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어서 - 외롭지 않은 혼자였거나 함께여도 외로웠던 순간들의 기록
장마음 지음, 원예진 사진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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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지만 갑자기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곳에서 좋은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65


행복은 금방 지나가고 또 잊어버리기 쉬워 애써 찾아내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새 유통기한이 훌쩍 지나버린 냉장고 속 우유처럼 상해버린다.│102


준비한 것들이 다 동나면 급기야는 내가 가지고 있는, 사실은 나도 필요했던 것들까지 주어야 했다. 나는 시간을 주었고 감정을 주었고 집중을 주었다. 주도권을 주었고 관심을 주었고 얼마 갖고 있지 않은 자긍심을 주었다.│126


그러니까, 밥 같은 거다. 너무 많이 먹어도 탈이 나고, 그렇다고 아예 안 먹으면 굶어 죽는 일. 적당히 맛있게, 골고루 먹어야 한다. 사회적인 동물인 우리에게 사랑이랄지 관심이랄지 하는 것들은 밥만큼이나 중요한 걸지도 모른다.│167


누구나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며 산다.│196


오늘은 어제가 될 수 있지만 어제는 오늘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지나간 것들보다는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230


#혼자이고싶지만외로운건싫어서 #장마음 #스튜디오오드리


사람이라는 동물은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이런 모순이 다 있나 싶을 만큼 이상하고, 그래서 아름답기도 하다. 혼자여도 좋은데 외로운 건 싫다는 뉘앙스의 이 책 제목처럼.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같은 종족인 사람에게 가장 많이 상처받고, 가장 많은 치유를 얻는다. 사람이 싫어 떠났는데 결국 다시 사람 곁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사람을 등급 매겨 사귀던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하고(물론 그 실상은 나중에야 알게 됐고), 누구에게나 베풀던 허물없는 호의에 마음 주기도 하고(같은 마음일 거라 지레짐작했고), 때론 마음 줄 사람 없어 매일 같이 보던 이를 좋아하는 감정이라 되뇌며(아무라도 좋으니 좋아하는 감정에 빠져 눈앞의 외로움을 해갈하려) 헛헛한 마음 어딘가를 채우려고 했다. 그럴수록 어긋나고, 허기지고, 공허했다. 좋은 건 순간이고, 빈 느낌은 길게 남아 마음에 쌓여 갔다. 자신의 행복을 다른 이를 통해 얻으려 하니 그럴 수밖에. 그렇다고 혼자인 시간이 마냥 즐겁고 좋기만 했던 건 아니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책을 가까이하고, 가고 싶던 곳에 머물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 행복한 순간은 어쩐지 허전함을 느끼게 했다. 결국,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고 원하게 된다. 사람 곁이 힘들어도 사람 곁으로 돌아온다. 혼자의 충만을 느껴본 사람은 함께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온 소회는 그렇다.


저자는 누군가 지나온 새파란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예쁘기만 한 것 같은데, 들여다보면 똑같이 아프기도 한 새파란 시절을. 이 책의 글이 이렇게까지 어두울 줄은 프롤로그 읽을 땐 미처 알지 못했다. 밝고 소소한 분위기나 어둡지만 피식할 만한 포인트가 있는 글을 좋아하는데 이번 글은 읽을수록 어째서인지 마음이 축축 처지고 글자가 마음 주변에서 겉돌았다(글의 톤이 한 톤이었다면 몰입하기 더 좋았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말하듯 반말로 묻는 구어체나 갑자기 존댓말로 화자에게 말하는 몇몇 부분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과거의 한 부분을 들여다본 듯해 반갑긴 하다. 나도 그랬지, 그런 마음이었지 싶다가도 그 감정에만 머물라고 끌어당기는 것 같아 도망치고 싶었다. 마음이 힘들 때는 손을 뻗기가 망설여질 것 같다. 읽는 내내 가쿠타 미쓰요의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해》를 읽고 싶었다.


