들, 가진 것 없이 서둘러 몸을 섞었을 젊은 부부들, 월급과 적금, 어디론가 송금할 액수를 헤아리며 이마에 손을 얹고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젊은이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을 갖고 있었을 많은 사람들. 몇년째 책장에 꽂아둔 채 절대 읽지 않은 오디쎄우스는 아직 내게 '떠난다'는 말도 한번 못 붙여보고 있는데, '이 사람들, 언제 이렇게 많이 떠나오고 또 떠나갔던 것일까?'

-모처럼 찾아온 고요 속에서, 아늑한 어둠을 방해하는 발광물질을 보며, 나는 퍽 심란해했다. 아무래도 좋을 마음으로 '야광별 따위라니!'라며 투덜거렸던 것도 같다. 그런데도 나의 독립과 사생활의 의미는 어떤 통속성 안에서 저 별빛처럼 자꾸만 초라해지는 듯했다. '당신들의 계급'이 아닌 '우리들의 취향'이라는 말이 입속을 맴돌았고, 이 방이 내 방도 당신의 방도 아닌 우리들의 방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는 그것이 좀 불편했다. 내가 여름을 피해 들어온 곳이, 비지땀을 흘려가며 힘들게 도착한 곳이 결국 비슷한 삶들이 떠나오고 떠나가는, 붙인 별을 보고서야 '아, 밤이구나!'라고 안도할 수 있는 어떤 범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말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방의 크기와 높이를 떠나,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잘도 기어들어오는 그 가짜 빛들과 그 별들의 운동 안에서 나 역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루카치를 비틀자면, '야광별과 계급의식' 정도 되겠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결국 나는 별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 약하고 조금쯤은 천박하지만 그것들이 항상 빛 가까이에 있으려고 한다는 사실과 함께. 그 빛 역시 내가 알아야 할 빛 중에 하나라고 중얼거리며 말이다. 그곳을 떠난 지 몇해가 지났고, 그 방은 이미 헐려 사라졌지만, 이따금 나는 내 성정의 경박하고 아름다운 어떤 부분, 내가 껴안는 상스러움의 어느 부분들은 그 별들의 영향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토성의 영향 아래 있는 우울한 기질의 학자들처럼, 빛을 흡수한 뒤 천천히 사라지는 야광별빛의 영향을 받으며, 나는 길을 걷고, 물건을 사고, 가끔은 그 대가리가 커다란 모니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전화가 오면 다시 벌떡 일어나 놀러 나갔던 것은 아닐까 하고(*김애란, 혹은 '야광별의 영향 아래 있는 작가').

한국일보(06. 11. 06)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김애란씨 인터뷰

“누군가에게 어리다고 말하면, 나이가 아니라 그 말이, 그를 정말 어리게 만드는 경우가 있잖아요? 나이 뒤로 숨고싶을 때 있는데…, 이젠 그러지 못할 것 같아요.”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김애란(25)씨. 그는 2003년 대산대학문학상을 타며 등단해 이제껏 9편의 단편을 발표했고, 그것들을 묶어 곧 첫 작품집을 내게 될 신인이다(*물론 그 단편집이 <달려라, 아비>이다). 그리고 그는, 경력으로나 나이로나 가장 일찍 한국일보문학상을 탄 작가가 됐다. 그 결정은 파격이었고, 사건이었다. 4시간여의 격론 끝에 그를 낙점한 본심 위원들조차 자신들의 결정에 잠시 숙연했고, 한 심사위원은 “카메라 뒤에 숨어있어야 할 우리가 이 결정으로 하여 카메라 앞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쟁쟁한 선배들 틈에 끼어 본심에 올랐던 당선자 역시 놀랐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첫 반응을 먼저 전했다. “말씀을 드렸더니 ‘누가 장난전화 건 거 아니냐. 제대로 알아보고 다시 연락해라’하시더군요.” 정작 본인의 첫 느낌은 놀랍고 기쁘고…, 뭐 그런 것보다 먼저 ‘찡하더라’고 말했다. 호명된 자신의 이름 때문이 아니라 그 이름이 거느린 가난한 이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질문을 받은 기분’이라고도 했다. “그 질문이 온당한 것이라면 이제 제가 온당한 대답을 해야 할 차례지만, 그 대답을 오래 아껴두고 싶어요. 어쩌면 평생 두고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겠죠. 그렇더라도 서두르고싶진 않아요.” 그가 염두에 둔 질문은 대화의 다른 맥락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왜 쓰는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때문에’나 ‘~위해서’로 이어지는 많은 대답들, 너무 완벽하고 모범적이어서 오히려 거짓말 같은 대답들을 그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답을 구하고 그것을 정답이라고 믿다 보면 결국 속게 될 것 같아요. 차라리 죽을 때까지 몰랐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까지 궁금해 하면서….”

-그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화법도 얼굴 화장도 걸음걸이도 담담하다. 그의 소설도 대체로 그렇게 읽힌다. 당선작 ‘달려라, 아비’에서, 그는 아버지 부재와 가난의 상처를 이야기하지만 결코 고통에 신음하지도 통증을 내색하지도 않는다. 자위하듯 농담으로 얼버무리지도 않으며, 상처의 맥락을 사회화 역사화하지도 않는다. 그 상처는 극복의 대상도 화해의 상대도 아니다. “아픔을 농담처럼 말하는 것 역시 극복하려는 의지가 개입된 거겠죠. 제가 작품에서 말하게 된 상처는 대결이나 화해의 정향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어쩌면 처음부터 농담처럼 주어진 상처일 겁니다.”

-일각에서는 그 낯선 전술을 세대적 감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탈사회, 탈역사적 세대의 감수성이라는 게 그것이다(*김애란의 어떤 소설들이 그런 빌미를 제공하는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작가는 예민한 사회학적 시각을 갖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것이 이 작가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탈역사적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99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왔고, 지금껏 7년을 살았어요. 그 경험들이 저의 글 어디에든 묻어있겠죠. 곧 제 일상의, 동시대의 이야기를 한 겁니다. 제게는 세대적 공감보다는 계급적 공감이 컸어요.”(*바로 그것이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계급적 공감! 이럴 때 작가로 립서비스를 해주는군.) 

 

 

 

 

-그는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서 보여준 담담한 잔인성,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들이 지닌, 제시에 충실하면서도 뭘 제시했는지 모르게 만드는 은근함을 좋아한다고 말했다(*객관적으로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나름 조숙한 작가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 내용이나 형식이 아니라 전달하는 태도가, 어깨에 힘주지 않고 핏대 세우지 않는 진지함이 부럽다고 말했다(*나는 <달려라, 토끼>의 작가 존 업다이크가 언급될 줄 알았다). “김수영의 시의 치열하면서도 범박한 느낌과 아득한 유머감각…, 그런 거요.”

-그는, 뭔가를 써야겠다는 생각 없이 무의식이 던져주는 한 문장을 옮겨놓고, 그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부르면 계속 써나가는 방식으로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중반부쯤 이르러서야 작품의 구성과 결론을 구상한다는 것이다. “당선작도 그렇게 썼어요. 쓰다 보니 아버지가 뛰어들더군요. 말도 안 붙이고 계속 내버려뒀는데 계속 뛰기에 아버지 이야기가 된 거죠.”

-그는 초등학교시절 동시 숙제를 베껴 냈다가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있고, 그 부끄러움과 뿌듯함의 야릇한 감흥이 오래 남아 소설을 쓰게 된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다. 낯가림이 심한 그는 등단하던 해 겨울 현대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인연으로 시상식에 초대돼 멋 모르고 나갔다가, 그가 좋아한다는 성석제(당선자) 씨에게 인사도 못하고, 먹고 싶은 떡도 제대로 못 먹고 나왔다는 얘기를 웃으며 했다.

-그는 여행을 싫어한다고 했다. 귀찮다는 것이다. “이번에 상도 타고 했으니 그 싫어하는 일을 해볼까 해요. 상금으로 카메라 하나 사서 서울을 여행할 생각입니다. 장소로서의 서울이 아니라 관계의 공간으로서의 서울여행!” 문예지 겨울호에 발표할 단편 2편을 끝낸 뒤 써볼 생각이라는 첫 장편소설, 그 첫 문장을 던져줄 ‘무의식’ 공간으로 떠나겠다는 말일까(*그녀의 첫 장편소설을 기대한다).(최윤필 기자)

▲ 김애란씨는

1980년 인천생

199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입학

2003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소설부문) 수상

2005년 대산창작기금 수혜

한겨레(06. 01. 01) 김애란씨는 해가 바뀌어 세는 나이로 스물일곱 살이 됐다. 스물일곱이면 확실히 어린 연배는 아니다. 김승옥씨가 <서울 1964년 겨울>이나 <무진기행> 같은 소설을 쓸 때 나이가 스물댓 살에 불과했고, <광장> 역시 최인훈씨가 비슷한 연치에 쓴 작품이다. 현대문학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적잖은 작가들이 20대 초에 자신의 대표작을 발표하고 서른이 되기 전에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조숙한 천재들’의 시대도 아니고 미숙한 만큼 온갖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던 현대문학 초창기는 더더욱 아니다. 30, 40대에 등단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마흔 언저리의 작가에게도 언필칭 ‘젊은’이라는 관형어가 얹혀지는 시기다. 그런 점에서 김애란씨는 문단의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작가다.

