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 - 소박한 미식가들의 나라, 베트남 낭만 여행
진유정 지음 / 효형출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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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엔진과 경적 소리가 울려대는 길가에서도
몇십 년쯤 도를 닦은 사람처럼
시끄러운 세상을 평화로이 바라보는 여유로운 눈빛과
절대 서두르지 않는 손길.
국수 앞에 앉은 시간을 즐기는 그들에게서
쫓기며 끼니를 때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50)

음식의 분위기를 일순간에 바꿔버리는
마법의 라임처럼, 엄지 손톱만 한 금귤처럼
나도 어떤 자리에서 어떤 관계에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
그저 사람들 속에 동글동글 섞여 있다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있다가
분위기가 시들해질 때 살짝 나타나
아주 작은 생기라도 더해줄 수 있다면. (128)

나는 뜨거운 국수를 좋아하지만 까오러우를 보면 미지근한 국수도 훌륭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뜨겁지도 않고 자극적이도 않은, 심심하면서도 깊은 맛. 다른 어떤 양념도 더하지 않고 면의 감촉 그 자체로 먹는 까오러우. 대부분 음식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더 달아지고 짜지고 자극적인 뭔가를 첨가해 조금은 맛이 변질되지만 까오러우는 맨 처음 만들어 먹은 그때와 달라진 게 없을 것 같다. 호이안이 무역항으로 번성했던 시기에 살았던 누군가가 환생해 지금의 까오러우를 먹는다면, 자신의 전생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투본... 강이 내려다보이는 2층 어느 식당에서 까오러우를 먹던 그 시절을. (177)

이렇게 사랑스러운 국수들이 온 도시에 가득한 베트남.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에서는 정작 ‘국수‘라는 단어가 없다.
가늘고 긴 면발로 마든 음식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따로 없다.
국수가 베트남어로 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당황한다.
‘퍼‘라고 부른다더니 ‘분‘이라고도 했다가 ‘바인까인‘이라 말하고
스스로도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다는 데 놀란다.
혼자서 그 이유를 짐작해본다.
퍼는 퍼고, 분은 분이고, 바인까인은 또 바인까인이기에
‘국수‘라고 얼버무릴 수 없는 거라고.
각각의 존재와 특별함을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는 거라고. (208)

꿔이Quay
국수나 죽에 적셔 먹는 튀긴 빵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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