*스튜디오오드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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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 최신 신경생물학과 정신의학이 말하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폴 콘티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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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병들고 죽어가는 것은 신체적 질환뿐 아니라 일치적으로 그런 질환에 영향을 주는 근본적인 정신 건강 문제 때문이다.│17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트라우마에 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트라우마는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생각 이상으로 훨씬 만연해 있고 해로우며 전염성이 있고 종종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계속 무시하고 트라우마가 숨어 있도록 방치한다면 트라우마를 무찌를 가능성은 없다.│19

트라우마가 미래의 자녀, 즉 태어나기는커녕 머릿속으로 상상조차 하지 않은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해롭다는 것이다.│33

트라우마에 갇히면 자신의 가치, 꿈, 재능, 염원을 잊게 되는 것이다.│37

트라우마에 노출되면 몸과 마음이 둘 다 부정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다.│58

우리는 트라우마에 대해 적어도 환경 파괴나 대기 오염, 또 다른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예컨대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 공급 경쟁)와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어야 한다.│159

우리 문화에 존재하는 성폭력과 여성 혐오도 다 같은 맥락이에요. 강간같이 확실하고 끔찍한 트라우마가 있는 한편, 미묘한 차별과 미묘한 트라우마가 우리 주변에서 항상 생겨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억압하는 사람들이 용인되고 오히려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식의 문화가 형성되죠.│177

트라우마에서 치유되려면 가족과 친구, 의사와 상담사, 반려동물, 지지 단체, 약물, 정원 등 많은 동맹군에게 의존하는 것이 중요하다.│285

연민은 스스로를 도울 뿐 아니라 타인과 세상에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서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292

#트라우마는어떻게삶을파고드는가 #폴콘티 #정지호옮김 #심심

사람이라, 사람이니까, 사람이기에.

앞을 못 보시고, 글씨를 잘 못 쓰시고, 귀가 잘 안 들려 소통이 어려운 고령의 민원인을 대면하는 일이 많아진 이후부터 항상 주위를 한 번 더 돌아보곤 한다. 혹시 작은 손길이라도 필요할지 모르니. 그런 성격을 잘 아는 동생은 “아무나 함부로 도와주지 마. 그러다 잡혀 가면 어떡해.”라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낸다. 어쩌다 서로가 서로의 안전을 걱정하느라 연민을 뒤로 하게 되었을까. 어째서 연민을 느끼는 일조차 눈치를 보게 된 걸까.

대중매체에서 다루는 트라우마는 상당히 자극적이다. 오해 섞인 편견이 만들어낸 잘못된 개념이 사람들 인식을 파고든다. 트라우마가 있다고 말하면 듣는 이의 눈빛부터 달라진다. 때론 차갑고, 불편하고, 수치심에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잘 극복하고 행복하게 지내왔다는 생각은 그렇게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책 읽는 동안 밑줄을 얼마나 많이 그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인덱스 하나 붙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푸른숲 책에는 연필로 흔적을 남기게 된다. 트라우마에 대한 모든 것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인문학 책을 이렇게 술술 읽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매번 읽을 때마다 감탄이 끊이지 않는다. 저자가 직접 겪은 경험이 곁들여져 이해가 쉽고 공감의 강도가 높다. 인터뷰 형식의 글 또한 생생한 현실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저자는 아버지처럼 사업가가 되려 했으나 막내 동생의 자살을 겪고, 정신 질환 및 자살과 관련된 집안 내력을 알게 된다. 이후 정신의학을 전공, 정신과 의사의 길을 걸으며 신경생물학과 심리학을 기반으로 정신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또한, 트라우마가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줄이고 정신적 외상을 예방하기 위한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렇게 좋은 분들로 인해 몰랐던 지식을 습득하고, 알게 되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어, 앞으로 나아갈 길의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레이디 가가는 지금도 치유를 위한 여행 중이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사람이기에, 사람이니까, 사람이라 계속 여행 중이다. 해로운 감정에서 벗어나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 트라우마를 안고 있어 힘든 사람은 어서 손에 이 책을 들길 바란다. 그리고 혼자 안고 있지 않길 바란다. 첫 발은 누구나 언제나 떼기 어렵다. 우리는 다르지만 다르지 않으니까.

*푸른숲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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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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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 살거나 힘든 아동기를 보낸 사람은 필연적으로 음주와 흡연을 비롯해 건강을 해치는 위험한 행동들을 한다는 것이 통념이다.│93

각자가 어느 집단에 속해 있든 갑자기 모든 구성원의 ACE 지수를 밝힌다면 이것이 우리 중 아주 많은 사람과 관련된 문제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과거에 일어났던 슬프고 마음 아픈 일들은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트라우마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이유는 그것이 정말로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죄인이든 성자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끈질기게 이어지는 생물학적 결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우리와 우편번호가 다른 지역에서나 일어나는 일로 여기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할 것이다.│96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기면 스트레스 반응은 현재의 자극과 과거의 자극을 반복적으로 혼동한다. … 몸은 똑같이 치명적인 위험에 처해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문제는 그것이 깊이 새겨져 고착되는 것, 즉 과거에 붙잡힌 스트레스 반응이 반복 모드로 고정되는 것이다.│105