-지난해 한국 문단이 거둔 최대의 수확 중 하나가 소설가 김애란의 등장이라는 데에 토를 다는 이는 많지 않다. 김씨는 물론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면서 등단했지만, 그의 이름이 문단 안팎에 강렬하게 각인된 것은 지난해 11월 하순에 출간된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창비)에서부터였다. 표제작을 비롯해 아홉 개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불과 한 달여 만에 판매부수 1만 권을 훌쩍 넘어서면서 연말 문단과 독서계를 달구었다.

 

 

 

 

-책 출간 이후 연말까지 그는 신문과 잡지 인터뷰 10여 차례에 방송 출연도 예닐곱 번을 하는 등 누구보다 바쁘게 세밑을 보냈다.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한동안은 전화기를 꺼 놓기도 했다. “그리 중요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말을 반복하고 다니는 게 쑥스러웠어요. 작품보다 이미지가 더 많이 소비될까 봐 걱정도 됐구요. 여러분의 관심은 과분하고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그에 대해 감탄하거나 투정할 일은 아니고, 조용히 책상 앞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었죠.”

-첫 소설집을 낼 때만 해도 그의 생각은 ‘평범한’ 직장에 취직해서 직장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책 출간 이후 청탁이 밀려들어오면서 가을까지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마감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취업 계획은 당분간 접었어요. 하지만 언젠가 취업은 정말 하고 싶어요. 작가로서 제가 건강했으면 해서예요. 소설이란 혼자 쓰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쓰는 거라고 믿거든요.” “그런데 (본의 아니게 유명해져서) 날 받아 줄 직장이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그는 웃었다. 젊은이답게 잘 웃고 감정에 솔직하지만, 동시에 신중하고 사려 깊은 면모도 뚜렷하다.

-지나간 2005년이 자신에게 어떤 해였는가 묻자 “질문을 많이 받았던 해”라고 재치 있게 받아 넘기더니 이내 진지해진다. “내가 어떤 인간인가 잘 알게 된 해였던 것 같아요. 마치 연애할 때처럼요. 왜, 연애할 때면 내가 모르던 나 자신이 잘 보이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작년은 내가 나 자신을 많이 바라본 해였어요. 때론 흥미롭게, 때론 걱정스럽게. 하지만 상황 한가운데 있어 보니까 내가 생각보단 약하지 않구나 싶었어요.”

 

-그렇다면 2006년의 계획은? “많이 돌아다니고 싶어요. 카메라 하나 사서 서울을 구경하고도 싶구요. 정해진 목적지 없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내려서는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다시 버스에 타서 모르는 곳으로 가고 하는 식으로요.”

-그는 자신이 처음부터 정해진 주제나 구상이 없이 일단 써 가면서 소설을 완성시키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제 작법을 낭만화하거나 신비화시키려는 건 아니고요, 처음부터 무얼 쓸지 알고 시작하는 것보다는 쓰면서 주제를 ‘발견’해 가는 게 더 즐거워요. 물론 다른 방식으로, 가령 취재를 해서 쓰는 경우도 있죠.”

-선입견과는 달리 니체를 비롯한 철학서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이 당돌한 신인은 “독자에게서 ‘마음의 답장’을 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최재봉 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젊은 문인들이 생각하는 문학

요즘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는 젊은 문인들은 문학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에 대한 유용한 지표가 될 만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교수신문이 대략 1970년 이후 출생하고 2000년 이후에 등단한 신진문인들을 상대로 가장 과대평가된 문인은 누구인가, 다시 주목해야 될 문인은 누구인가, 가장 주목하는 동료 문인은 누구인가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를 짚어보는 특집기사들을 옮겨온다. 소위 '2000년대 문학'의 판도와 실상을 이를 주도하고 있는 젊은 문인들의 의식과 시각을 통해서 이해하는 데 유익한 자료가 될 만하다. 기사에서의 강조와 군말은 나의 것이다.  

교수신문(06. 09. 23) 유사이래 문학작품의 물량이 지금처럼 넘쳐나는 때가 없었다. 몇년 전에 비해 발표지면이 10배 이상 늘어난 탓이다. 그만큼 새로운 신진들의 작품도 쏟아져 나오고 그에 대한 비평적 리뷰가 필요한 시점이다. 교수신문은 외재적으로 신세대를 조명하기보다는 이들 신진문인 95명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았다. 과연 이들은 전세대 문학전통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문학적 모티프를 어떻게 만들어왔고 또 만들어나갈 예정인지를 그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보고 이를 통해 향후 한국문학의 전개를 엿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편집자주)

[특집] 신진문인 의식조사(1) 조사결과를 보고

문학사가 보여주듯 어느 시기에나 문학의 새로움은 신진 세대들의 몫이었다. 2000년대 이후 문학판의 크고 작은 지각 변동 역시 기성문인보다는 새로운 세대들의 주도적인 움직임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런데 비평가의 촉수는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문학판의 흐름에 대해  이 새로움이 과연 어떤 진정성을 갖고 있느냐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그 진정성을 따지는 작업은 신진으로 부상한 문인의 작품을 읽고, 그 시비를 따지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 길만이 전부는 아니다. 작품보다는 신진 세대의 문학적 의식의 근저를 훑어보는 방법도 매우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그들의 문학적 토대를 형성한 선이해의 바탕과 그들이 선망하거나 비판하는 작가들을 눈여겨 살피는 길이 그 중의 하나이다.

물론 한 작가나 시인의 문학적 의식의 근저를 더듬는 작업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들의 문학적 의식의 토대를 형성한 요소들이 다양하고, 다층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수신문’에서 젊은 문인들에게 설문으로 들고 있는 항목들은 이들의 문학적 의식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징검다리가 강을 건너는 훌륭한 다리가 되듯, 여기의 항목들이 비록 일부일지라도, 2000년대 새로운 젊은 작가들의 문학적 지향 전체를 암시할 만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번 설문이 지닌 의미가 있다.

설문 중 필자의 관심을 끄는 항목은 우선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반응이다. 소설가들의 답변 비율이 동의 쪽으로 기울어진 듯하지만, 시인이나 비평가들의 입장은 동의할 수 없다는 쪽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보면,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학판의 상황이 위기감으로 팽배해 있지만,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의식의 근저는 무엇일까. 이는 자기세대의 문학에 대한 당위성과 함께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은 아닐까. 문학은 소생 불능이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고 진화해야 할 시대의 명확한 목표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 주체는 물론 젊은 작가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신세대 의식’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젊음을 갱신과 진화의 무기로 인식하고 있다. 기력이 쇠한 늙은 문학이 아니라, 젊고 건강한 문학을 통해 시대에 대한 전망을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그 젊고 건강한 문학이 과연 어떤 문학인가. 신세대의 화살이 어느 과녁을 겨냥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 물음에 간접적으로 답변을 얻을 수 있는 설문이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문인들, 과대 평가되어 비판이 필요한 문인, 새롭게 조명받아야 할 문인, 마지막으로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동료문인’ 등의 질문이다. 여기에 대한 신진 작가들의 답변은 매우 흥미롭다.

먼저 젊은 비평가들의 응답이다. 이들에게 비평을 문학의 한 장르로 인식하게 해준 김현의 존재는 여전히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김현은 우리 비평사에서 비평도 문학작품임을 실천비평을 통해 확인시켜 준 비평가다. 그런데 젊은 비평가들이 김현의 비평적 작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비평을 창작의 한 장르로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비평 행위를 작품에 대한 단순한 해석과 평가만으로 인식하는 선이 아니라, 문학예술의 장내로 적극적으로 끌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비평이 지닌 매혹을 경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비평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으로 이해된다. 시나 소설처럼 가독성을 지닌 비평이 존재할 때, 비평은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평이 창조적 비평만을 추구할 때는 텍스트에 대한 분석력과 현실에 대한 응전력을 방기할 가능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젊은 비평가들이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자들이 텍스트를 현실과 관련시켜 구심적이면서 원심적으로 꼼꼼하게 읽는 김우창이나 유종호 같은 비평가들과 현실 인식과 예술성을 함께 보여주는 황석영 같은 작가들이란 점이다. 이런 비평가나 작가들의 영향권을 무시할 수 없다면, 이들이 생산할 비평적 작업의 방향은 일방적으로 텍스트 자체에 함몰되거나 텍스트가 현실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전락되지는 않을 것이다.

