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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평점 :
분명 이 책은 ‘소설’로 분류되어 있으나 내가 이 책을 소설로 생각할 수 없었던 이유는 퀴어는 엄연히 존재하고 살아 숨쉬고 있으나 늘 지워지거나 가려져야만 했던 삶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팰리스에서 후안은 네네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성적 변종들 : 동성애적 패턴 연구』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완성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양성애 사례, 동성애 사례, 자기애 사례 세 개의 범주로 세분화되어있는 두 권의 책이었고, 검은 책등과 제목이 금박으로 돋을새김으로 적혀 있다. 이 표현으로 보건데, 열린책들에서 이걸 그대로 표지로서 제작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잰 게이라는 여성이 진행하고 수집했던 연구지가 그녀의 피보호자인 후안에게서, 그리고 그를 돌보고 있는 네네에게로 이야기가 전해진다. 보통은 이야기가 말로서 전달되면 흐려지기 마련인데도 오히려 페이지를 넘기면서 더욱 선명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연출된 검은 펜으로 지워진 흔적은 지운 사람의 (어쩌면) 신경질적인 면모까지 드러나지만, 놀랍게도 남겨진 부분을 읽다보면 지워나가면 지워나갈수록 오히려 그들의 존재감을 주지시킨다.
지금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보다는 인식이 나아졌을지 몰라도 퀴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는 단언할 수는 없다. 존재의 여부조차 배제되기에 지금도 늘 목소리를 내고, 삶을 기록하는 게 그들이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의 연구일지, 그리고 타인이 물리적으로 지우려 해도 결코 지우지 못할 그들의 때묻은 삶이 내게도 고스란히 느껴졌고, 나또한 퀴어 당사자이기에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당사자로서도 정말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을 읽은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