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헤르타 뮐러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헤르타 뮐러. 그리고 노벨문학상. 


물론 내가 그녀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노벨문학상 때문이다. 여타의 작가들의 글에 쉽사리 관심 같지 않는 내가 그녀의 글을 읽은 것은 ‘쉽지 않은 시대를 살면서도 문학의 끈을 놓지 않은 그 정신’ 때문이다. 특히 <그 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유독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 한 표지가 눈에 들어와 손에 들게 된 책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나와 공통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쉽사리 읽히지 않는 글이기는 하나 단어와 단어의 조합으로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문장을 탄생시키는 그녀의 힘’. 모든 것을 박탈당한 시대에 더욱 간절했기에 온 힘껏 펜을 쥐었으며 그래서 그 간절함이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에게도 느껴지는 것이겠지.  



그녀가 온갖 유혹과 모함을 견디며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글을 읽으며 최근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중국의 반체제인사 류사오보가 떠올랐다. 류사오보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당국은 ‘중국 실정법을 위반한 죄인에게 상을 준다는 것은 노벨평화상의 취지에 맞지 않으며, 모독하는 일’이라고 하며 류사오보의 석방을 요구하는 국제 사회를 향해서는 ‘내정간섭’이라는 적합하지 못한 대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가벼운 ‘내정간섭’이 아니라 전세계가 중국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라 생각한다. 헤르타 뮐러의 소설 역시 정직한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권력자들에 대한 경고다. 더불어 동시에 언제 어디에서나 옳지 못한 자세에 대응하는 힘은 영원한 생명력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언젠가 책을 사며 함께 배달된 작은 책자에서 헤르타 뮐러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을 읽은 적이 있다. 차디찬 복도 계단에 작은 손수건을 펼치면 그 곳이 그녀가 지탱하고 살아가야 하는 작은 힘의 공간이었으며 그곳에서 부지런히 단어의 숲, 사전을 산책하며 글을 썼다는 이야기가 잊히지 않는다. 
 


동어반복일수도 있으나 나는 계속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싶고, 듣고 싶다. 현대사회, 망각의 동물로 살아가는 나약한 인간들에게 그녀의 담대하고 굳은 메시지는 꼭 필요하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동물이며, 또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지. 하지만 인간이 얼마나 강인하고 대단한 존재인지 그녀의 문학을 통해 검증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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