젊은 비평가들이 자기세대의 문인으로 전성태에 주목하고 있는 점도 이런 측면에서는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의 소설이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리얼리즘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성과 함께 새로운 소설미학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비평가들의 고민은 자기세대의 모든 작가나 시인들이 문학성과 함께 현실성이 잘 융합된 작품만을 만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젊은 시인들의 설문응답 내용을 살펴보면, 이러한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만난다.

시인들의 응답에서, 자신들이 영향을 받은 시인들의 공통된 사항은 치열성과 실험성이다. 현존하거나 작고한 시인 중 영향을 많이 받은 시인들은 이성복, 김혜순, 백석, 김수영, 이상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들에게서는 현실성의 문제를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세대의 주목받는 시인으로 오면, 시의 경향은 실험성을 지닌 쪽으로 기울어진다.

젊은 시인들은 김경주, 황병승, 김행숙 등을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시가 지닌 상상력을 통한 실험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의 영역에서 실험성 짙은 작품들이 성행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소위 리얼리즘 시의 경향이나 서정시 계열의 시인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이미 주류에서 멀찌감치 밀려나 있는 형편이다. 영향을 받은 외국 문인으로 보르헤스나 보들레르를 우선 들고 있다는 점도 이들이 시에서 상상력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과장 평가된 시인의 첫 자리에 고은 시인을 두고 있음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젊은 시인들이 내세우는 새로운 형식과 실험 정신을 소위 미래파라고 명명하며, 그 가능성을 긍정하는 논의들이 일고 있지만, 아직 소통의 시문법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문학 위기론의 가장 큰 이유로 젊은 문인들 역시 독서인구 감소에 의한 문학시장의 협소 침체로 들고 있는데, 시의 영역에서 시도되고 있는 실험시들이 지닌 소통불능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이런 현실적인 과제를 풀기 힘들기 때문이다.

소설가들의 응답에서는 시에서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본다. 영향을 받은 주요 작가로 김승옥, 오정희, 조세희, 이상 등을 들고 있다는 것은, 젊은 작가들의 문학적 의식의 근저가 현실에 뿌리를 내린 상상력을 통한 소설미학을 추구한 작가들에 가닿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젊은 작가들이 자기세대의 작가로 주목하는 대상을 살펴보면, 김애란, 김중혁 등에 관심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 방식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백민석, 김윤영 등 자기세대의 젊은 작가를 새롭게 조명해야 할  대상 작가로 내세우는 것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된다.

설문 응답에 나타난 결과들의 개관을 마치면서 내리는 결론은, 젊은 문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지향점은 새로움이란 것이다. 이 새로움의 추구는 새로운 세대가 응당 져야할 작가의 몫이다. 자기세대의 문학판을 만들어 가야 하는 숙명을 지닌 자들이 문인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새로움의 추구가 오늘의 현실 속에서 얼마나 진정성을 지니는 작품으로 읽히느냐 하는 점이다.(남송우 / 부경대, 국문학)

[특집] 신진문인 의식조사(2)소설가

젊은 작가들은 아고타 크리스토프, 파스칼 키냐르, 레이먼드 카버에서 오르한 파묵, 살만 루시디, 프랑코 모레티, 척 폴라닉까지 퍽 다양한 독서편력을 보여줬다. 선호하는 국내 문인도 박상륭에서 김승옥, 오정희, 이인성, 장정일, 천운영 등 범주가 넓다.

그러나 “문학사적으로 과대평가된 외국 문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7명이 공통으로 “하루키”를 꼽았다. 응답자들은 하루키에 대해 “초기작은 좋은데 후기로 갈수록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아쉬움 겸 불만을 표했다. 이는 그만큼 “하루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그들의 삶”과 연관되는 부분일 수도 있다. 몇몇 작가들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하루키를 꼽기도 했다.

현존 국내 문인 중 ‘과대평가된 문인’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 이는 이문열이다. “작품의 질에 비해 지나친 문학 권력을 보유”했고, “매체들이 ‘위대한 작가’라고 칭송해 반감이 든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의 문학에서 ‘문학적인 무엇’을 바라는 일에 회의적”이며 문학 자체에 대한 “정밀한, 문학적 평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하루키와 이문열에 대한 평가는 상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춘원 이광수 또한 3명이 ‘비판이 필요한 문인’으로 꼽았다.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과장된 수사로 점철된 문인”이라는 것. 김동인에 대해서도 2명의 작가가 “작가적 이데올로기의 실체가 보이지 않”고 “습작기적 자태를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라고 평했다. 비교적 젊은 문인으로는 소설가 한강이 “특색이 없”어 “간혹 ‘누구의 목소리’인지 헷갈린다”고 언급됐으며, 김영하에 대해서도 “그의 문학에는 시대적 진정성이 없으며 그것은 전략적으로 제거된 것이 아니라 김영하 자체의 불완전함 때문이다”라는 일침이 가해졌다(*김영하에 대한 평가도 상식적이다. 다만, 한강에 대해서는 내가 별로 읽어본 바 없어서 잘 모르겠다. 최근에 읽은 그녀의 단편은 수작이었다).

문학적으로 새롭게 조명해야 할 문인에는 세 명의 작가가 이승우를 거론했다. 이승우는 영향을 많이 미친 작가로 거론되기도 했다. 1981년 스물 한 살에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등단한 그는 이후 <생의 이면> 등의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이를 작품을 통해 명쾌하게 결론내린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소설이 가볍지 않아서인지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는 않은 편이고, 평단에서도 인기 주제는 아니었다. 이외에 젊은 작가들은 제3세계 문학에 목말라했다.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문학에 대해서는 알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며 보다 많은 번역·연구·관심을 주문했다.

“주목하는 동료 문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5명이 ‘김중혁’을 꼽았다. 한 작가는 김중혁에 대해 “작품의 소재는 아날로그적인데 이것이 또 디지털적이기도 하다”며 “디지털 요소와 아날로그적 요소가 잘 결합돼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작가적 테크닉에 대한 부러움으로 보인다. 평론가 김형중은 “기능적 가치로부터 해방된 사물들을 작품 속에 수집함으로써 인간까지 해방시킨다”고 ‘김중혁 論’을 펼친 바 있다(*<문학동네>의 가을호 특집이 김중혁을 다루고 있다. 젊은 세대, 혹은 '레고블록 세대'의 감성이 나와 다르다는 걸 알겠다).

<달려라 아비>의 주인공 김애란은 주목받는 만큼 평이 엇갈렸다. “젊고, 잘 쓰고, 인기많은” 김애란에 대해 몇몇 작가들은 “지금의 평가는 80년대 출생이라는 문학 외적 사실, ‘아버지를 부정하는 방식’에만 과도하게 치중됐다”라거나 “잘 읽힌다는 점으로 과하게 주목받고 있다”라며 ‘김애란’ 자체보다는 ‘김애란’에 과도하게 주목하는 평단을 비판했다(*김애란은 주목할 만한 작가이다. 다만, 평단의 그 주목이 다른 작가들에게도 두루 할애되고 있지 않다는 건 문제를 제기할 만하다). 

신예 작가들은 몇몇 작가들에게만 주목하는 비평에 불만이 많았다. 한 작가는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문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조명은 누가 하는 것이냐”라는 근본적 문제를 제기했다. “조명 자체가 문학이라는 사건을 ‘무대화’시키는 것이며 누군가를 새롭게 조명하기보다는 조명받을 기회조차 없는 신인들에게 눈길을 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문학판 또한 얼마간은 '스타 시스템'에 의존한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문학판은 자본주의 체제 바깥에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

또한 ‘문학적으로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문인’으로 공선옥과 전성태를 꼽은 한 작가는 “비평가들이 자신들의 지평에서 담론을 펼치기 쉽거나 혹은 적합한 문학에만 먼저, 자주 손을 대는 경향이 있다”며 “김영하, 성석제, 전경린, 배수아 등이 그런 점에서 많이 노출된 반면, 훨씬 공력이 높은 공선옥, 전성태 등은 비춰지지 않는다”며 비판했다. 문학의 위기를 초래하는 내적 요인으로 “몇몇 문예지와 비평가 중심으로 문학 판도가 좌우되는 것”을 꼽기도 했다(*공선옥에 대해서는 판단유보이지만, 전성태가 공들인 작품들을 쓴다는 건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한국 문학 위기론의 이유’에 대해 신진 소설가들은 “독서인구 감소에 따른 문학 시장 협소”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 외에 “문학을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 “왜 한국 문학을 접해야 하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하는 현 교육 시스템의 결함”을 꼽기도 했다. 그러나 “문학의 위기란 문학 내생적인 것”, “세계문학사에 비춰보더라도 한국문학은 이제 시작인데 위기라고 생각하는 인식 자체가 문제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문학이란 더 이상 ‘위기’라고 부를 만큼 커다란 것이 아니며 개인적인 향유와 소통의 차원의 것이다”라는 답변도 나왔다.(박수진 기자)

[특집]신진문인 의식조사 (3)시인

젊은 시인들은 공교롭게도 애증의 사제지간으로 얽힌 고은과 서정주를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시인으로 평가했다(*이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다. 고은에 대한 평가에는 나도 동의한다). 한편, 주목하는 동료시인으로는 황병승과 김경주를 많이 꼽았다. 2000년 이후 등단한 시인을 중심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현존하는 작가 중에서 과대평가된 시인으로는 4명중 1명이 고은을 꼽았다. 이는 설문조사 문항 자체가 보기 없이 주관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젊은 작가들의 일반적인 인식으로 여겨진다.

