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사람들 시작시인선 16
김신용 지음 / 천년의시작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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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끔찍하다. 버려진 사람들이라니?

노숙자들은 자신들이 버려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회가 버린 사람으로서, 나는 영등포역이나 서울역을 지나가면서 그런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본다. 연기자의 입장에 서더라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다.


주인공의 헛주먹에 나가 떨어지며

좀더 폼을 잡을려면 N.G

네 꼬라지를 알아,

감독의 신경질이 은박지 조명판의

햇살로 눈부시고

                      ―「엑스트라」 중에서

 

그도 열심히 살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더라도 “네 꼬라지를 알아” 한 마디면 끝나는 것이다. 아무리 우겨도 하층민은 하층민인 것을, 아무리 우겨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무언가가 하층민들의 삶엔 깔려있다.


꿈꾸지 않으면 우린 싸늘히 식어,

뼈마디마다 놀 붉게 타는 걸음으로

중랑천을 흐르면

                      ― 「중랑천변」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왜 미움을 받는가? 이미지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어둠을 타고 그대들이 잠든 틈을 이용해서

아주 교활하게 흔적도 없이 날아가서

아무도 알지 못하게 야금야금 피를 빨지요

                      ―「뇌염모기」


망치질 앞에 맨대가리를 내민다

[……]

세상 밖으로 드러난 실뿌리들은

햇살에 더욱 불 달구며, 피도 눈물도 없이

차가운 쇠의 근육의

무덤 속에 눕는다 언제나 자궁인

그 소실점에서

                      ―「못」


그도 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라는 죄의 콘트롤이 있다면 그냥 그대로 살게 될 것이다. 노숙자 주변에 다가가든가 멍하게 쳐다보면 변 당할 각오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도 자신에게 죄책감은 있지만 능히 벗어날 수는 없는 심경이다. 소실점, 자궁이 될 수도 있는 곳이 왜 무덤이 되는가, 그것은 이 세상이 그 여건을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각오하면서 별일을 다 하던가. 시인 ‘김신용’은 그런 일을 겪으며 이 자리에 온 사람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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