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文과 노벨novel의 결혼: 근대 중국의 소설 이론 재편 서남동양학술총서 16
이보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그런데 이른바 반영론에서 요구하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인 ‘시각…’이라는 것은 전통적 사유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낯선 것이었을 성싶다. 전통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대단원주의,’ 전통 시론의 핵심인 ‘온유돈후…’의 시교… 등은 우주적 ‘화해…’라는 상상을 환기시킴으로써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게끔 했다. 20세기 1920년대 중반 이후 반제국주의의 과제가 아무리 절실했다고 하더라도 구호성의 ‘혁명 문학’에 그렇게 쉽게 넘어갔던 것과, 사회주의 체제 시설 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같은 체제의 구소련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사정 또한 이와 무관할 수 없다고 하겠다. (22)

중국 내부로, 주체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방법론이 서구적 근대화가 세계사적 근대화의 유일한 도정이라는 역설적인 결론에 이르게 됐다는 점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폴 코헨도 스스로 인정했듯이 중국 내부로 들어가는 방법은 제국주의의 침략성에 대한 분석을 약화시킬 뿐더러 그것을 도리어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다. 최근 중국에서 유형처럼 출판되고 있는 ‘지방 문학사’가 근대화 과정에서의 특정 지방의 특권이나 역할을 과장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등, ‘중심-주변’의 논리를 오히려 강화하는 데로 빠지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겠다. 또한 ‘억압된 현대성’에 대한 복원은 중국근현대 문학사의 ‘실상’을 가림으로써 또 다른 ‘억압’을 낳고 있다. 누가 뭐라고 사더라도 중국 근현대 문학사는 좌익 문학의 주류성에 의해 지배되어온 것이 엄연하다고 할 수 있을 터인데, 만청 시기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실제 역사를 은폐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것을 왜곡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말이다. 국내의 연구자들이 ‘다양성’이라는 가치 중립적인 것으로 가상되는 개념으로 결론짓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 속에 있다 하겠다. (35)

그런데 소설 ‘이론’에 대한 연구라고 했지만 왕꾸어웨이의 <홍루몽 평론…>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서…, 발문…이거나 신문 광고 형식을 띠고 있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이론’의 구성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글은 그리 많지 않다. 이를테면 ‘근대’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면 ‘비평’이나 ‘이론’에 미치지 못하는 직관에 의지한 ‘감상’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인 글들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단순함’ 속에서 역사적 의미에서의 ‘동력학’을 읽어내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만청은 말할 것도 없고 5.4, 그리고 신시기에 씌어진 글들이 지니고 있는 외면적인 ‘졸렬함’은 외국인 독자에게 당혹감을 안겨준다. 이 당혹감은 그와 같은 ‘졸렬한 글’들이 중국 문화의 ‘생명’을 이어주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과 동시에 맛보게 되는 감정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어쩌면 직관적 감상적 비평의 함의를 제대로 읽어내는 길이 중국적 ‘문학’의 진정한 함의에 도달할 수 있는 경로이며, 동시에 ‘제도’로서 지나치게 자율화되어버린, 그리하여 인문학의 사명을 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서구적 근대 문학 개념을 반성적으로 비추어 볼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 않겠느냐는 희망적 진단을 가져보기도 한다. (44)

청이 세워질 당시만 해도 신사의 계층적 성격은 대다수가 지주였으나 왕조가 멸망할 즈음에는 행정 전문가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신사의 자치권이 차츰 강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했으며, 이는 달리 말하면 다음 세기의 정치 세력이 될 자격을 하나하나 갖추어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만청 개혁의 주창자들 중에 지방의 신사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명 청 이래의 권력 분점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하겠다. 이들은 기군, 구호 사업, 지방 관개 공사, 공공 질서의 보존 등의 역할을 맡으면서 정치 수업을 착실히 쌓아나갔던 것이다. 청말 백련교도의 난은 물론이고 태평천국을 진압하는 데 있어서 왕권이 이들의 힘을 빌렸다는 사실에서 신사들이 독립적인 군사 기구까지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7)

꺼자오꾸앙…이 평가한대로, 불교의 ‘개공…’ ‘유식…’은 주체의 ‘자기 동일성에 대한 집착…’을 와해시켜 고유 관념을 해소하고 지식인들의 사유의 개방을 촉진시켜주었다. 다시 말하면 지고지상의 지배담론을 부정하고 새로운 틀을 중건할 기점을 제공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교 문화의 최대 이점은,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중국 정통 학문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서구 문화를 흔쾌히 받아들이기에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만족시켜주었다는 데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불교 문화권은 유가 문화권과 기독교 문화권 사이에 있었으므로 불가 사상은 서…도 아니고 중…도 아니라고 할 수 있었으며, 게다가 중국의 대승 불교는 당대 이래 이미 중국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70)

