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 크기
이희영 지음 / 허블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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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누구나 그런 기분을 한 번쯤은 겪지 않을까. 어른이 되면 조금 더 내 마음대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말이다. 십 대 때는 대학생이 되면 행복할 줄 알았고, 대학생이 되었을 땐 취직하면 행복할 줄 알았으나, 막상 사회에 나가보니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가 된다. 왜 이런 일은 나만 겪어야 하는 건가 하는 자책과 행복의 정의를 내리는 것의 무용함이 이 책의 주인공, 설우의 ‘안’의 크기를 키워나간다.

행복하지도 않지만 완전히 불행하지도 않은 삶. 그저 ‘안 행복’의 ‘안’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는 나날 속에서 설우는 많은 일을 겪는다. 권고사직. 그리고 연인과의 이별. 반쯤은 충동적이었던 흑호동으로의 이사. 초등 영어학원 강사. ‘왜?’라고 물으면 명료하게 답할 수도 없다. ‘모른다’는 말로 일축하기엔 ‘어른’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있었고, 타인의 핑계를 대기도 그 질문에 대답을 하기에도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달리 말하면 ‘그냥’이라는 단어가 내 안에 자리잡는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설우가 자신과 관계없는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게 되면서 그녀는 삶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갖는다. 시장 국수는 다대기를 넣어야 맛있고, 근처의 샌드위치 가게엔 딸기잼을 발라야 하며, 학원 아이들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진 않길 원한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라 여기며 별다른 욕망 없이 살아가던 그녀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욕망하기 시작했을 때, 세상은 결코 무색무취하진 않고 팍팍한 일상에도 한 줄기의 다정은 존재하며 그 기묘한 우연히 나 자신을 구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젠 알았을 것이다.

🔖 당신도 행복 때문에 불안해야 해요. 욕심 때문에 힘들어지세요. (p.306)

우리는 행복이 아무런 고통 없이 찾아오길 바라지만 사실 행복은 잡초와 같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우리가 어둠 속에 있어야만 쏟아지는 은하수나 불꽃놀이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더 이상 마음이 자라기 어려울 것 같은 환경에 놓여 있을지라도 삶 때문에 불안해하면서도 욕심을 내 보는 그 순간에 우리는 결국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각자의 ‘안’의 크기를 늘리고 줄여나가는 삶을 사는 모두에게 이 책은 분명히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희영 작가님의 『나나』 를 읽으며 어른이 된 주인공의 녹록치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었는데 이번 신간을 가장 추운 12월에 접하게 된 건 내겐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자 행복이었다. 마냥 몸과 마음이 춥지 않은 연말을 보내게 될 것만 같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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