식욕을 떨어뜨리고 지방 연소를 자극하는 아드레날린과 달리 코르티솔은 지방 축적을 자극할 뿐 아니라 몸이 당분과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을 갈망하게 만든다.│112

나날이 직면하는 삶의 어려움들도 사랑을 품은 양육자에게 제대로 된 지원을 받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116

스트레스 반응 체계가 건강하게 발달하려면 아이는 긍정적 스트레스와 견딜 만한 스트레스를 모두 경험해야 한다.│119

“내가, 내 가족이 수 세대에 걸쳐 이런 상태에 이르렀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니 내가 그 모든 일에 완전히 대처하는 데도 제법 시간이 걸리겠죠. 하지만 이젠 내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단지 나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에요. 내 아이들의 ACE 지수가 8점이나 9점, 10점이 되지 않도록 내가 막을 수 있어요.”│336

나는 믿는다. 각자 이 문제를 직시할 용기를 가질 때, 우리의 건강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생길 것이라고.│414

#불행은어떻게질병으로이어지는가 #네이딘버크해리스 #정지인옮김 #심심

인문학에는 관심이 크지 않아도 심리학과 철학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고 관심이 간다. 어릴 때부터 사람의 심리와 삶과 죽음에 관심이 갔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뒤표지 문구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18세 이전에 반복적이고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암에 걸릴 가능성은 2배, 심장질환이 생길 가능성은 2.2배, 만성폐쇄성폐질환에 걸릴 가능성은 3.9배, 뇌졸중을 겪을 가능성은 2.4배, 자가면역질환으로 입원할 확률은 2배 높으며, 기대수명은 20년 짧다.

읽은 순간,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무시무시한 결과치 아닌가. 사람이라면 트라우마 하나쯤 가지고 살아가는 요즘 시대에, 어릴 때 새겨진 정신적 고통이 성장하면서 생물학적으로 몸에 영향을 끼친다니. 그것도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저자는 센프란시스코의 베이뷰 헌터스 포인트에 ‘아이들을 위한 웰니스 센터’ 설립자로, 소아과의사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저자는 아동기에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성인기에 나타나는 질병의 치명적 위험 요소임을 임상의학, 뇌과학, 면역학을 기반으로 밝혀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직접 겪은 경험 바탕으로 개념을 설명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의 가장 큰 핵심으로 언급되는 ACE 즉, ‘부정적 아동기 경험Advense Childhood Experiences’은 나에게도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정에 대한 정의를 열 가지 범주로 분류해, 18세가 되기 전 이 열 가지 경험 중 어떤 경험을 했는지 질문해 노출 수준을 판단한다.

1.정신적 학대(반복적)
2.신체적 학대(반복적)
3.성적 학대(접촉)
4.신체적 방임
5.정서적 방임
6.가정 내 약물남용(알코올중독자나 약물남용 문제가 있는 사람과 함께 거주)
7.가정 내 정신질환(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을 앓은 사람 또는 자살을 시도한 사람과 함께 거주)
8.어머니가 폭력을 당함
9.부모의 이혼 또는 별거
10.가정 내 범죄행위(가족 중 투옥된 사람이 있는 경우)

부록으로 첨부된 「내 ACE 점수는 몇 점일까?」를 통해 책을 읽은 독자도 자신의 ACE 점수를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아이에게 만큼은 불행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직 아이가 없지만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고 원하기에, 미래에 내게 올 아이 만큼은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면 좋겠다고 아주 간절히 바랐다.

어릴 때 트라우마로 남은 일이 있다. 지금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 극복했지만 이전까지는 사람 믿기가 너무 두려웠다. 이유 없이 잔병도 많이 앓았다. 그때 아팠던 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하다. 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구원을 만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이 이렇게나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해 준 이 책이 참 고맙다.

하나의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의 힘이 필요하다는 인디언의 말이 있다. 프레임을 바꾼 시선이 필요하다. 모두의 관심과 힘이 있어야 부정적 아동기 경험을 극복할 수 있다. 저자는 그렇게 믿고 외치고 있다.

신기하게도 푸른숲 북클럽 네 번째 미션 도서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또한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될지 궁금하다.