고은 다음으로 이문열, 김영하, 신경숙 등 기존 문단에서 문학성과 상업성을 겸비했다고 인정받던 소설가들이 각각 2명으로부터 “과대평가 됐다”고 거론됐다. 작고한 문인으로는 “작품성보다는 권력 편에 선 삶의 과오가 컸다”는 이유로 5명이 서정주를 지목했다. 전세대를 매료시킨 서정주의 미학적 魔力은 통하지 않았다. 이 외에 기형도와 윤동주(3명), 김소월·한용운(2명) 순으로 나타났다. 교과서 첫머리를 장식하는 이들이 젊은 시인들의 의식 속에서는 ‘제대로 청산해야 할 과거’가 되고 있었다. 

70~80년대 민중시단을 선도했고, 한때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고은을 과대평가 됐다고 평가한 주된 이유는 “목청과 활동반경에 비해 그다지 개성적이거나 뚜렷한 문학적 성과를 남겼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창비가 만들어낸 가장 대표적인 '신화'가 아닌가도 여겨진다). 실제 작품보다 ‘주변인’들의 주관적 평이 고은의 ‘이미지’를 굳혔다는 얘기며, 나아가 “근작들이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혹평도 더러 있었다. 시인 서정주는 “작품성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민족에 대한 과오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과대평가된 문인에 올랐다. 이처럼 신인들은 ‘민족’을 중요시 여겼다.

결국 고은과 서정주는 사회적 활동이 작품을 압도한 경우로 해석된다. 기형도에 대해서는 “요절시집에 붙은 문학평론가 김현의 해설이 크게 작용”했고 이후 “요절의 상징이 됐다”, “작품의 폭이 넓지 않고, 암울하며 서술적이다”는 평가가 주어졌다. 한 응답자는 시인 진이정이 기형도 못지 않게 뛰어나지만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기형도와 진이정에 대해서는 나도 짤막한 페이퍼를 쓴 바 있는데, '기형도 못지 않게 뛰어난 진징정'이란 평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윤동주에 대해서는 “유약한 센티멘털리즘에 도취된 청춘”, “혁명가와  저항시”라는 수식어가 과장됐다는 평가다. 외국 작가로는 “태작이 많고, 상업추수주의”인 점을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4명)와 무라카미 류(2명)를 꼽았다. 작품활동을 하는 데 있어 영향을 받았거나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는 백석(10명), 김수영(8명), 이성복·李箱(6명), 보르헤스(5명), 김혜순(4명), 보들레르(4명) 등을 꼽았다.

지난해 ‘시인세계’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현대시 1백년 최고의 시집으로 백석의 <사슴>이 꼽히기도 했는데, 한 젊은 시인은 “외롭고 높고 쓸쓸하지만 단단한 갈매나무”라는 싯구로 백석의 시세계를 묘사했다. 고향과 추억, 언어의 순도, 유랑자의 시선으로 백석의 시는 많은 젊은 시인을 매혹시키고 있다. 이는 도회적 시가 유행하는 현대 시단에서 젊은 시인들이 향토적 서정을 갈망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인 김수영에 대해서는 “현실에 직면하는 詩作”, “치열함에서 오는 새로움”, “첨예한 의식으로 구성된 산문”이란 평가가 뒤따랐으며, 시인 이상에 대해서는 “치열한 부정과 혁신정신”, “실험정신과 문제의식”이란 수식어와 함께 “청소년기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고 문학정신을 배우고 싶다”며 거론됐다(*20세기 한국시는 점차 '백석이냐 김수영이냐'로 정리되는 듯하다).

현존하는 시인 가운데 젊은 시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시인 이성복에 대해서는 “문학에의 진정성이 돋보인다”, “치밀한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섬세한 감수성과 실험정신, 전통의 조화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현실에 대한 비유의 다양성과 시간초월성이 탁월한 작가”라는 추천사를 받은 보르헤스는 이 세대만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다(*개인적으론 80년대의 이성복이 그러한 문학사적 평가를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시인 김혜순에 대해서는 “초기작에 비해 최근의 시가 더 좋은 시인” , “최승자와 더불어 늙지 않는 시세계” 등 의 이유가 조심스레 들어졌다. “천상의 노래를 지상으로 끌어내린 시인”, “현대성, 현실에 가장 탄력적 반응을 보인 시인”으로는 보들레르가 꼽혔다. 이밖에도 신경림, 김지하, 박상륭, 오규원 등에 각 2명씩 답했다. 하지만 이성복과 더불어 80년대 시단을 양분했던 황지우 시인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탈-황지우'는 모처럼 눈에 띄는 현상이다).

새롭게 조명해야할 작고문인으로는 손창섭, 김종삼, 백석, 리처드 브라우티건 등을 각각 3명씩 거론했으며, 현존 작가로는 “노동과 삶의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준” 시인 김신용과 “도시적 감수성에서 자연, 사물의 존재성으로 돌아간 변화에 대해 주목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규원이, “자기철학을 운동으로 밀고 나가는 신념에 동감한다”는 이유로 김지하가 나란히 2명씩 추천됐다.

낯선 이름인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깨끗한 스타일, 전혀 다른 새로운 소설”이란 이유로  몇몇 젊은 시인으로부터 주목받았다.올 7월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 중앙)를 펴내 문단 안팎으로 주목을 받았던 시인 김경주는 동료시인들로부터 “서정과 실험이 적절히 어울어진다”, “철학적 사유가 독특하다”, “땅에 발 딛고 쓰는 시인이 없는 세상에서 대비되는 시인이다”라는 평을 얻었다. 이밖에도 김행숙, 이준규, 김애란, 진은영, 김언이 2명으로부터 추천됐다.

한편 ‘‘근대문학의 종언’에 동의하는 가’라는 질문에 젊은 시인들 21명은 동의하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12명은 동의 내지 부분적으로 동의한다고 답했다. 기타의견 2명은 문학은 ‘종언’이기보다는 ‘항상 시작’으로 여긴다는 마음가짐으로 답을 대신했다.

‘한국문학의 위기론’을 묻는 질문에는 “독서인구 감소에 따른 문학시장의 침체화”를 들었으나, “사적 생활로 흐르는 문학적 테마”, ”해외 유명작가들 베끼기에 급급한 상상력 부족”, “매너리즘 답습” 등도 문학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파악됐다. “인터넷 문화 약진으로 인한 문학의 위상 변화”, “변화에 인색한 문단”, “편가르기와 특정작가와 평론가의 상호인정으로 인한 권위 독점”, “저질 작품 과잉생산” 등의 의견도 잇달았다. 하지만 “위기론은 일상적 수사일 뿐, 한국문학은 독자와 너무 많은 소통을 원하는 건 아닌가”, “자본주의 구도에서 자리변화일 뿐 생산담론 형성이 더 중요하다”는 등의 희망적 견해도 있었다.

젊은 시인들의 주요 창작 모티프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 및 ‘독서’가 가장 많았다. 독서는 대부분 문학 외에 철학서와 예술, 영화관련서들을 많이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의 모든 것이 모티프”라고 말한 시인도 있었다.(신정민 기자)

[특집]신진문인 의식조사 (4)평론가

30대 젊은 문학평론가들은 현존 문인 가운데 소설가 이문열과 무라카미 하루키를, 작고한 문인 중에서는 시인 李箱과 서정주를 과대 평가된 문인으로 꼽았다.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문인으로는 소설가 전성태와 시인 황병승을 추천한 평론가들이 많았다. 이번 교수신문이 실시한 의식조사에서 문학평론가는 모두 31명이 참가했다. 30대를 중심으로 40대 초반까지 평단에서는 젊은 편에 속하는 평론가들이다.