20세기 초의 중국인들은 반봉건과 반제국주의라는 양자 사이에서 반봉건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새로운 것’으로서의 ‘서’에 대한 태도는 매우 적극적이었음을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들 사유의 독특한 점은 전통과의 ‘인식론적 단절’을 통하여 새로운 세기를 열겠다는 열망이 대단히 강렬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20세기 지식인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것’을 조절하는 기제는 ‘동’에 있었다는 데 있다. 바꾸어 말하면 ‘새로운 것’이 ‘동’을 조절하는 일방적인 주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88)

언어와 문자가 합일된 상태는 한갓 몽상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언어와 문자 사이에 놓인 만리장성을 제거하려는 시도 자체를 헛된 것이라고 매도할 수 없다고 한다면, 20세기 초 지식인들의 이러한 문제 제기는 양자의 분리를 당연시했던 고전 시대의 상식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언어와 문자의 분리가 인간의 감수성을 어떻게 제한하고, 또 그것을 표현해내는 데 얼마나 장애가 되는가 하는 점은 전혀 안중에 없다. 실제로 고문으로 이러한 것들—인간의 감수성, 실제적으로 지식인의 감수성—은 충분히 담아낼 수 있다고 믿었으며, 백화는 다만 ‘대중성’이라는 목표 속에서만 유용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140)

그런데 루쉰의 "이용하지 않는 것의 쓰임(不用之用)"과 왕꾸어웨이의 "무용의 쓰임(無用之用)" 사이의 갖고 다름을 잘 새겨 따져볼 만하다. 축자적으로 살펴보면 후자는 무용 그 자체가 바로 유용이라는 말이며, 전자는 문학이 본래적으로 무용한가의 여부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측면이 있으며 그 유용함을 ‘도구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통해서 유용에 도달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법하다. 즉 문학의 도구적 사용에 대한 의식적인 부정을 통하여 참다운 ‘소용’에 도달한다는 뜻을 함축한다 하겠다. 문학의 무용함을 전제했을 때 빠지기 십상인 ‘유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근간이 바로 이 ‘불용’이라는 사고 속에 담겨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161)

따라서 서구 근대적 인간형이 개인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을 통하여 자신의 자율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동시에,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이른바 시민의 ‘공공 영역’을 형성해나간 인물이었다고 한다면, 중국의 ‘근대’적 인간형은 보다 자각적으로 전체에 대한 개인의 헌신을 선택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오히려 필연적으로—시민의 ‘공공 영역’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의 ‘근대’적 영웅은 전자의 부정적 측면인 ‘단자…’화된 인간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게 가지고 출발했다고 볼 수 있으나, 민족 이전에 존재하는 개인에 대한 보다 철저한 사고가 결여되어 있었으므로 ‘아Q’의 열근성을 극복한 인물이 아니라 집단에 쉽게 굴복하는 <아Q정전>이 예기한 대로, ‘아Q’ 그 자체로 되돌아가기 십상이었음을 그들의 현대사가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252)

소설 이론가들은 "내면의 발견," 혹은 주관성에 대한 의식적인 거부가 있었다고 해야 할 듯하다. ‘의식적인‘ 거부라고 하는 것은 만명 이래 주관성에 대한 의식이 강화되고 있었고 <홍루몽>이 작품으로써 그것을 반영하고 있었음에도 외려 외면하려 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소설 이론가들의 ‘여성적인 것‘에 대한 배제 전략은 적어도 ‘중국 현대(문학)사‘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야 하겠다. 1920년대 낭만주의 경향이 한때 중국을 휩쓸어갈 때 잠시 잠깐 그것에 탐닉하려는 시도들이 있긴 했지만 이내 ‘혁명의 물결‘ 속에서 여성 스스로마저도 그것에 대한 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국 여성 해방론자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정치 권력의 획득이 아니라 억압된 ‘여성적인 것‘을 복원하는 데 심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읽혀져야 할 것이다. 중국의 ‘근대‘ 소설은 근대 서구 사회에서 소설을 ‘가정‘ 혹은 ‘개인‘의 독서로 묶어두기 위해서 서정성 내면성을 강화하는 측면으로 흘렀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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