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부름.화이트 팽 펭귄클래식 137
잭 런던 지음, 오숙은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벅은 패배했다.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몽둥이를 든 사람과의 싸움에서는 승산이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는 교훈을 배웠고, 그 후로도 평생 그것을 잊지 않았다. 몽둥이는 하나의 계시였다. 그것은 원시적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로의 통과의례였고, 벅은 그 세계로 들어간 것이었다. 삶의 현실은 더욱 혹독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는 의연하게 그 현실을 대하면서, 본성에 숨어 있다가 고개를 든 교활함으로 그것에 맞섰다. ... 매번 잔인한 그 광경을 볼 때마다 벅은 몇 번이고 다시, 그 교훈을 뼛속 깊이 새겼다. 몽둥이를 든 남자는 입법자였고, 굳이 환심을 살 필요까지는 없을지라도 복종해야 할 주인이었다. (35)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경험을 통해서만 배운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죽어 있던 본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길들었던 수많은 이전 세대의 습성들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는 자기 종족의 어린 시절을, 야생 개들이 무리 지어 원시림 속을 떠돌면서 먹이를 쫓아가 죽이곤 했던 그때를 희미하게 기억해냈다. ... 이제 상대를 물고 할퀴며 싸우고 늑대처럼 재빨리 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그로서는 일도 아니었다. 그 방법은 잊혀 간 조상들이 싸우던 방식이었다. ... 그것들은 애써 배우거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언제나 그의 것이었던 듯 느껴졌다. 그리고 춥고 고요한 밤에 그가 별을 향해 코를 들고 늑대처럼 긴 울음을 울 때면, 그 소리는 그 조상들이 내는 소리였다. (50)

거기에는 생명의 절정을 이루는 황홀경이, 그것을 넘어서면 생명이 일어설 수 없는 황홀경이 있다. 그런 것이 살아 있다는 것의 역설이다. 이 황홀경은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을 때 찾아오고, 그로 인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한다. 이 황홀경, 살아 있음에 대한 망각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자신을 쏟아붓는 예술가에게 찾아온다. 그것은 탄환이 빗발치는 전쟁에서 전쟁에 미쳐 적을 살려 두지 않는 군인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그것은 무리들을 이끌로 먼 옛날의 늑대 울음을 울면서, 살아서 날쌔게 자기 앞을 달려가는 먹이를 달빛 아래서 뒤쫓고 있는 벅에게 찾아왔다. 벅은 자기 본성의 깊은 곳, 그 자신도 알지 못하는 본성의 심연을 더듬으면서, 아득한 시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솟구쳐 오르는 생명력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존재의 충만함이 그를 사로잡았다. (66)

이쯤 되자, 남부 사람 특유의 싹싹함과 상냥함은 세 사람에게서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북극 여행은 그 매력과 낭만을 잃어 버렸고, 그들의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으로 견디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현실이 되었다. ... 그들의 짜증은 비참함 속에서 떠올라 함께 커졌고, 비참함 때문에 배가되었으며, 비참함보다 커졌다. 열심히 일하고 고생하면서도 여전히 다정한 말과 친절을 잃지 않는 개썰매꾼들의 훌륭한 인내심을 이 두 남자와 한 여자에게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런 인내심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몸이 뻣뻣했고 여기저기 욱신거렸다. 근육이 아프고 뼈가 아프고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말투가 날카로워졌고, 아침에 그들의 입에서 처음 나오고 밤에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은 죄다 거친 말들뿐이었다. (93)

이 남자는 벅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그는 이상적인 주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의무감이나 사업 방편으로 자기 개를 돌보곤 했다. 그러나 손턴은 마치 개들이 자기 자식인 것처럼 돌보았다. ... 그리고 그는 거기서 더 나아갔다. 그는 다정한 인사나 칭찬의 말 한마디를 잊지 않았고, 오랜 시간 앉아서 개들과 떠드는 일, 그 스스로 ‘잡담‘이라고 부르는 것은 개들에게는 물론 그 자신에게도 큰 기쁨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벅의 머리를 거칠게 쥐고 벅의 머리에 자기 머리를 올려놓거나, 벅의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욕을 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벅은 그 말들이 듣기 좋았다. 벅은 거친 포옹과 중얼거리는 욕설보다 기쁜 일을 알지 못했고, 그가 자기 몸을 앞뒤로 세게 흔들 때마다 너무도 황홀해서 심장이 몸 밖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다가 벅이 손턴의 품에서 풀려나 벌떡 일어서서, 입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마음을 나타내고, 목구멍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소리를 그르렁거리면서 꼼짝하지 않고 있으면 존 손턴은 감탄하곤 했다, "세상에! 넌 말만 빼고 다 하는구나!" (105)

존 스턴은 사람이나 자연에 별로 구애받지 않았다. 그는 야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약간의 소금과 소총 한 자루만 있으면 자연 속으로 뛰어들어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데서든 내키는 만큼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인디언의 방식처럼, 전혀 서두르지 않으면서 그날 먹을 것은 그날 낮에 사냥해서 장만했다 사냥감을 찾지 못해도 조만간 사냥감을 만나게 되리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서, 인디언들처럼 계속 길을 갔다. 그래서 동부로 가는 이 대장정에서는 갓 잡은 고기가 곧 식단이었고, 썰매에 실은 짐은 탄약과 연장뿐이었으며, 일정은 끝없는 미래까지 뻗어 있었다. (121)

그의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굳게 닫혔다. 턱은 가슴에서 앞쪽으로 나와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담요 위에 눕힐 때도 그의 코고는 소리가 차가운 공기 속으로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다른 소리도 있었다. 비록 멀리서 들리는 희미한 소리이긴 했지만, 배고픈 늑대들이 방금 놓쳐버린 그 남자가 아닌 다른 고기를 찾아 길을 떠나면서 짖는 소리가 먼 곳에서 울렸다. (185)

신을 가지는 것에는 봉사가 따른다. 화이트 팽에게 그것은 의무와 두려움의 봉사였지, 사랑의 봉사는 아니었다. 사랑이 어떤 것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사랑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키체는 아득한 기억이었다. 게다가 사람에게 몸을 맡기면서 그는 야성과 동족을 버렸을 뿐 아니라, 그 계약의 조항들은 만약 키체를 다시 만난다고 해도 신을 버리고 키체와 함께 떠나지 않을 것임을 의미했다. 사람에 대한 그의 충성은 자유에 대한 사랑, 동족과 핏줄에 대한 사랑보다 큰, 어쩌면 그의 존재의 법칙인 것 같았다. (293)

위든 스콧은 화이트 팽의 결점을 고치려고 했다. 아니, 인간이 화이트 팽에게 저지른 잘못을 보상해 주기로 했다. 그것은 원칙과 양심의 문제였다. 그는 화이트 팽이 당한 학대를 인간이 진 빚이라 생각했고, 그 빚을 보상해 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이 싸우는 늑대에게 특히 다정하게 대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날마다 화이트 팽을 쓰다듬고 다독여 주는 것, 그것도 오랫동안 다독여 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꼬박꼬박 그렇게 했다.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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