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생각을 한번 자유롭게 해 보자. 자신에게도 사회에게도 좋은 집은 무엇일까. 모두들 한 발 내딛어 본다면 좋겠다. (11)
임대아파트라고 세들어 사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집을 고칠 수도 없었다. OZONE으로 이직하고서 집이란 무엇일까, 생활을 디자인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직장에서는 건축가가 만든 집과 명작이라 불리는 가구 일용품을 매일같이 접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던 자기 자신의 주거라는 것에 신경 쓰이게 되었다. 직장에서는 ‘생활에 더 자은 디자인을’이라고 외치면서도 자신의 생활은 어땠던 것일까.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주거생활을 하고 싶었다. (38)
땅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걸까 처음 해 보는 땅 찾기였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땅 찾는 방법 같은 건 배운 적이 없다. 땅을 야채가게나 생선가게에서 팔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정도였다. 땅이라면 부동산에서 파는 물건이다. 거리의 부동산에는 물건이라 불이는 땅과 건물의 정보가 싸구려 종이에 적혀 벽에 붙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느 부동산이라도 이런 고가의 상품을 파고 있지만 호화로워 보이는 곳은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90)
나는 그 답변을 들었고 쇼크를 받았다. 맞다.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모르는 한, 아무리 유명하고 우수한 건축가와 디자이너에게 일을 의뢰하더라도 뭔가 될 수가 없다. (154)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가족을 위한 집’이라는 사고방식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들만이 보는 장소,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장소. 그곳에서는 뭘 해도 좋다는 느낌. "우리만의 집이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라는 생각이 드는 곳. 역시 집에는 타인의 눈이 필요하다. 남의 눈이 있어서 처음으로 집과 가족이 성립하는 것이다. 남의 눈이란 친척이나, 이웃, 친구일 수도 있겠다. 가족들이 마음 편히 노는 것만으로 집이 성립되지는 않는다. (164)
이 집에 살게 되어 행복하다고 매일 생각했다. 밤에 혼자 일어나 집 안을 둘러보며 행복함을 곱씹는다. 내가 좀 별난 걸까. 집에서 지내는 시간도 늘었다. 가능하면 집에 있고 싶다. 마누라가 부러워. (219)
이 집에 살고부터 ‘주택이라는 공간’이 아닌 ‘생활이라는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집에게 사는 방법을 배웠다. ‘가족과 회사’ 사이의 균형, ‘생활과 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자신이 회사와 일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과 지낸 시간과 자신의 생활을 버려 두고 있었다. (260)
"만일 지금부터 짓는 집이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집이 완성되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긴 시간에 걸쳐 존속될 주택인지, 그런 것들을 함께 고려해 보시죠."라고 분명히 말했다. 감동했다.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를 만들 때는 우리의 것만 생각했다. 집짓기가 가지는 사회적 책임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266)
내가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에 살기 시작하고서 ‘갖지 않는다’, ‘닫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다’는 집에 대한 자세가 생겼다. 집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우연에 의해 지금 그 땅과 집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의식, 집을 가족만을 위한 것으로 하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개방하겠다는 마음, 평생 그대로 살겠다는 마음이 아닌 생활에 맞추어 바꾸어 가겠다는 태도, 그런 마음이 되었다. (267)
9평 하우스가 넓어져 공기에 녹아들어 사라져 간다. 집이라는 형태가 아닌 사람의 기분을 잇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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