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144
박형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예지였는지 수상작품집이었는지 눈에 들어오던 시가 있었다. 그런데 시 두세편이 일정하지 않았다. 한편은 입이 길게 늘어나도록 맑고 밝은 서정에 가까웠다면 다른 한편은 쓸쓸하게 채색된 회색유년의 기억에 가까웠다. 이 시집은 그의 첫 시집이다. 처음에 '물 속까지 잎사귀가 피어있다'를 읽고 다음으로 이 시집을 읽게 되었는데 표지글에 그가 '화려한 이미지로'소멸에 관한 풍경을 놀랍도록 쓸쓸하게 채색하고 있다는 식의 문투가 쓰여있었는데 그의 이미지가 강하게 와닿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미지는 박상순의 선명한 유화한점을 보듯이 강렬하고 진한 것이아니라 어두워서, 바람이 불어서, 소멸해가는중이어서 느껴지는것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신음소리가.. 잊혀져가는 것들의 옅은 '말'들이..

그러나 시집의 시에서 몹시 불완전한 시들을 만날수 있었는데 시인자신도 무엇을 쓰려고 했었는지 모르는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의 색채가 만들어지다가 중도에 쉬거나, 포기한 심정. 읽는 나 자신도 참 애매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북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차라리 그 말들을 뱉지 않고 숨겼더라면, 쓰려했다면 훨씬 나아가면 좋았을것을.

그의 서정은 위험하도록 지나치게 쓸쓸하다. 발톱을 깎는 아버지와, 국화꽃향기와, 공원의 노인들, 골방에 바지로 남아있는 소년.. 화자는 저물어가는 소년같았다.

그의 시를 더 읽고 싶기 때문에 바라게 된다. 소멸에 대한 시에 불멸을 담을 수는 없는지. 영원의 혼을 희구할수 있지 않은지. 우리모두 그의 다음시집과 함께 한 고개 넘어가고 있을것이므로.

스러져가는 풍경을 안고 새창문을 달아준다면 쓸쓸하던 그들도 조금은 기쁘지 않겠는가. 우리도 더 오래도록 그들의 눈을 마주볼수 있지 않겠는가.

그가 커튼을 걷고 햇살속으로 더듬더듬 발딛는모습이 보이는것 같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