*푸른숲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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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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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자신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9

그 애는 어린아이처럼 눈이 동글동글했다. 얼굴은 햇볕에 살짝 그을렸고, 낯을 가리는 성격인지 내 쪽은 거의 보지 않았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쑥스러워하며 눈을 깜빡이다가 바로 시선을 돌렸다.│21, 연인에게

“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아버지의 분신인 넌 살아 있잖아. 그러니까 네가 기뻐하면 아버지도 분명 기뻐하실 거야. 너의 행복이 고스란히 아버지의 행복이 될 테니까. 핏줄이란 그런 거잖아. 그러니까 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돼. 항상 웃으면서 살면 된다고.”│40, 연인에게

“난 원래 낯을 가리는 편인데, 넌 처음부터 낯설지 않더라. 진짜 신기하다니까.”
‘나도 마찬가지였어.’│42, 연인에게

나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현실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도 상관없다. 네모토가 살아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그저 딱 한 번만 더 그를 만나고 싶다.│74, 연인에게

“한 가지만 말하자면, 남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네가 기쁨을 느끼는 일을 하면 좋겠구나.”│160, 아버지에게

“그러려면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해. 사람을 꺼리면 안 된다. 삶에서 해답을 가르쳐주는 건 언제나 사람이거든. 컴퓨터나 로봇이 아니라, 모든 걸 가르쳐주는 건 사람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서 사람을 만나봐라.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161, 아버지에게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만나고,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하는 거야. 극적이라 할 만큼 거리를 좁혀가는 방식이 대단히 멋지거든. 무엇보다 무수히 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선택해줬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214, 당신에게

“그저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거든.”│223, 당신에게

“내게 좋은 추억을 잔뜩 만들어 준 사람을 잊기는 어렵겠지요?”│300, 남편에게

#세상의마지막기차역 #무라세다케시 #김지연옮김 #모모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만날 수 있다면, 한 번만 더.

표지와 제목만 봐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만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일부러 밖에서는 많이 읽지 않았다. 단짝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가는 날도 이 책과 함께였다. 막 문을 연 백화점 앞에서 서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단짝을 기다리며 이 책을 펼쳤다가 두 장을 채 읽지 못 했다. 따뜻한 볕 아래서 읽고 있자니 눈앞이 더 일렁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순간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 이렇게까지 깊이 내 이야기처럼 이입해서 읽은 책이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움을 금할 길 없다. 이런 작품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손에서 떼어 놓기 싫을 만큼 너무도 좋았다.

3월의 어느 봄날, 열차 탈선 사고로 많은 사람이 소중한 존재를 잃는다. 사랑하는 연인, 버팀목이 되어 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슬픔에 잠긴다. 그러던 중 묘한 소문을 접하게 된다. 사고 발생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 니시유이가하마 역에 가면 여고생 유령이 나타나 사고 당일의 열차로 인도해 준다는 것. 희미한 열차는 맺힌 게 있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열차에 오른 사람은 네 가지 규칙을 지켜야만 한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소중한 이를 만날 수 있다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두 니시유이가하마 역으로 향한다.

네 편의 이야기가 각자의 사연을 풀어내다 어느 순간 연결된다. 앞의 이야기에 등장했던 인물이 다시 등장하는 순간, 울컥하고 만다. 막바지에 이르면 눈물이 주체가 안 된다. 카페에서 냅킨 두 장을 눈물과 콧물로 적실 정도로. 자꾸만 치미는 슬픔과 눈물 때문에 쨍쨍한 햇빛 속에서도 훌쩍이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사람은 태어나 삶을 이어가는 이상, 소중한 이를 잃을 운명에 처한다. 가혹하고, 잔인하게도.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온다면, 별이 된 사람을 다시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만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에 유독 인색했으니. 사랑한다고,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한다고.

1화. 연인에게
2화. 아버지에게
3화. 당신에게
4화. 남편에게

네 편의 에피소드 전부 잊지 못할 것 같다. 특히, 1화에서 도모코와는 한 몸이 되어 아픔을 같이 했다. 다음 달이면 결혼하려던 연인이 갑작스런 사고로 죽었다. 그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 감히 짐작하기도 두렵다. 그럼에도 살아준다. 전보다 더 열심히, 더 씩씩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잃고도, 세상 유일한 내 편을 잃고도, 다시 태어나도 사랑하겠다는 남편을 잃고도 살아준다, 모두들.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전부라는 사실을 되짚어 준다. 소중한 사람은 잃고 나면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잃고 나면 무조건 후회 뿐이다. 잃기 전에 가득가득 사랑을 전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전부 끌어모아서. 그래도 후회가 없진 않을 테지만 어떤 식으로든 사랑을 전할 테다. 도모코와 신이치가 그랬듯이, 유이치가 그랬듯이, 다카코가 그랬듯이, ‘아빠’가 그랬듯이.

