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욕하는 가구 문학과지성 시인선 240
최영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이 시집에는 상처받은 것들이 많다. 수술한 자기 자신부터 시작해서 폐선, 가구, 매미 등… 상처받은 모습이 자신과 상관없는 모습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 혹은 삶을 사는데 상처가 꼭 필요하다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삶을 모르는 사람이다. 상처는 세상 그 자체요, 상처가 상처를 입힌 그 사람을 키우기 때문이다. 상처는 나이테다.

이 시집의 표제작인 「일광욕하는 가구」, 그 시에 다루어진 내용은 중년 부부의 모습이다.


늙은 몸뚱이들이 쭈글쭈글해진 배를 말리고 있다

긁히고 눅눅해진 피부

[……]

진한 햇살 쪽으로 서로 몸을 디밀다가

몰라보게 야윈 어깨를 알아보고 알은체한다

살 델라 조심해, 몸을 뒤집어주며

작년만 해도 팽팽하던 의자의 발목이 절룩거린다

[……]

여기까지 오게 한 음지의 근육들

탈탈 털어 말린 얼굴들이 햇살에 쨍쨍해진다.

                                ―「일광욕하는 가구」중에서


신선하다. 중년의 그을린 살자국, 영락없는 가구다. 어떻게 말해보자면, 일광욕을 한다는 건, 나쁘게 생각하면 ‘버려졌다’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에서 이 시는 암담의 일로를 가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의 생각은 끝에서 반전한다. ‘음지의 근육’이지만 ‘여기’까지 오게 한 힘이 있으며(나쁘게 생각하면 그럴 힘도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얼굴들이 일광욕으로 햇살에 쨍쨍해져 생활의 빛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양은 시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自序에 기록했듯이 그는 수술을 받은 사람이다.


다시 봄 오기 전에

몸에 세 번 머리에 한 번

전신 마취한 수술 자리를 만져본다

그 칼날 아직 서늘한지

빛나는 무공 훈장을 어루만진다

아픈 흔적들 아직 날카롭게

나를 잡아당기고 있어

                                ―「알, 수술 자리」


수술자리를 훈장이라 말하는 그야말로 놀랍다고 하겠다. 수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데, 병마와 싸워 따낸 ‘빛나는 무공 훈장’이라고 해석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평생의 대부분을 고통 속에 지내왔던 것이 있다. 그것은 매미다.


땅속 십 년을 견디고

딱 보름쯤 암컷을 부르다가

아무 화담이 없자

아무 미련이 없자

툭 몸을 떨구는 수매미 한 마리


새야 바람아 찬 냇물아

지지솔솔

씽씽짹짹

이제 너희가 지저귈 차례다.

                                ―「매미」 중에서


매미는 수많은 고통을 업고 살아왔다. 그 생의 낙이라 할 수 있는 암컷도 화답이 없다.(한 마디로 암담하다) 하지만 시인은 매미의 바톤을 새, 바람, 냇물이 이어받는 것으로 처리한다. 이겨낼 방법이 없는 그의 슬픔, 그것이 아픔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바로 푸조나무가 있다.


잎 하나 떨구는 발꿈치 아래

한 번은 당신 나그네로 오고

한 번은 당신 남의 님으로 오고

그때마다 아픔을 숨기느라

이렇게 많은 옹이를 남겼답니다

                                ―「잎」중에서


이 시는 ‘푸조나무 아래’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사랑하기에 갖가지 이유와 수식으로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시인은 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함으로 세상을 이겨냈던 것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눈이다.


쏟아졌던 날이

쏟아졌던 날들을 지우는구나

더는 어두운 것을 덮으려 하지 말고

어두운 것들 옆에 만천하에

도드라지며 내려라

더는 아름다운 것을 덮으려 하지 말고


가려무나

다 길이 되어버린 세상.

                                ―「폭설」


그렇다! 모든 것은 길이 되는 것이다. 지나갔던 날들은 묻어버리고 어두웠던 날들도 당당하게 인정하면 이런 나날들이 어려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여기에 재시작의 증거마저도 남긴다. 그것은 폐선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언제부터 멈추어 있었을까

마냥 바다로 뱃머리를 향하고 있는 자궁,

[……]

긁히고 찢긴 날갯죽지마다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는다.

기관실 갑판 흙먼지 쌓여

또다시 물을 이루고

봄이 되자 바다를 넘어온 새싹들이

잎을 피운다.

[……]

갯쑥부쟁이까지 피면 다시 출항이다.

                                ― 「폐선」


누구나 원대한 꿈을 품지만 그것으로 돌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모든 사람의 꿈은 그렇게 버려지고 있지만 뱃머리는 언제나 꿈을 향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처는 새살의 증거이며, 기관실의 흙먼지도 다시 물을 이루고(다만 이것을 믿지 못할 뿐), 봄이 되면 새싹들이 잎을 피워, 예전과 다름없는 나날들이 돌아올 것이다. 여러 가지 꽃들이 다 피고 나면, 다시 못 쓸 것 같은 배도 드디어 출항! 사람들은 이것을 못 믿고, 해야 할 때 전력투구하지 않거나 절망에 빠지는 것이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대미지라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내 눈이 알지 못하는 조그만 티가 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좋은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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