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와 사랑 홍신 엘리트 북스 15
헤르만 헤세 지음 / 홍신문화사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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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트문트의 사랑을 눈뜨게 한 또 다른 한 사람은 보다 날카롭게 보고, 보다 많이 예감하고 있었으나, 드러내지 않고 얌전히 물러서 있었다. 나르치스는 얼마나 사랑스런 황금새가 날아들어 왔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 고귀한 성품 때문에 고립되어 있었던 나르치스는 골트문트가 모든 점에 있어서 그와 반대인 것같이 보였음에도 자기와 동류라는 것을 이내 알게 되었다. 나르치스는 어둡고 야윈 반면에, 골트문트는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나르치스는 사색가요 분석가였는데, 골드문트는 몽상가요 동심의 소유자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대립을 이어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둘 다 고귀한 성품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둘 다 두드러진 재능과 특징에 의해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 뛰어나 보였다. 그들은 운명으로부터 특별한 경고를 받고 있었다.
나르치스는 곧 이 젊은 영혼의 성질과 운명을 꿰뚫어보고 타는 듯한 관심을 보냈다. 골트문트 또한 아름답고 뛰어나게 총명한 선생에게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 그러나 그를 주저하게 한 것은 부끄러움만이 아니었다. 자기에게는 나르치스가 위험한 존재라는 느낌이 그를 주저하게 만든 것이었다. (26)

"아니야, 골트문트. 나는 너와 같은 인간이 아니야. 네가 믿고 있는 그런 인간도 아니야. 물론 나는 입밖에 내지 않은 맹세를 지키고 있어. 그 점에 있어서는 네가 말하는 것이 옳아. 그러나 너와 같은 인간은 결코 아니란 말이야. 너는 오늘 내가 하는 말을 언젠가 한 번은 꼭 생각하게 될 거야.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우리의 우정은 네가 완전히 나를 닮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한다는 것 이외에 다른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아." (45)

나르치스는 골트문트의 아버지를 그리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었다. 정말 골트문트의 아버지인지 어떤지조차 그는 가끔 의심을 했다. 골트문트에게 있어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공허한 우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힘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골트문트의 영혼에, 그 본질에 어떻게 서먹서먹한 꿈을 채워줄 수 있었을까? (49)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 뛰어난 능력이 있는 나르치스는 차츰 그의 친구가 생활의 한 조각을 잃어버린 사람, 다른 어떤 괴로움이나 마력의 압박 밑에서 과거의 일부를 잊어버리는 데 동의한 사람,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단지 물어보거나 가르쳐 준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자신이 이성의 힘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무익한 소리를 늘어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2)

골트문트는 잠시 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서서히 여러 가지 모습들이 또 마음속에서 걸어나왔다. 친구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으며, 영혼 속에서 빛나는 금발의 여인이, 어머니가 또 나타났다. 그 모습은 마치 미풍과도 같이, 생명의 열과 애정과 마음 속의 예감의 구름과도 같이 그의 마음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어머니! 내가 어떻게 어머니를 잊고 지낼 수 있었단 말입니까! (69)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 거지?" 나르치스는 심각하게 말했다. "이봐, 너는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나는 장차 수사가 될 너를 망쳤을지 모르지만, 그 대신 비범한 운명에의 길을 네 마음속에 터놓아 주었어. 가령 내일 네가 우리들의 아름다운 수도원을 송두리째 태워 없애버린다 하더라도, 혹은 미치광이 같은 일종의 사교를 세상에 퍼뜨린다 하더라도, 내가 너를 도와서 그 길을 향하게 한 것을 한 순간이라도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83)

그는 벌떡 일어나서 창가로 갔다. 창틀도, 마구간의 지붕도, 저택의 입구도, 저쪽의 경치도, 올 겨울의 첫눈에 뒤덮여 푸른 빛을 띠고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가슴속의 불안과 고요히 숨쉬는 겨울의 세계 사이의 대조가 그로 하여금 망연히 창가에 서 있게 했다. 밭과 숲, 언덕과 황무지가 태양과 바람과 비와 앙상한 겨울과 눈에 싸여서 얼마나 고요히, 얼마나 감동적으로 거룩하게 몸을 맡기고 있는가! 단풍나무와 물푸레나무가 얼마나 아름답게, 또한 운화하게 겨울의 무겁게 내려앉은 가지 위의 짐을 참고 있는가! 그런 것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을까? 그런 것들한테서 배울 수는 없을까? (143)