문학평론가 31명 가운데 7명은 국내, 국외에서 과대평가된 문인으로 각각 이문열과 무라카미 하루키를 들었다. 소설가 이문열은 △정치적 발언의 의미 파장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의 결여 △초기의 탁월한 미적 재능이 단조롭고 틀에 박힌 정치적 의식으로 더 이상 전개되지 못한 점 △정신과 지향의 불구성 △봉건성 등 주로 보수 우파의 입장을 대변했던 정치적 행보에 따른 ‘과대평가’ 요인이 많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서는 지나친 상업성에 대한 지적이 많았는데 상품으로서의 문학, 세계시장과 문학의 관계에서 그가 미친 영향에 대한 성찰 필요, 일시적 유행 모드라는 지적이었다. 20살 초반의 감수성에 기댈 뿐이라는 혹평도 있었다.
이문열에 이어 고은(3명), 문태준(2명), 신경숙(2명), 공지영(2명)도 과대평가 문인으로 꼽혔으며, 답변이 적었던 외국에서는 하루키 외에 귄터 그라스(2명)도 비판이 필요하다는 응답이었다.

작고한 시인 李箱과 서정주는 각각 5명이 ‘과대평가’ 됐다고 말했다. 李箱은 그의 시세계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명과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인식이 많았고, 작품에 대한 신비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정주는 친일 행각과 전두환 정권 찬양 등 현실을 외면하거나 현실에 영합하는 태도와 문학권력에 의해 그의 작품들이 교과서를 비롯 대중들에게 많이 소개되는 바람에 다른 뛰어난 시인들의 작품이 사장되거나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새롭게 조명해야 할 문인으로 소설가 박태순이 유일하게 중복(2명) 답변이 나왔고, 공선옥, 김애란, 배수아, 임헌영, 장정일 등 23명이 거명됐다. 작고한 문인 가운데서는 김사량, 김종삼, 김소진이 각각 2명씩 의견이 모였다. 이태준 등 월북 작가 재평가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특히 김사량은 식민지적 삶의 극단적인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문학적 성과에 비해 전집조차 발간되지 못한 상황이 한심스럽다는 평가가 나왔다.

평론가들이 최근에 가장 주목하고 있는 문인으로 꼽힌 소설가 전성태(3명)는 종전의 리얼리즘과는 달리 그의 소설은 환상을 품고, 공간도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않는 다른 가능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크게 봤다. 여전한 문제의식을 다른 각도로 볼 여지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 모순의 진중한 고민도 한몫을 했고,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이유로 들었다.

시인 황병승(3명)도 주목하고 있었는데 시의 새로움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시의 정치성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게 해준다고 평가했다. 한 평론가는 “시는 황병승 전후로 나뉜다”라고 극찬했다. 생물학적 성을 넘어선 여성적인 비평, 폭넓은 교양과 작품을 보는 깊은 눈과 유려한 문체 등을 이유로 신진 평론가 신형철(2명)도 주목을 받았다.

문학평론가들이 시인, 소설가와 달리 가장 두드러진 의식을 드러낸 것은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데 대한 동의 여부 였다. 소설가는 동의한다는 입장이 앞섰고, 시인은 두 배 정도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나 평론가들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21명)이 ‘동의한다’는 답변(4명)보다 압도적이었다(*나로선 동의한다는 쪽이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자체가 고진의 관점에 원용하자면 이미 근대문학의 종언을 함축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문제제기의 진정성엔 동의할 수 있지만 한국적 맥락에서 굴절돼 논의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가타라니식 의제 설정 자체에 동의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한국문학 위기’의 원인을 묻는 질문엔 낯익은 비판들이 쏟아졌다. ‘독서인구 감소에 따른 문학시장의 협소·침체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으나 기타 의견도 많았다. “위기를 늘 품고 있어야 모색도 치열해 질 수 있다는 문인들의 자기 암시도 한몫을 한다”, “문학만 위기일까”를 들기도 했다. 또, 문학의 권력화와 아카데미화(대학중심의 문학판)에서 찾을 수 있다는 지적도 어김없이 나왔다. “절대적인 독서 인구는 결코 줄지 않았다. 한국문학은 지식독자층 뿐만 아니라 대중으로부터도 ‘왕따’를 당하고 있다. 작가들은 대학교수(평론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쓰고, 평론가는 그 장단을 맞추고, 그들이 쓴 평론(논문)은 오직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만 읽힐 뿐”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문학평론가들이 가장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선배 문인으로 황석영(4명)이 가장 많이꼽혔다. 다음으로 유종호, 오정희가 3명씩, 김우창, 백낙청, 조세희, 최인훈도 2명씩 응답했다. 외국의 문인 중에서는 밀란 쿤데라(4명), 가라타니 고진(2명), 귄터 그라스(2명), 마르께스(2명)가 ‘영향’을 많이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작고한 문인중에서는 ‘비평도 문학작품임을 일깨워 준’ 김현이 6명으로부터 헌사를 받았다.(김봉억 기자)

설문에 참여해주신 분들
고인환, 권오현, 김나정, 김대산, 김동윤, 김미정, 김양선, 김영찬, 김정남, 김종욱, 김형중, 류신, 복도훈, 안미영, 엄경희, 오윤호, 오창은, 이경수, 이선영, 이성혁, 이수형, 이재영, 이현식, 이희환, 장일구, 정재림, 조강석, 허병식, 허윤진 이상 30명. 가나다순.

06. 09. 23-24.

 

 

 

 

P.S. 결론 삼아, 젊은 문인들이 주목하는 동세대 작가/시인들을 꼽아보자면, 소설가로는 김중혁과 김애란(비록 논란의 대상이지만)이 대표주자라 할 만하다. 더불어, 앞세대 작가로서 <생의 이면>의 작가 이승우가 시에서의 이성복만큼 높이 평가된 것은 이 설문의 '수확'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평론가들이 주목하는 작가로 전성태, 시에서 황병승이 꼽힌 것은 수긍할 만하다. 김경주 시인이 거론된 것이 뜻밖인데, 내가 아직 접해보지 않은 유일한 시인이어서 그렇다(참고로, 최근에 내가 주목한 작가/시인은 백가흠과 이근화이다). 맛보기로 한 편을 인용해놓는다. 이게 또 왜 목련인가?!..

목련

마루에 누워 자고 일어난다
십 이년동안 자취(自取)했다

삶이 영혼의 청중들이라고
생각한 이후
단 한번만 사랑하고자 했으나
이 세상에 그늘로 자취하다가 간 나무와
인연을 맺는 일 또한 습하다
문득 목련은 그때 핀다

저 목련의 발가락들이 내 연인(戀人)들을 기웃거렸다
이사 때마다 기차의 화물칸에 실어온 자전거처럼
나는 그 바람에 다시 접근한다
얼마나 많은 거미들이
나무의 성대에서 입을 벌리고 말라가고서야
꽃은 넘어오는 것인가
화상은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다
문득 목련은 그때 보인다

이빨을 빨갛게 적시던 사랑이여
목련의 그늘이 너무 뜨거워서 우는가

나무에 목을 걸고 죽은 꽃을 본다
인질을 놓아주듯이 목련은
꽃잎의 목을 또 조용히 놓아준다
그늘이 비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Ritournelle > * 올해의 출판 트렌드 #1: 2006년 최고의 트렌드와 매혹적 단어들(진행중)

* 오늘 아침 조르지오 아감벤의 두 권의 책{호모 사케르: 주권군력과 벌거벗은 삶}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8)과 {예외상태}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5)과 함께 {한겨레 21}과 국내 모 인터넷 서점이 공동으로 기획한 '2006 올해의 책'이 도착했다. 원래 {한겨레 21}와 국내 모 인터넷 서점이 공동으로 기획하여 {한겨레 21}에 별책으로 실려 나온 것인데 인터넷에 따로 올려진 것이 없어 그 핵심 내용을 요약하여 옮겨 본다. 이를 통해 2006년도의 출판 트렌드를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을 것 같다.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다가 여러가지 재미있는 주제들이 담겨져 있어 꽤 유익한 소책자가 되었다.(* 이쯤되면 동문선 같은 출판사는 책 값을 한 만 원 정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감지덕지다. 내년에도 이렇게 독자에게 서비스를 해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듯 하다. 인터넷 시대가 돼도 '책'의 겉표지에서 풍겨나오는 삶의 내음을 맡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책자라고 하지만 분량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모두 세 번에 걸쳐서 내용을 옮겨 본다. 삶에 대한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요즘 나를 구원해 줄수 있는 것은 진정 '책'만 있는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유쾌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된 연유인가?  

1. 2006년의 책 트렌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여성 독자의 힘' : 그녀들이 달라지고 있다.

