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산다는 것 - 사후 생존이라는 현상에 관한 보고
레이먼드 A.무디 지음, 주진국 옮김 / 행간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무디 박사의 저서에 비판을 가할 두 번째 집단은 이 같은 연구를 ‘비과학적’이라고 여기는 과학자와 의사다.
나는 우리 사회가 변화의 시대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새로운 것에 문호를 열고 오늘날의 과학 수단이 이러한 새로운 연구에 적합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나는 이 책이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들에게 새 문을 열어주고, 그들에게 새로운 연구 분야를 평가할 희망과 용기를 부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디 박사의 연구가 진실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성실하고 정직한 연구자가 쓴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연구와, 무조건 믿기보다는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에서 이 새로운 분야의 연구를 수행할 용기를 가지 진지한 과학자와 학자 그리고 성직자들의 연구 결과도 이 책의 내용을 뒷받침해준다. (8)

이 책의 출간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널리 퍼져 있으면서도 좀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한 현상에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이에 대해 좀 더 수용적인 대중의 태도가 형성되도록 돕는 것이다. 특히 심리학, 정신의학, 의학, 철학, 신학 등 다수의 학문과 성직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방식에도 이 현상이 심대한 중요성을 갖는다는 굳건한 믿음 때문이다. (15)

죽음을 논하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복잡하다. 그 논의가 언어 자체의 속성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인간 언어의 어휘는 대체로 우리가 오감으로 경험하는 것을 지칭하다. 하지만 죽음은 인간의 의식적 경험 세계 너머 저편에 있는 어떤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죽음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사회적 금기와 개인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뿌리 깊은 언어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20)

그가 내게 처음 한 말은 "죽을 준비가 되었는가?" 혹은 "일생 동안 한 일 중에서 내게 보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일종의 물음이었습니다. (69)

어느 날 숙모가 나를 보면서 말씀하시더군요. "조앤, 난 저승에, 저 너머 세계에 갔다 왔는데, 그곳은 아름답단다. 나는 그곳에 머물고 싶은데, 네가 너와 함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한 그럴 수가 없단다. 네 기도가 나를 여기에 붙들어놓고 있어. 이제 더는 기도하지 말거라." 우리는 모두 기도를 멈추었고, 숙모는 바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91)

그런데 그 일이 있고부터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도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속한 작은 세상을 벗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 같은 것은 아는 바가 없었지만, 그 일을 겪은 후 내가 하룻밤 사이에 성숙해졌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상이 얼렸습니다. 난 `알아야 할 것이 아주 많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한평생 삶에 금요일 밤의 영화와 미식축국 게임이 전부는 아니더군요. 그리고 모르는 것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난 `인간과 정신의 한계는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이 내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것입니다. (100)

뿐만 아니라 많은 경험자들이 지식 추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임사체험 중이 지식 습득은 사후에도 계속된다는 암시를 받았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은 `사망`을 경험한 뒤 자신에게 찾아온 모든 교육의 기회를 활용했다. 한 남성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공부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영원히 계속될 과정이니까요." (104)

따라서 이 책[티베트 사자의 서를 말함]은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나는, 죽음에 직면한 사람이 새롭고 경이로운 현상을 경험할 때 각 현상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산 사람이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사랑과 정에 이끌려 죽어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도록 하여 죽은 자가 망념을 버리고 모든 속계의 번민에서 벗어나 사후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30)

우리가 매일 듣고 보는 것 중 많은 것이 기억되지 않고 사라진다. 그러나 일단 무엇인가에 극적으로 끌려 주의를 기울이면, 그 후 그 대상을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낱말의 의미를 익히고 나면 며칠 동안 주변의 모든 읽을거리에서 그 낱말을 발견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이 낱말이 이제 막 언어의 유행에 자리를 잡고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보다는 그 낱말이 그 사람이 줄곧 보던 읽을거리 속에 있었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했던 그 사람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와중에 그 낱말을 보지 않고 건너뛰었던 것이다. (143)

이 불쾌한 `림보`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곳에 오래 있게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인생을 살면서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사실상의 `임무`에서 너무 일찍 스스로를 방면하려 함으로써 `규칙을 깬` 벌이었다. (151)

그러나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사항들만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사적인 문제들도 관련된다. 죽음에 대해 알게 되면 우리가 생을 영위하는 방식에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논의한 유형의 경험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이는 우리 각자가 우리 인생에서 행하는 것에 아주 심오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우리가 현세 너머에 존재하는 것을 일견할 때까지는 현세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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