*스튜디오오드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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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 본격 식재료 에세이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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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음식과 요리에서 기초란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중요하다. 따라서 기초를 최대한 다듬어 담은 이 책이 연령대나 조리의 숙련도를 크게 타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조리에 막 관심을 가져보려는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지식을 제공할 것이며, 익숙한 이들에게는 새로운 요령을 보충해 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나는 이 책이 특히 생존의 차원에서 조리에 관심을 가지려는 이들에게 닿기를 희망한다.│11, 작가의 말

🧂‘소금 간은 습관보다 한 발짝 더’│39, 향신료와 필수 요소

🫑파프리카를 잘 씻은 뒤 최대한 균일하게 모양을 잡아 썰 수 있도록 윗동과 밑동을 썰어낸다(썰어낸 부분은 볶음 같은 다른 요리에 쓴다고 늘 마음을 굳게 먹지만 대체로 칼질을 하면서 집어 먹게 된다).│71, 채소

🍠달수의 본명은 베니하루카(べにはるか)로 일본 고구마다. 규슈오키나와 농업 연구소에서 1997~2007년에 개발 및 육성한 고구마로 ‘규슈121호’와 ‘하루코가네’의 교배종이다.│110, 채소

🍎상큼한 신맛이 단맛만큼이나 두드러지는 아삭한 속살의 사과. 이렇게만 불러도 충분하다. 그만큼 이런 맛과 질감의 사과가 드물기, 아니 거의 없기 때문이다.│217, 과일

#오늘브로콜리싱싱한가요 #이재용 #푸른숲

식재료를 향긋하고 자상하게 대하는 상냥한 방법들.

건축 석사 저자의 본격 식재료 에세이다. 매우 실용적이고 일상과 밀접한 식재료 이야기에 눈이 즐겁다. 알고 있던 지식을 깔끔하게 손질한 느낌과 모르던 지식을 야무지게 담아낸 알찬 느낌이 꽉꽉 담겨 있다.

음식을 잘하고 싶은데 시도가 어려운 나 같은 사람도 요리하고 싶게 만든다. 마트에 가서 싱싱한 채소를 볼 때마다 저자의 말들이 생각날 것 같다.

저자가 어느 봄, 용인의 한 막국수집 마당에서 할아버지에게 산 마늘종이 너무 먹고 싶었다. 얼마나 맛있으면 인생 마늘종이 되었을까!

파프리카는 여름에 먹으면 더 맛있다. 색깔별로 다른 맛이 나는데 오렌지색을 가장 좋아한다. 씻어서 세로로 썰어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 후 먹으면 더위가 잊힐 만큼 시원하고 맛있다. 수분이 촉촉하게 충전되는 느낌! 오이도 비슷한 청량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토마토! 특히 대추방울토마토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5월에 들어서자마자 엄마가 사온 대추방울토마토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두 박스나 먹었는데 아쉬워서 한 박스 더 주문해달라고 요청할 정도.

사과는 부사, 아오리, 홍로, 홍옥의 품종으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책에서는 홍옥이 다뤄진다. 새빨간 빛깔과 단맛보다 신맛이 특징인 홍옥. 사과는 퍽퍽해지기 전에 먹는 게 베스트!

천도복숭아, 딸기, 수박 등 좋아하는 과일 또한 나열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란다. 이처럼 요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어도 공감하며 좋아서 방방 뛰게 하는 책이다. 채소와 과일 아니, 식재료를 사랑하는 사람이 읽으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식재료에 대한 애정과 상냥함이 깊게 느껴진다. 좋아하고 즐기는 식재료가 다뤄지니 더 반갑고 공감하게 된다.

먹고사는 일은 인간의 가장 기본 본능이다. 요리에 대해 막 관심이 생긴 이들에게도, 매일 요리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도 유용하게 쓰임받는 책이 될 것이다.

처음 만나는 저자의 작품이 이토록 상냥하고 세심해 더 좋았다. 저자가 번역한 《인생의 맛 모모푸쿠》 또한 꼬옥 읽어 보고 싶다.

*푸른숲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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