* 아무래도 이번 기획에 참여한 모 출판사의 도서 선정 위원이 여성이 많아서인지 2006년의 책 트렌드는 한마디로 '여성 독자들의 힘'으로 요약되었다. 여성 선정 위원은 2006년에 특히 '자기 관리' 분야가 하나의 독서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는데 여기에 여성이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컸다고 보고 있다. 여성관련 책들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타겟으로 삶고 출간된 책들인데 미혼에서부터 엄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출간되었다는 것이 특징적이었다고 한다. 먼저 아래와 같은 책들은 20대 여성들을 타겟으로 삶고 출판사에서 기획된 책들이다. 주로 전문직 여성들과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을 타겟으로 마케팅을 시도한 책들인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는다.(*물론 나는 이런 책들을 전혀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자기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저서들은 모두 '자본주의'에 적합한 표준형 인간형을 제시하고 그에 맞게 모든 인간들이 맞춰져야 한다라는 어떤 윤리적 명제들을 암묵적/무의식적으로 제시하는데 이 책들도 별반 다를 건 없는 것 같다)

* 다음으로는 엄마를 마케팅 목표로 삼고 출간된 책들은 {아이의 천재성을 키우는 엄마의 힘}(랜덤하우스 코리아), {내 아이의 10년 후를 결정하는 엄마의 힘}(큰솔), {내 아이 운명을 바꾸는 엄마의 힘}(빛과 향기)등이 그것이다. 선정위원도 그렇고 내 생각도 그렇지만 이 책들은 모두 '엄마의 힘'(*여기서 엄마의 힘이란 아이들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존재로 키우기 위해 필요한 '힘'이며 그것을 키우기 위해서 요구되는 그런 힘이다. 여자들은 미혼이었을 때에도 자기 자신을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포장을 해야 하고 어머니가 되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어떤 '강박관념'을 사회로부터 부여받고 그것을 또 '내면화'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런 책들이 계속 출간되는 것은 그러하다는 반영 아닐까? )

 

 

 

 

* 마지막으로 제시된 책은 바로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소설이다. 이 책은 전형적으로 '여성을 위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성 독자들이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고 한다. 선정위원들은 이 소설을 양귀자의 98년 소설 {모순}과 대비시킨다. 이 둘의 '사이'(-)에는 여성들이 참 많이도 변했고 그들이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도 너무도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책으로 그들은 {아내가 결혼했다}(문이당)이다. 여기서 그들은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하나의 '정치범'으로 묘사되는 반면, 2000년에 출간된 {결혼은 미친짓이다}(민음사)의 주인공 연희는 '사기범'으로 묘사된다.





 



2. 2006년을 매혹시킨 단어들

* 선정위원들이 선택한 단어들은 모두 14개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과학분야: 과학분야에서는 인간의 의식과 사고를 지배하는 '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해로 대표적인 저서들로서는 {꿈꾸는 뇌의 비밀}(지식의 숲),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이마고), {화성의 인류학자}(바다출판사),{마인드 해킹}(황금부엉이){마음의 진화}(사이언스북스), {뇌의 문화지도}(작가정신) 등이다. 

 

 

 

2) 논술: 논술시장이 점점 더 커지면서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것이 2006년도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이에 관련된 서적들의 출간이 봇물처럼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청소년 논술서적과 성인용 글쓰기 서적들이 동시에 팔리고 있는 것이 현재시점에서의 판도라고 할 수 있는데 선정위원도 동일한 평가를 내렸다. 선정위원들이 제시한 서적들로는 (글 고치기 전략}(다산초당), (글쓰기의 공중부양}(동방미디어), (전략}(들녁)등이 많은 인기를 끌었고, 아울러 대중적 교양수준의 고양시킨 {철학 콘서트}와 같은 책들도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울러 강준만의 논술 및 글쓰기 관련 책도 추천한다.)

 

 

 

 

3) 대안: 교과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올해 또한 하나의 트렌드로 제시될 수 있었던 것이 교육분야에서 대안 교과서가 유행한 것을 선정위원들은 꼽고 있다. 이러한 '대안 교과서'는 구체적인 학년과 교과과정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선정위원들은 다음과 같은 저서들이 특히 눈에 크게 띄었다고 제시하고 있다.  

 

 

 

 

 

 

 

4) 路: 길 위의 인생: 요즘에 주목하고 있는 특이점이지만 여행관련 저서들이 많이 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트렌드로 제시될 수 있는 듯 하다. 선정위원들은 '책 한권에 담에 담은 유럽'이라는 저서의 진화를 예로 들었고 그밖에 여행뿐만 아니라 이민과 관련된 저서들도 많이 늘었음을 강조한다.(*개인적으로는 쿠바에 관련된 여행 서적들이 많이 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5) 마음: 남 생각 말고 나부터 보듬어줘. 선정위원들은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기 개발을 하고 그에 필요한 저서들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심리에 침전하는 우회로를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 특징적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이른바 심리학 서적들의 난립이 그것이다. 특히 개인적 수준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과 그것을 하나의 '관점'에서 사고하려는 저서들이 많이 나왔던 것이다. 선정위원들은 이 "행복론의 핵심에 다양한 욕망을 버리고 가장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는 메시지(...)와 복잡하고 제어 불가능한 사회의 속도감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개인의 심리를 다스리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저서들이 주류를 이루었다(*여기에 개인적으로 {긍정의 힘}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6) 벌레: 언젠가 로쟈님이 벌레와 관련된 신간이 출간되었을 때(*정확한 책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멋진 페이퍼를 올려줬는데 '벌레'가 2006년도의 출판 트렌드 가운데 하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선정위원들은 "전세계에 사는 많은 생물 중에 가장 큰 무리라는 곤충을 다룬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왔다"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곤충 관련 저서들은 사회 생물학이나 혹은 초, 중, 고등학생 조카들이 있는 유저들에게 괜찮지 않을까? 선정 도서에는 빠졌지만 '토마스 아이스너'의 {전략의 귀재들, 곤충}들도 포함되면 좋을 것 같았다.

 

 

 

7) 신경제학: 마치 마뉴엘 카스텔의 {네트워크 사회}에 제시되었던 '신경제'의 시대를 패러디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선정위원들은 올해 특히 IT관련 분야에서 혁명적 전환을 만들어낸 '구글', '아마존'과 관련된 저서들이 인기를 끌었다고 평가한다. 선정위원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하고도 별로 상관 없는 저서들이라고 보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놓고 언젠가 볼 일이 있을까?(*참고로 알라딘에도 '웹 2.0' 관련 저서들은 정말 많다)

 

 

 

8) 안전: 이 키워드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를 떠올렸다. 이거 거의 직업병 수준이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선정위원들은 세계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겪게 되는 경제 불안정의 시대에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저서들이 크게 유행했음을 지적한다. 이른바 제태크의 시대를 창출하고 그것을 하나의 트렌드로 만들어낸 저서들이 그것인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파라니아 이야기}, {블루 오션 전략}등과 같은 류가 되겠다.

 

 

 

 

9) 지영: 내가 볼 때도 2006년에는 두 명의 '지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른바 '스타'(*한 명은 문학계의 스타이고 다른 한 명은 방송계 혹은 연예계의 스타이다)들이 신문지상을 완전 장식한 해이다. '공지영'은 내가 보기에도 작년과 올해에 문학계에 하나의 중요한 화두로 확실히 떠올랐다. 그녀는 작년의 '우행시'로 축약되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올해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등의 메가 히트급 저서들을 출간했다. 특히 {우행시}는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나는 이것이 대한민국 지성의 좌표를 가늠할수 있다고 본다(*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영화는 봤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인데 결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만한 수준은 아니다. 물론 그렇기때문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는지 모른다. 심오한 철학적 깊이가 있는 저서라면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한편 정지영이라는 한 인물은 우리나라 출판 업계와 번역의 공론장에 큰 치명타를 날렸다(*나는 이따위 허접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번역'이라는 공론장을 더럽힌 것에 대해 경멸의 쓴웃음을 짓는다). '마시멜로' 사건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사건을 놓고 봤을 때 정지영이라는 여자는 이른바 '명예'와 '인기'라는 마시멜로에 중독된 듯 하다. 번역을 자기가 안 했으니 마시멜로의 달콤한 중독이 가져올 파국적 상황을 예측했을리가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페일레스 > 프로의 세계에서 구워낸 '아마' 카스테라의 맛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민규
카스테라
문학동네, 2005-06-09

2005년 8월 13일 읽기 시작.
2005년 8월 15일 읽기 마침.

페일레스 peilles@gmail.com



  이보게, 세상은 자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일세.
  그럼 어떤 곳이죠?
  <스테이지 23>. 이 세상의 실제 이름이지.

