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식민지 대만에서의 일본 식민주의와 문학/언어 개혁들

[2] 향토문학 운동과 대만어 표기법(모두 1930년대) 운동

ü  1920년대에서 30년대로 바뀌면서 전세계적인, 그리고 동아시아의, 사회-경제 불안정이 두드러지면서 일본 내 군국주의가 다시 세력 잡고 반-식민 운동 억압해서, 대만 내 급진적 반-식민운동 세력은 다 타도되고 개량주의자들은 그나마 1937(중일전쟁 발발)까지는 연명함.

ü  일본은 대만 식민 시작하자마자 일본어 전파했으나 1920년대까지 그 성과는 좋지 않았어 (전체 인구의 2.8프로만이 일본어 이해하는 것으로 잡힘). 1930년대 들어서 일본은 일본어 전파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결과(공공장소에서 대만어 못 쓰고 일본어 하는 사람만이 제대로 취직할 수 있게 하고 학교 밖에도 수많은 언어 교육 기관 세우고 등등), 1930년대에는 대만인구의 38%가 일본어를 이해할 수 있다고 통계 잡혀. 그러나 이 수치 과대평가하면 안 됨. 38% 중에서도 일본어를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유학파 빼면 잘 없었고, 38%의 사람들도 일상에서는 대만어를 이용했어. 38%는 바이링구얼 가능한 인구를 뜻하는 것이지 절대 일본어가 대만어 제치고 제1언어가 된 것을 의미하진 않아.

ü  언어에 대한 관심은 도쿄에서 공부하는 대만 유학생 조직에서 일찌감치 나타났어. 1919년 중국의 5.4운동과 뒤이어 번진 신문화운동, 그리고 1921년에 백화를 초등교육 교과서에 적용한 것(백화를 국어로)은 동시기(1920년대 일본이 그나마 조금 리버럴한 분위기로 갈 때) 대만 유학생들에게도 큰 계시를 주었는데, 대만인들에게 문제는 더 복잡했지. 문어와 구어를 일치,시키기 또는 쓰여진 구어 만들기라는 과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대만에서 다수 언어는 호클로인데 그것은 표기법이 없었고 중국 한자로는 그 언어를 다 표현할 수 없었으니까.

ü  이 당시에는 중국어를 쓰되 로컬 사정에 맞추어 조금 변형해 쓰자는 파이들은 중국 문화에 동질감 느끼면서 일본의 문화 동화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 대부분 개량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진 편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반대라고 한다면 이런 변형된 중국어는 전통 중국어와 전통 중국 문화에 손상을 가할 것이라는 의견 정도.

ü  1920년대 후반에는 더욱 가혹해진 통치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정치를 포기하고 문화 활동에 뛰어들었고, 또한 반-식민주의로서의 사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문학 이라는 관점이 더욱 강하게 이들을 사로잡았음.

ü  세월이 또 흘려 1930년이 되었을 때 풍경은 1920년대와는 싹 바뀌었어. 이미 말했듯이 개량주의자와 급진주의자 모두 큰 좌절을 맞보고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난다는 희망은 아예 버리게 되. 개량주의자는 중국인 정체성 가지고 일본을 벗어나 중국과 다시 결합한다는 희망이었는데 물 건너 갔고, 대만이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서 바로 서야한다는 급진주의자의 희망도 망상이 되어 버렸고.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만도 엄청 버거운 일이 되어 버려. 이 대만인 정체성을 온전히 지키자는 것, 대만의 문학과 대만어의 스피릿을 갖자는 것(비록 대만어라는 것이 아직 완전히 준비되지 않았더라도)1930년 향토문학론을 감싸고 있던 정신.

ü  바로 이 시기에, 1930년에 황이 향토문학론을 꺼내 들었고 1년 뒤에 그 논쟁이 엄청 크게 되. 1920년대에는 구어와 일치하는 문어를 만들어 국어로 삼아야 한다는 데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그리고 그 문어는 중국 백화)였는데, 이제는 향토문학, 즉 대만의 현실을 내용 삼는 문학을 써야 하며, 그 내용의 전달 역시 중국의 구어가 아니라 대만의 구어로써 해야 한다는 것이 황의 주장. 즉 대만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

ü  이에 대한 반대론자들은 1) 대만어는 아직 거칠고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 2) 대만어에는 호클로어와 학카어가 있는데, 호클로어를 쓰면 학카가 반발할 껄?; 3) 대만어를 쓰면 중국과의 끈이 끓어져 버린다(는 주장으로 자신들의 중국 편향 문화정체성을 드러냄).  

ü  주목할 것은 대만문학과 대만어가 서로를 세워주는 존재로서 주창되면서 대만어 표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만어를 로마자화하는(이미 그렇게 한 선교사 있었음) 데는 대부분이 반대함. 그들은 한자를 가지고 대만의 언어를 표기하기를 원해. 대만의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 몇몇 한자를 더 만들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한자로 표기하는 걸 원해. 그러니 그들 저변에 있는 중국/한족 정체성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는 거지. 또 이런 현상은 사실 너무 당연한 것도 있고. 대만 사람들은 로마자로 표기된, 즉 서양의 기원을 가진, 글자에 거부감 느껴서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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