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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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마무리하는 2020년 여름,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죽음에 대해 평소처럼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죽음의 일상성을 말하며 누구나 죽음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해왔지만 전세계 수많은 사람이 유행병으로 사망하는 '비일상' 앞에서야 죽음을 배우는 시간을 갖게 된 것 같다. 사람들은 코로나19가 바꾸어 놓을 인류의 미래를 앞다투어 예측하지만, 정작 바뀌지 않을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 혼란의 시기에 우리가 주지해야 할 것은 유행병의 위협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있어왔던 일이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못 고칠 병이 없는 것처럼 허풍을 떨던 현대의학에게 자연은 그것이 망상이었음을 혹독하게 교육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코로나,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라는 표어처럼,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19를 유발한 바로 그 현대 문명이 죽음을 물리쳐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자연은 싸워 이겨야 하는 상대가 아니다.우리의 삶의 어떤 순간에도 죽음은 찾아온다는 것, 그것이 『죽음을 배우는 시간』의 가장 첫 메시지다.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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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가장 새로운 인식이 담겨있다고 느낀 책이다. 이게 내가 고작 6 페이지를 읽고 직관한 생각이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죽음에 '인식'을 더하는 것이 평면적이었다. 인식보다는 '경험'이 이 복잡하고 우여곡절인 죽음에 어울렸다. 뉴스 기사에 숫자로만 접하는 죽음, 그 숫자가 전부 사람이라고 바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경험의 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미래에 두는 일은 낙관적인 삶의 방식이었고, 이제 죽음은 누구나의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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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학년 제일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피부과, 성형외과와 같이 노동량 대비 수입이 만족스럽거나 아니면 영상의학과처럼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 과들을 선택한다. 나도 머지 않은 장래에 환자가 될 것을 생각하면 그런 현실이 두려워서 가끔 몸서리 쳐진다. p. 16

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이 죽음에 준비되지 않았던 의사들에게 거꾸로 죽음을 가르쳐준다. 죽음이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즉 어떤 이에게만 벌어지는 특별한 비극이나 천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렇게 나는 의사로서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을 점차 배워갔다. 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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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으로 사람은 성장한다. 부모가 나이 들어갈수록 자식은 성장한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도 성장도 필요하다. 특히 의사에게는 무수한 환자와 그들의 죽음, 자기반성이 뼈 아프게 반복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그렇게 그들은 사람을 살리는 유능함을 괴롭게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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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때 승압제를 올리거나 심폐소생술을 했더라면 며칠, 아니 몇 시간은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은 것이 환자나 그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스스로 죽음에 준비된 의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의사는 최선을 다할 때와 이제 그만 놓아야 할 때를 분별할 줄 알고, 가족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p.75

죽음이 병원으로 떠넘겨진 다음 수순은 당연히 죽음이 치료해야하는 질병으로 둔갑하는 거예요. 요즘은 한술 더 떠서 노화조차도 치료가 필요한 병으로 치부되고 있지요.자본주의 사회를 죽음과 노화를 병원의 일로 만들고 가족들이 그 시간에 노동을 하고 재화를 축적하도록 작동해왔고요. 여러분이 중견 의사로 활동하는 시기에는 환자들의 평균 연령이 지금보다도 높을 것이고 그런 현실도 더 심해질 거예요. 여러분들이 의사 개인으로서 이 거대한 흐름에 거역한다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최소한 죽음을 앞둔 환자의 입장에서 무엇이 좋은 죽음일지를 한번 고민해보기를 바랍니다.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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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와 위로를 위해 이성과 감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직업이 '의사'라고 느꼈다. 죽음과 노화를 질병으로 둔갑시키고 그에 대한 재화를 위해 가족들이 노동하는 시스템을 만든 병원과 자본주의의 민낯은 고발에 가까웠다. 누구나 질병과 죽음과 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서운데, 그 자유가 개인이 죽고 사는 문제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이 죽고 사는 문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진실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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