  -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中

㉿, 코리언 스텐더즈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골프…… 비단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어느 분야에서도 치열한 생존경쟁, 일등만이 살아남는 그야말로 프로, 의 세계다. "국제사회가 다 엉망이" 되도록 폭력을 써서라도 제압해야 한다. 결국 폭력은 "지양止揚해서, 지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강좌, 세미나, 부흥회, 워크샵, 클리닉……을 통해서 권장된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계를 조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경제학이 있는 한" 폭력을 조장하는 "시장市場은 이미, 우리의 운명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런 사회에서 "한 마리의 도도새처럼 태평한 마음"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은, "마음을 단단히 잡수셔야" 한다. 왜냐하면 "누가 뭐래도, 지금 우리는 후기산업사회를 살고 있"으니까.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당신도 군대를 다녀오면, "매사가 긍정적으로 여겨"지고, "짜증은 눈 녹듯 사라지고", "취업을 준비하는 성실한 학생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갑자기 확 고도산업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 느낌"이 들어도 세상에는 '산수'라는 게 있다. 그 산수를 맞추기 위해 사우나에서 부장에게 거시기도 대 주고, 아침에는 푸시맨, 저녁에는 주유소 알바, 밤엔 편의점 알바를 뛰어야 한다. 친구 집에서 빌붙는 아침 식탁에서 나만 계란후라이가 빠질 수도 있다. 냉장고 위에 계란 두 판이 있어도 말이다. 아, 예예. 라는

  대답이 자기도 모르게 나오지만, 이렇게 산수를 맞추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니까. "왜, 이 열차는

  삶은, 세상은, 언제나 흔들리는가. 그렇게" 물어도 소용없다. "참치도 인간도, 결국은 밀실에서 살아"가고, 죽어간다. "세상에 뭐 이딴 게 다 있지?" 어쩌면 "너무 그렇고 그"런 이

세계는, 이미 한 마리의 괴수일지도 모른다

  별 수 있겠나. 일단 적응해 본다. '방'이 아닌 '관' 같은 곳에서 "온순한 한 마리의 열대어와 같은 가스를" 방류하고, 우아하게 걸으며, 오래된 밥을 먹는 방법을 터득하고, 웅크린 채 잠든다. 헤드락을 피하기 위해 바벨을 들어올리고, 프레스를 하고, 푸시업을 하고, 신경안정제를 주식으로 삼는다 - 그리고, "한 마리의 도도새처럼 태평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헤드락을 돌려준다. 아침의 러시아워, 넘치다 못해 터지는 지하철에 타는 사람들의 "머릴 누르고, 막, 등을 팔굽으로 찧고, 밀고, 그"래 본다. 그러면 "경제도 차차 좋아질 거"고, "무디슨가 어디서 우리의 신용등급이 또 한 단계 올라"설테니까. 그래도 들리는 대답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환장할 노릇이군". 여기 저기로 가 본다. 먼저 모습은 있지만 모습을 잃은失像,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농촌'으로. 그런데 그곳엔 "우릴 너무 잘" 아는 UFO가 이삭을 쏙쏙, 빼가고 있었다. 이런 젠장. 그럼 오리배 '라-47호'를 타고 퐁당퐁당, 미국으로 캐나다로 브라질로 다시 미국으로, 페달을 밟아 건너가 본다. 그런데 거기 역시 "춥기도 하고, 또 수납공간도 많이 필요"하고, 살 것도 많다. 아, 정말 뭐란 말인가. 이놈의 세상은. 이놈의

  세상이 개복치인지 세상이 대왕오징어인지 세상이 거북이 위에 놓여 있는지. 코스모를 느끼고 싶다. 정말로, 궁금하다. 그래서 '9호 구름'을 타고 우주로 나가보지만,

  "다른 행성의 존재에게 알려주기엔, 인류의 몽따주는 얼마나 슬픈가". 그래서,

  화성인들은 좋겠다. 금성인들은 참, 좋겠다.

  이제, 카스테라를 구울 때"다. "어렴풋이, 우리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카스테라

  의 재료를 고르는 "원칙은 둘 중 하나 - 소중하거나, 세상의 해악인 것". 그 모든 것을 "반죽한 후 빛이 나올 때까지 오븐에서 굽는다 - 인류를 위한 마음으로", 아니 꼭 인류가 아니어도 좋다. 아무튼 중요한 건 "노력 여하에 따라, 우리의 지구는 전구電球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니까.

  지미 헨드릭스가 데뷔작 <Are You Experienced>를 발표했을 때, 그건 '프로'의 세계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비틀즈가 <She Loves You>를 들고 나왔을 때도, '프로'는 아니었다. 무라카미 류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발표했을 때 역시, '프로'의 세계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박민규의 <카스테라> 역시, 그렇다. 그들은 아마,

  1. 계란과 밀가루를 반죽한다.
  2. (지구라는 오븐의) 문을 연다.
  3. 반죽을 넣는다.
  4. 문을 닫는다.

  의 과정을 통해 카스테라를 구웠을 것이다. 이 카스테라를 구울 수 있다면, 프로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돈 받고 파는 카스테라를 사는 게 아니라 직접 제대로 된 '아마' 카스테라를 구울 수 있다면, "우리의 지구는 전구가 될 수도 있다".

  내일부터, 나도 카스테라를 구울 생각이다.


목차

카스테라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아, 하세요 펠리컨
야쿠르트 아줌마
코리언 스텐더즈
대왕오징어의 기습
헤드락
갑을고시원 체류기


책 속에서

  원칙은 둘 중 하나 - 소중하거나, 세상의 해악인 것. - 29쪽

  때로 새벽의 전철에 지친 몸을 실으면, 그래서 나는 저 어둠 속의 누군가에게 몸을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밀지 마, 그만 밀라니까. 왜 세상은 온통 푸시인가. 왜 세상엔 <푸시맨>만 있고 <풀맨>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왜, 이 열차는

  삶은, 세상은 언제나 흔들리는가. - 91쪽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이다. 인류의 나이는 300만 년이고, 나는 스무 살이다. 누가 뭐래도 세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한다면 자본주의의 나이는 고작 400년에 불과하다. 나는 아무래도 그쪽이 편했다. …… 그런 이유로, 나는 지구와 인류보다는 자본주의와 함께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늙어간다. - 10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드팀전 > 한국축구가 맨날 4강갈꺼 같으냐?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저기서 박민규...박민규...박민규..한다.한때 신해철이 교주로 나왔을때 신해철..신해철..해대더니....아무래도 프란체스카 시리즈 4쯤에는 박민규도 뱀파이어 가족으로 등장할 듯 하다.소설 별로 안보던 사람들도 박민규 소설 보면 재밌다고 난리다.<지구영웅전설><삼미슈퍼스타즈>...2타수 2홈런이다.조만간에 메이저리그뉴욕 양키즈팀에 스카웃되서 올드트래드포드 스타디움에서 레알마드리드의 앙리하고 스킨스게임을 할 것 같다.(어때 박민규 스럽지...ㅋㅋ )

박민규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있고 즐겁다는 것이다.때론 그 즐거움이 약간의 황당함을 동반하기도 한다.하지만 이 황당함은 엽기라는 코드에 익숙한 인터넷 세대에게는 전혀 어색하지 않을 수 있다.기발한 상상력만 가지고 그가 교주노릇 하긴 힘들다.그에겐 그 스타일의 근저에 있는 무언가가 있다.그 컨텐츠가 담고 있는 주제의식은 박민규 소설을 안팎으로 단단하게 만든다.

단편집 <카스테라> 역시 전작 <삼미슈퍼스타즈>의 주제의식의 선상에 놓여있다.그의 주제의식은 단연코 "속도에의 저항"이라고 말 할 수 있다.'속도에의 저항'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며 근대화에 대한 반항이다.또한 남들의 시선에 대한 뿌리침이고 붕어빵같은 현대인들의 가치에 대한 돌팔매질이다.이를 형상화해내는 박민규의 주인공들은 그래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들이다.세상은 그들을 '낙오자' 또는 '무능력자'라고 한다. <너구리>의 과장이 그렇고 <기린>의 아버지가 그렇다.<펠리컨>의 사장,<갑을 고시원>의 김검사 역시 마찬가지이다.박민규의 주인공은 스스로도 주눅들수 밖에 없는 멀쩡한 소외자들이다.단편집<카스테라>전반부는 소외자들의 변신에 힘입어 동물농장이 된다. <너구리>의 인턴사원은 세상의 속도에 따라가기 위해 상사의 동성애를 눈딱감고 허용한다.눈물이 난다.뿌연 목욕탕 김 속에서 너구리가 '다 안다' '다 이해한다' 는 이해와 동병상련의 눈길을 보낸다.강한 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너구리의 세상에 주인공도 발을 내밀었는지 모른다.어느순간 주인공 역시 속도를 따라가는 인간이 되어보려고 하겠지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기린>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이다.온몸이 쪼개지는 아르바이트에도 답은 보이지 않는다.무능력한 아버지를 지하철안으로 푸시하는 아들의 마음은 어떨까?인간이 짐짝처럼 변해버리는 지하철,조금이라도 늦지 않기 위해 늦어서 너구리로 변해버리기 전에 남들보다 빨리빨리 움직인다.그렇다고 인간세상에 답이 나올까는 의문이다.결국 모든 걸 버리고 잠적한 아버지는 너구리 대신 기린이 되었다.그게 기린이면 어떻고 너구리면 어떻고 대왕오징어면 어떻겠는가?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상황이고 또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동물과 인간 사이에 위치시키는 사회라면...

