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는 건축가였다. 처음 만났을 당시만 해도, 그가 앞으로 우리 삶에서 몇 번이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도움을 주리라는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때 그는 올리버가 서가를 1미터 단위로 짜는 것을 도와주었다. 남편은 이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우리의 새로운 삶이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마침내 그는 알아챈 것이다. (67)
주문한 책을 남편이 바로 찾지 못하면 손님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 독일 양반이 제 책을 주문하지 않았나요?" 그러고는 바로 이런 말이 따라온다. "오늘은 여사장님은 안 계세요?" 라며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찾는다. 언젠가 비교적 나이든 신사분이 남편을 두고 "독일제국 말투를 쓰는 그 불친절한 직원"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75)
페터는 모든 이들에게 귀를 기울여주었다. 페터가 나무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좋은 일이었다. G부인은 요즘 들어 새로운 살구나무를 한 그루 사려고 한다. 그녀는 원래 어떤 정원사도 신뢰하지 않았다. 처음에 그녀는 과일나무에 대한 책을 한 권 사려고 서점에 들렀다가 페터와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몇 차례 전문적인 대화를 나누다보니 나무에 대해 훨씬 풍성한 지식을 얻게 되었고, 그 결과 나무를 사겠다는 결심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77)
문학 및 모든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 영어 및 프랑스 어로 된 도서의 올바른 표기방식, 지리 및 정치 분야 지식, 나이 지긋한 외로운 이들을 위한 오락 프로그램, 온갖 인생문제...에 대한 심리적 위무 등 무슨 주제든 거기에 해당하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을 우리가 구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관련된 조언은 공짜다. 우리 서점이 성공한 진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자그마한 서점 공간이 언제나 꽉 차 있고,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는 이유 말이다. (87)
간혹 자기 앞에 스무 명이 서 있다 해도 기다리려 하지 않는 손님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자기 순서가 되길 원했고, 관심을 받고자 했다. 그들을 위해 우리는 컨디션을 최고로 끌어올려야 했다. 피곤해서 유머 감각이 떨어진다 싶으면 우리는 바로 쉴 곳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하곤 했다. 하지만 대다수 손님은 잘 기다려주며, 기다려야 할 때에도 우리 서점에서는 지루하지가 않았다. 수많은 책과 함께 이곳에서는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넘쳐났다. 이곳은 순수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경건한 사원이 아니라 큰 소리로 누군가를 부르고 웃는 곳, 서로 책 제목을 사람들 머리 위를 향해 외치는 곳이다. (136)
여러 번의 시도와 아주 갈등 많았던 논의 끝에 우리는 홈페이지를 갖게 되었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윕사이트였다. 오래 된 학교 공책이 나오고 그걸 클릭하면 공책의 책장이 넘어가면서 사이트가 열린다. 낡은 타자기 글씨체로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책을 소개한다. 직원들 각자 자기만의 페이지가 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적잖은 도전거리이며 신속하게 변해가는 도서 시장의 상황을 반영했다고 말할 수는 절대 없다. 추천이 있는 글은 절대 지우지 않는다. 지금 어떤 책을 훌륭한 책이라고 여긴다면 그 책은 한 해 뒤에도 좋은 책이며, 심지어 다섯 해 뒤에도, 설령 더 이상 베스트셀러가 아니거나 심지어 이미 시장에서 사라졌다 해도, 좋은 책인 것이다. 그리고 서점이 돌아가는 것과 똑같이--손님이 책 한 권 찾으러 서점에 들어왔다가 찾지 않은 책 서너 권을 발견하듯--홈페이지도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 (152)
"300부 주세요." 영업사원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미친 게 아닌가 하는 눈길로 말이다. 하지만 300부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런 책이야말로 손이 많이 가는 데 비해 버는 돈이 적어도 힘들다는 마음을 잊게 만드는 책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판다. 나는 훌륭한 통속 소설에 대해서도 이른바 진지한 문학에 대해서와 마차가지로 열광할 수 있으며, 때로 이런 구분이 독어권에서는 매우 힘들다고 생각한다. (168)
몇 년에 한 번 그런 책이 있다. 그런 경우 나는 처음 스무 쪽은 늘 숨을 돌려가며 읽는다. 생각 같아서는 뒷부분도 앞부분과 똑같이 재미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단숨에 다 읽어버리고 싶지만, 천천히 읽으며 그 언어를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그리고 끝까지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때부터 나는 그 책의 전도사가 된다. 내게 중요한 사람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까지도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것도 당장! 이런 일들이 내가 올바른 직업을 가지고 있음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말고 다른 일은 없음을, 그리고 그 어느 것도 이 일보다 더 중요하지 않음을 백 퍼센트 확인시켜주는 인생의 순간들이다. (171)
손님들이 자기가 왕이라고, 수십 년 동안 배워 온 까닭에 우리는 이런 메일도 받는다. "이제 더 이상 아마존에서 주문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메일을 쓰는데, 다음 도서를 귀 서점에 주문하면 얼마를 할인해주시겠습니까?" 우리는 도서정가제 법률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 할인을 전혀 해드릴 수 없다고 답장을 보낸다. 우리는 배송료 없이 책을 보내드리며, 원할 경우 모든 책에 대해 선물 포장을 해드립니다. 그리고 귀하께서 원하신다면 우리는 귀하를 위해 홀딱 벗고 책상 위에서 춤도 추어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 마지막 말은 그렇게 쓰고 싶은 욕구는 정말 제대로 갖고 있음에도 당연히 적지 않는다. 언젠가는 그렇게 써야지. (210)
그리고 많은 어르신들이 수시로 이런저런 구실을 하나 대며 우리 서점에 오셔서는 잠깐 수다를 떠신다. 아흔일곱 되신 F할머니는 증손자들의 이름을 적은 종이쪽지를 들고 정기적으로 오시는데, 거기에는 괄호 속에 아이들의 나이가 적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아이 각각에게 줄 책을 함께 한 권씩 골라드린다. 그러다보니 모리츠는 멋진 아이이며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 이브라힘은 인도에서 왔는데 아직 독어를 그리 잘 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어린 마리는 무조건 조랑말이 있는 뭔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24)
인사하지 않는 사람, 우리 선물 포장지를 보고 "정말 흉하다."고 하는 사람, 4년 전에 나온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책이 서점에 없어서 주문하려면 하루가 걸린다는 소리를 듣고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인사도 없이 들어와 다짜고짜 "그런데 그거 있어요?" 하는 손님들, 그들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자기가 사흘 전에 주문한 책이 와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외우고 있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1년에 책을 2권 이상 사지도 않으면서도 할인이 가능한지를 묻는 사람들이다. ... 신비주의 성향의 손님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대개는 잔뜩 긴장해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가 우리가 <힐링 코드> 같은 책을 제고로 갖고 있지 않으면 거의 꼭지가 돌아버릴 것처럼 화를 내며 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견딘다. 우리 스스로 선하다고 믿기 때문이며, 대부분의 손님도 그걸 알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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