그 중에서도 그가 제일 강하고 기이하게 여긴 것은 죽음에 거스르면서, 자신이 조그맣고 비참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마지막 자포자기적인 싸움에 있어서 생명의 그 아름답고도 무서운 힘과 끈기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느낀 사실이었다. 그것은 여운을 남기고, 그의 마음속에 새겨졌다. 마치 아이를 낳는 사람이나 죽어가는 사람들의 몸짓이나 표정과 꼭 닮은 욕정의 만족에서 오는 몸짓의 표정과도 같이.
전날 해산하는 아낙네는 얼마나 울부짖었으며, 얼마나 고통에 차서 얼굴을 찌푸렸던가! 길동무인 빅토르는 그 얼마나 조용하고 빠른 속도로 피를 흘리고 말았던가! 아, 배고픔에 허덕이던 날에는 죽음이 자기를 둘러싼 채 기웃거리고 있다는 것을 얼마나 깊이 느꼈던가! ……
그는 이 이상의 체험을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르치스하고라면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다른 곳에는 그것을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다. (165)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른 의미의 초상도 만들 수 있었다. 아주 교묘하게 만들어진 말쑥하고 매혹적인 것을, 그것은 예술 애호가들을 즐겁게 해주고 성당이나 회의실의 장식이 되는 아름다운 것이기만 했지만, 거룩하고 참다운 영혼이 담긴 초상은 아니었다. ……
그런 것을 처음으로 자각했을 때, 그는 죽도로 슬퍼했다. 아, 아무리 순수하다고 하더라도 예쁘장한 천사의 초상이나, 혹은 쓸데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아무 가치 없는 일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 가령 일꾼이나 시민이나 아무 고통도 없고 불만도 없는 사람들한테는 보람이 있는 일일는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아무 가치도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194)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그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예술은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여신도 아니요, 목표도 아니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였다. 손가락 기술을 더한층 익숙하게 단련시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것이 어디로 이어지는가 하는 것은 나콜라우스 스승의 예를 보아도 알 수가 있었다. 그것은 명예와 명성, 돈과 안정된 생활에 이르는 길인 동시에 그 신비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내적 감각을 고갈시키고 위축시키고 만다. 그것은 값비싸고 예쁘장한 장난감을, 즉 갖가지 사치스런 제단이나 설교단이나 성세바스티안이나 한 개에 4탈러인 예쁘장한 천사의 고수머리를 만들게 했다. 아아, 잉어 눈 속의 황금빛이나 나비의 날개가 갖고 있는 미세하고 엷은 은색의 잔털 같은 것이 예술작품으로 가득 찬 홀 전체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생명이 약동하며 훌륭하다. (216)

유랑자들은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날씨와 계절에만 예속되어 아무런 목표도 없이, 하늘을 지붕삼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우연에 대해서는 몽땅 자신을 드러내 놓고, 어린애 같은 용감한 생활, 초라하지만 굳센 생활을 보낸다. 그들은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의 아들들이다. 아무 죄 없는 동물들의 황제들이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시시각각 부여되는 것을 받는다. 해와 비와 안개를, 또 눈과 더위와 추위를, 안락과 괴로움을 받는다. (223)

그들에게는 시간도 역사도 노력도, 집과 재산을 가진 자들이 명목적으로 믿고 있는 발전이라든지 진보라든지 하는 묘한 우상도 없었다. 유랑자는 그가 멍들기 쉬운 여린 감정을 가지든, 불안하고 안정되지 않은 마음을 가지든, 능숙하든 우둔하든 용감하든 겁쟁이든 간에 언제나 그의 마음은 어린아이요, 항상 그는 첫날과 같이 온갖 세계사의 시작 이전처럼 생활하고, 항상 검소하고 단순한 약간의 본능과 필요에 의해서 인도된다. 그 사람이 영리하든 어리석든, 일체의 생활이 얼마나 나른하고 허무한가를, 또한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그의 따듯한 피로써 얼음장같이 차디찬 세계를 얼마나 보잘것없게 하고, 또한 근심에 싸여 참아가고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있든, … 그는 언제나 재산을 소유한 인간이나 정착한 인간의 반대자인 동시에 언제까지나 적이다. 소유하고 정착한 인간의 반대자인 동시에 언제까지나 적이다. 소유하고 정착하 인간은 모든 존재의 허무함이라든지, 모든 생명의 끊임없는 쇠퇴라든지, 우리를 둘러싼 채 온누리에 가득 차 있는 얼음같이 차디차고 가차없는 죽음 같은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유랑자를 미워하고 멸시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224)

아, 여기에 불쌍하고 아름다운 유대인 처녀 레베카나 통나무 집과 함께 타죽은 불쌍한 레네나 정다운 리디아나 니콜라우스 스승도 나란히 설 수가 있다면! 하지만 그들은 언제든 여기에서 있게 되리라. 나는 그들을 여기에 자리잡게 하리라. 그리하여 그에게 있어서 오늘의 애정과 고뇌와 불안과 정열을 뜻하는 그들의 모습은 후세 사람들 앞에, 비록 이름도 이야기도 모른다 하더라도 인간생활의 고요한 무언의 상징으로서 서 있게 되리라. (263)

그것이 가능한 인간은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테지. 어엿한 남편이고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충실했기 때문에 관능의 향락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안정된 사람으로서 자유와 위험의 결여 때문에 마음을 메마르게 만들어 버리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을 그는 아직 보지 못했다. (285)

"그것은 무상의 극복이었다네. 인간생활의 기만성과 죽음의 무도에서 무언가가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것이 말하자면 예쑬품이었어. ... 하지만 아무튼, 예술품은 몇 세대의 인간생활보다 수명이 길고, 순간의 피안의 형상과 거룩한 것의 고요한 나라를 만든다네. 거기 협력하는 것이 나한테는 귀중하고 위안이 되리라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그것은 무상한 것을 영원화시키는 데 가깝기 때문일세." (310)

골트문트는 그의 친구가 원장으로서 행동하며 약간의 조롱과 분명한 자신감을 가지고 세속적인 사람들과 세속적인 이야기를 하는 그 태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럴 때는 나르치스가 무엇이 되어 있는가, 즉 당당한 사나이가 되어 있는 것이 역력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두 손과 학자의 얼굴, 정신과 확신과 용기로 가득 찬 사람, 지도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313)

나르치스는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그는 선 채로 몇 분이고 학자답게 조심조심 그 목상을 관찰했다. 골트문트는 나르치스 뒤에 서서 묵묵히 마음속의 폭풍우를 잠재우려고 노력했다. ‘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 만약 우리 두 사람 중의 어느 하나라도 좋지 않게 느낀다면 큰일이다. 내 작품의 솜씨가 좋지 못하거나 나르치스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여기서 나의 제작은 모든 가치를 잃고 마는 것이다. 내가 좀더 기다려야 했는데.‘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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