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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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을 힘들여 읽는 걸 좋아한다. 책장을 넘기는 손이 땀 때문에 약간 촉촉해지는 상태를 좋아한다. 애쓰지 않아도 나를 이렇게 만들어주는 책이 있다. 이 과정이 좋아서 나는 책을 고르고 산다. 올해 책장을 하나 더 들여놓을만큼 책을 사랑하고 소유한다. 그 중에서 한 권을 고르라면 당연히 못 고른다. 하지만 올해의 책으로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간직하고 싶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을 꺼낼 때마다 2020년을 기억하고 싶다.

나는 부모님이 하숙집을 하셔서 타인들과 함께 살았다. 자이언티의 '꺼내먹어요'의 가사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 거야'가 적절한 표현이었다. 시트콤처럼 활기찰 때도 많았지만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도둑이 들어와도 도둑인지 모르고 말을 거는 상황도 있었다. 아무튼 나는 누구나 다 아는 '집'을 몰랐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내가 올해 읽은 어느 책보다도 진솔하고 힘있게 자신이 거쳐온 '집'과 일상을 전한다. 연극을 전공한 나는 '공간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자주 생각하는 편인데, 그런 생각의 예시를 이 책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배경은 영화처럼 계속 바뀌지만 읽는 내내 나는 연극의 무대를 바라보며 느끼는 생생함을 느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어떨까?

집을 바라보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을 그만두고 나서 자발적으로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몇 년동안 글쓰기란 생계유지를 하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글, 원고료가 입급되지 않는 글은 쓰지 않았다.

오래 전 만들어놓고 사용한 적 없는 블로그를 다시 개설했다. 공개 글에는 오래된 빌라를 선택한 이유나 인테리어 공사 과정에 대해 썼고, 비공개 글에는 사적인 이야기들을 썼다. 어느 날 블로그에 새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렸다. 포털 사이트 첫 화면에 내 블로그의 포스트가 소개되어 있었다. 10만 명이 넘는 방문자가 다녀갔고 해당 포스터에는 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p.128-129

나도 글을 쓰고 집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이 많은 사람이 봤다는 글을 접하지 못했다. 이렇게 책으로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의 깊고 진한 밀도가 좋았다. 나는 자주 나만을 이 세상의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시간인 것처럼 공간인 것처럼 보고 듣고 느낀다. 일상이 너무 정신 없으니까, 그렇게 변명을 자주 하곤 해서 그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무언가가 늘 필요하다. 당신도 그렇다면 두 손에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이 글에 선물할 때 쓰는 넉넉한 마음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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