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득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럴 기회를 잃고 말았다. 1957년, 도시에 몇발의 총성이 울리자 라싸의 높디높은 궁전 안에 있던 대...라마들은 재빨리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이렇게 되면서 라싸와 이역만리 떨어져 있던 승려들의 생활도 끝나고 말았다. 정부의 금령에 따라 모두들 `기생충 같은 생활`을 그만두고 환속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양을 치거나 농사를 지어야 했다. 자력으로 먹을 것을 해결하는 보통 노동자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49)
"제 생각에는 득도 안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득도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사부님은 사람들을 득도하도록 가르치셨지만 무슨 소용이 있나요?" ...... 평소에 백만번 천만번 엎드려 절하고 기도하고 공양하던 거대한 불상이 줄 한가닥에 목이 묶이고, 배신한 신도들에 의해 힘것 잡아당겨져 와르르 하고 땅에 내동댕이쳐질 때, 기적이 일어나기는커녕 바닥에서 산산조각 나면서 수많은 금가루 아래로 진흙만 드러났을 뿐이다. 사실이 그렇기는 했지만 단바는 자신의 말 속에 담긴 악의로 인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사부는 이미 입을 다물고 있었고 눈시울 아래는 눈물 흐른 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51)
한편 백여리 밖 지촌에는 오래전 하마터면 단바에게 몸을 맡길 뻔한 양중이 따뜻한 화롯가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아들딸은 수확과 각종 새로운 일들에 대해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아--그 사람이 벌써 가다니." "누구요?" 그녀는 아득한 표정으로 외마디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66)
단포는 눈밭에 몸을 움츠리고 있는 여우의 멋진 꼬리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여우가 갑자기 거센 기세로 뒷다리를 들어올려 그의 눈앞에 눈보라를 날렸다. 단포가 감았던 눈을 다시 떠 보니 불꽃처럼 흔들리던 여우의 모습은 사라져버린 채 텅 빈 설원만 눈앞에 펄쳐질 뿐이었다. (107)
인바가 노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젠장, 너희도 어서 집으로 돌아가." 우리는 인바가 욕하는 것을 한번도 말려본 적이 없다. 인바는 열네댓 살 때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가 가장 먼저 배운 말은 바로 이런 욕이었다. 현재 그의 중국어 어투는 아주 무겁게 들리지만 이런 욕을 할 때만큼은 아주 부드러우면서 발음도 명확했고 음율감까지 살아 있었다. 우린 다른 민족의 언어에 통달했다는 그의 쾌감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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