단편<카스테라>의 후반부는 변신의 황당함에서 조금 빠져나올 수 있다.<코리안 스텐더드>같은 경우는 박민규가 조금 더 직접적으로 신자유주의와 기득권화된 진보세력에 침을 뱉는다. 지금은 소시민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잘나가던 운동권 선배들은 하나둘 정치권에 투신하여 성공을 거둔다.또 일부는 강남에서 최고의 학원강사로 룸살롱 매니아가 되어 있다. 그중 농촌 공동체를 운영하는 한 선배로 부터 연락을 받는다.그나마 지양해야할 것을 지양하면서 살아온 선배이다.뭔가 귀찮기도 하지만 아무도 그를 돕지 않는다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낀 주인공은 그를 찾아간다.선배의 농촌은 다른 농촌마냥 망해가고 있다.특히 외계인들의 공격이 가장큰 문제였다.외계비행접시는 무엇인가? 냉전시대 미국헐리웃 영화는 외계시리즈로 돈을 많이 벌었다.어느 평온한 도시에 갑자기 외계인이 들이닥쳐 다 부수어댄다.항상 그렇듯 평화는 작은 소시민영웅의 활약으로 찾아온다.냉전시대 침략하는 외계인은 소련이었다.영화를 통해 소련의 존재가 늘 우리의 평화를 깰수있다고 프로파간다 했던 것이다.박민규는 이를 한번 쉽게 틀었다.이 단편에 등장하는 UFO는 그냥쉽게 생각해도 신자유주의 농업자유화 압력이다.옥수수도 털어가고 소도 배불려 터뜨린다.농촌은 그렇게 초토화된다. 특종을 위해 아무리 UFO를 찍어도 기록에 남지도 않는다. 우리의 현실도 이와 같다.아무리 농민들이 죽는다 죽는다 해도 TV팔기 위해 자동차팔기 위해 라고 덮어버린다.업체야 그렇다 쳐도 일반 서민들까지 그런 프로파간다에 넘어간다.그리고 그냥 그런지 안다.아니면 아무생각 않고 살던가....

<헤드락> 역시 자본주의 폭력에 대한 부분이다.물론 소설이 헤드락이라는 물리적 폭력의 대상이 주체화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하지만 꼭 물리적 폭력만 의미하는 바는 아니다.부르디외의 상징폭력으로 이해하는것이 맞을 것이다.헤드락 학원이란 것은 상징투쟁에서 권력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우리가 애들 윽박질러 공부시키고 학원보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남들 이겨서 잘나가라는 뜻 아닌가.결국 상징투쟁의 승자가 되길바라며해 헤드락학원에 보내는 것이다.이러한 자본주의의 폭력은 대상이 곧이어 주체가 된다는 특징을 갖는다.지지리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졸부가 되면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한다.개구리 올챙이적은 죽어도 생각하지 못하는게 자본주의의 속성이다.그 시스템 안에서는 세상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도 못난놈은 더 괴롭혀야 직성이 풀린다.헤드락의 쾌감이 손끝에 남아있다.돈 주고 라도 헤드락을 해야한다.또 누군가는 헤드락 당한자의 모멸감에 이를 갈며 근육을 키운다.야...좋다.자본주의 동물의 왕국.폭력의 끝없는 순환이다.

박민규의 세상에 대한 시니컬함,소외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또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대한 연산을 자기식 '산수'로 돌리자는 주제의식...이런 것들은 간단명료하면서도 명쾌하다.그래서 즐겁게 읽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하지만 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도 있다.

우선 박민규의 말장난은 내개 전혀 신선하지 않다.그의 말장난을 이해하려면 최근의 대중문화를 좀 알아야한다.물론 몰라도 책읽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냐만은...박민규는 자신에게 엄청난 세례를 내려준 미국 대중문화에 패러디를 통한 경의를 표한다.최소한 경의는 아니라도 그의 의식속엔 69년 우드스탁이 아마 최고의 락 공연이었을 것이다.(박민규는 68년 생이다.) 박민규의 세대가 미국 대중문화의 피폭세대이니 이해는 간다.독자는 지미 헨드릭스가 누군지 알아야한다.우드스탁에서 쌩쑈를 하던 것 까지 알면 더 좋겠지."너 경험했봤니" (원제를 이렇게 한국말로 쓰니 가볍게 신선할지 알지?) 이런거라면 나도 자신있다. 딱정벌레의 "네 손을 잡고 싶어" 무지개의 "어려운 치료"  라디오 머리통의 "탈출용 음악" ...슬레이와 패밀리 스톤도 알아야하고 마빈게이의 '브라더 브라더"라고 시작하는 "도대체 무슨일이야"도 알아야 한다. 이 세대는 어찌나 미국 음악들을 많이 들어댔는지 당시 라디오에선 외국팝이 다 미국 팝은 아니다..라고 알아서 걱정해주면서 가끔 아말리아로드리게스나 조르주 무스카키의 청승맞은 노래들도 틀어주었다.그럼에도 역시 주류는 미국 대중문화였다.21세기 히피를 지향하시는 박민규 옹께서도 완전히 폭격받으셨다.박민규 옹의 스타일도 60년대 플라워 무브먼트 시절 미국 대학생들 하신 스타일과 똑같다. 박민규의 말장난-이걸 패러디라고 하자-은 2천대로로 넘어오면서는 유럽축구쪽으로 넘어간다. <야쿠르트아줌마>에는 핀투,콘세이상,피구가 등장하고 <헤드락>에는 헐크호건이 등장한다.조금 지나면 효드르와 크로캅이 등장하리라.라디오책 뒤의 평론가는 '이종격투기 어쩌구' '정크'어쩌구 했다.... <이러한 말장난-패러디-가 포스트모던의 특징인가? 특징이던 아니던 상관없다.난 별로 흥미롭거나 재미있다고 생각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했다.먼저 도연명과 고스톱을 치고 있던 네드베드에게 물어봤다. 네드베드 "박민규의 장난이 재미있니?" 그랬더니 옆에서 광팔고 죽었던 키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칸토나가 끼여든다. "우리이름 쓰는 것도 저작권 받아야되는 거 아니야?"  이미 두판을 내리꼴은 시꺼먼스 아베베가 맨발을 벅벅 긁으며 '나 이판 지면 일어날란다." 한다.그때 부엌에서 어기정 어기정 브라질에서 찾은 좋은 오렌지로 만든 쥬스를 들고 이번년도 아메리칸 아이돌 우승자 판타시아가 폴라압둘과 함께 들어온다. "따봉 드시고 하세요"  ...도연명이 눈쌀을 치뿌리며 "니네들 그렇게 떠들면 다 알카트라즈로 보내버린다"고 고함을 친다.그때 갑자기 알카트라즈가 눈앞에 나타났다.박민규가 친철하게 주까지 달아서 설명해준 잉베이 맘르스틴-영어명 잉위맘스틴-이 당시 보컬리스트 조린 터너를 데리고 기타를 철장으로 마구 던져버린다.

순간 논란 나는 조용한 성격의 에바케시디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지 조언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라면 천천히 혼란을 정리하고 내개 답을 줄꺼야'  불행히도 케시디는 항암치료 받으로 병원에 갔다고 한다.대신 집에서 가정부로 있는 매염방이 뭐라 한마디 거들고 싶어한다.하지만 난 중국어를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결국 다시 고스톱 판으로 돌아갔다.밤샘 고스톱에 다들 지친 모습이다.그때 막 도착한 젊은 친구가 있었다. 낯이 익다.180을 넘는 키에 작은눈.얼굴에는 아직 소년끼를 벗지 못한 여드름.동양인이었다.나는 옆에 있는 사라포바에게 그 친구 누군지 아냐고 물었다.그녀는 "제가 요즘 뜬다는 박주영이래요"한다.그래서 나는 말도 잘통할 것 같은 그 친구에게 "박민규 재밌나요?" 라고 물었다.한참 뭔 소린가 머뭇거리던 그가 .... 이렇게 말했다 ." 점점 할수록 자신감이 생기구요.이기는 법을 알것 같아요." 

1절)타잔이 10원짜리 빤스를 입고 20원짜리 칼을 차고 노래를 한다 ..아아아...

2절)타잔이 10원짜리 빤스를 입고 20원짜리 칼을 차고 노래를 한다...아아아...

3절)타잔이 10원짜리 빤스를 입고 20원짜리 칼을 차고 노래를 한다...아아아..

박민규는 앞으로 잘해야된다.한국 축구가 맨날 4강 갈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