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 지음, 박재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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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낯선 세계에서 깨어난 립반윙클처럼 눈을 떴을 때 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면 어쩌지?”

아름다운 영상과 특유의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전세계 영화 팬들의 사랑 받는 감독. 이와이 슌지가 신작 『립반윙클의 신부』를 발표했다. 『러브레터』 『하나와 앨리스』 이후 12년 만에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만든 실사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감독이 집필한 동명의 소설은 일본 현지에서 영화 개봉에 앞서 출간되어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의 변함없이 아름다운 세계가 ‘소설가’ 이와이 슌지의 손에 의해 영화와는 또 다른 형태로 꽃을 피운다.

SNS에서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폐쇄적인 삶을 살던 주인공이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진짜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는 아름다운 풍광과 비일상처럼 느껴지는 일상의 장면들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와이 슌지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현실의 문제들을 독특한 사건과 배경을 통해 그려냈다. 여기에 다양한 동화적 모티프가 더해져 잔혹하고 아름다운 ‘현대의 페어리테일’이 탄생했다. 때로는 아련한 감성을 자극하고 때로는 신랄함으로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감독의 작품세계를 집대성한 ‘새로운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차가운 도시 도쿄에서 홀로 생활하는 23살의 나나미. SNS ‘플래닛’에서 만난 남자와 얼떨결에 결혼을 약속한 그녀는 결혼식에 부를 친구와 친척이 없자 플래닛에서 알게 된 남자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떤 심부름이든 해 준다는 ‘아무로’라는 이름의 남자가 섭외한 가짜 하객들 덕에 결혼식은 무사히 끝나지만, 나나미의 이 작은 거짓말은 생각지 못한 사태를 불러온다.

SNS와 현실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이던 주인공은 거짓말 때문에 파국을 맞게 된다. 이처럼 낯선 타인과 쉽게 소통하지 못하는 현실과, 그에 대한 반동인 것처럼 거리낄 것 없이 얼굴도 모르는 타인과 마음껏 소통을 즐기는 SNS 세상. 그리고 돈만 있으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서비스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 이와이 슌지는 이러한 현대의 모습에 주목해 ‘지금 이 사회,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이야기한다. 자유로운 소통을 위한 기능이 거꾸로 현실의 소통을 낯설게 하고, 갖가지 서비스들이 오히려 인간을 속박하기도 하는 씁쓸한 양면성이 등장인물들의 삶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진다.

 

<거짓 위에 쌓은 거짓>

이와이 슌지 작품을 글로 접하게 된 건 이 작품이 처음이다. 그가 만든 영화는 자주 접할 수 있었지만 그가 쓴 글을 접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영상도 물론 좋지만 글이 더 사람 마음 들여다 보기가 좋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접한 작품이 <러브레터>였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약간의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작품 곳곳에 숨어 있어 그것을 발견할 때마다 주는 신선함과 쾌감이 좋았다. 이 작품은 다른 의미의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작품 곳곳에 적나라하게 깔려 있었다. 첫 문단부터 글은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했다.

나나미는 순결을 잃지 않은 여자였다. 보통의 평범한 여자이자 솔직한 여자였다. 하지만 SNS를 통해 남자를 만나며 나나미는 더 이상 순결할 수 없었고, 솔직할 수도 없는 삶을 살게 된다. 거짓으로 시작된 연애와 결혼. 거짓 위에 쌓인 것들은 결코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남편으로 맞은 남자는 바람이 났다. 그 내연녀의 애인이 나나미를 찾아왔고, 기가 막힌 복수법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작품은 담담한 듯하면서도 기습적으로 날카롭게 파고들어 어딘가에 충격을 줬다. 때문에 나는 전반적으로 충격적이다, 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기존의 이와이 슌지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글을 막 읽기 시작했을 땐, 기간제(계약제) 교사인 여자가 뭐가 부족해서 거짓말로 사람관계를 이어나가야만 하나. 잘렸다 해도 다시 직장을 알아봐 일하면 되지 않나, 굳이 그 일이 아니라도 일은 얼마든지 있지 않나 등등 현실적으로 많은 것들을 나나미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 물음을 받게 되면 글쎄, 딱 부러지게 답할 수 있을지는 장담 못 하겠다. 사람이라 흔들리고, 사람이라 사람에게 상처 받기 싫은 법이고,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잘나 보이고 싶은 걸까. 그녀가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시작했는지, 그 거짓말을 가리기 위해 어떠한 거짓말을 또 했었는지. 그렇게 해서 결국 남은 게 무엇인지.

나나미는 아르바이트, 가정부 등 상상도 못했던 직업군을 전전하며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방황하듯 살아간다. 결혼이니 직장생활이니 자신의 꿈이니. 그런 것들을 쫓다 결국 나나미가 얻은 무엇이었나 곰곰히 생각해 봤다. 이 또한 딱 부러지게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결국 나나미는 원래의 모습으로 가장 비슷하게 돌아왔지만 예전의 그 여자가 아니었다. 나는 나나미를 전부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녀와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고, 그녀처럼 거짓 위에 내 삶을 짓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모습을 한, 그녀와 비슷한 모양새를 한 채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솔직해서 무서웠다. 거짓이 거짓이 아닌 듯 마치 진실인 양 태연자약하게 존재하는 모습들도 소름끼쳤다. 그래서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언젠가 나도 그러한 현실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다음 작품이 이래서 기다려지는 것 같다.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곁에 살아갈 법한 인물들을 만들어 낸다. 도저히 기다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알에이치코리아(RHK)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된 도서를 읽고 쓰여졌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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