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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소개>
십자가는 다른 두 직선이 단 한 번 마주친다.
우리는, 언젠가, 분명히, 마주친 적이 있다.
이야기는 어느 중학생 남녀의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만남과 함께,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경영하는 나카하라 미치마사가 경찰의 전화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혼한 전 부인 사요코가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11년 전, 여덟 살이었던 딸 마나미를 잃었다. 그때 마나미는 강도에게 살해당했다. 살을 살해한 범인은 강도살인죄로 수감된 전과가 있고, 당시는 가석방 중인 몸이었다. 재판에서 범인은 사형을 받았지만, 함께 사는 것이 괴로워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결국 이혼했다. 나카하라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5년 전부터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운영해왔고, 사요코는 최근까지 도벽증 환자들에 대해 취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요코가 살해된 것이다. 범인은 자수했지만, 두 번이나 유족이 된 사요코의 부모는 범인의 사형을 원한다. 범인은 68세 노인으로, 사요코의 가족들은 물론 나카하라도 전혀 본 적 없는 사람이다. 범행 동기는 돈을 갈취하기 위한 우발적 살인이라 했고, 범인의 사위에게 사죄의 편지가 도착한다.
이 소설은 범인에게 어떤 형벌을 내려야 마땅한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지만, 이는 표면에 불과할 뿐 본질은 속죄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일본 아마존 리뷰를 보면 사형 제도에 관한 분분한 의견들을 볼 수 있다. 반드시 사형 제도가 존속되어 누군가에게 가장 큰 형벌로 내려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잘못된 판결의 선례들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것을 감안, 사형으로써 벌하는 것은 무의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사형이라는 것은 찬반으로 나뉘어 양립할 순 있지만 우열로 가릴 순 없는 길고 긴 논쟁의 화두인 것이다. 그렇다면 원점으로 돌아가 제도 등의 모든 꼬리표를 떼고 원론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만약 살인 사건의 유족이 된다면 우리는 범인에게 어떤 형벌이 내려지기를 바라야 할까. 소설의 구절처럼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로 묶어두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 이입되고 그 마음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형 제도에 대한 생각도 흔들리게 될 것이다. 숨 쉴 수 없을 만큼의 긴박한 전개와 주인공의 심정을 파헤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능력에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멈추고 내용을 곱씹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읽는다는 표현보다 체험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이 소설은 앞부분의 수많은 복선이 후반부에 핵폭탄처럼 터지며 휘몰아치며 대답할 수 없는 의문을 계속 던진다. 단언컨대, 그러면서도 사형 제도와 속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을 덮은 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수작이다.
딸의 죽음과 전 부인의 죽음. 그리고 숨겨진 제3의 죽음. 이 세 사건과 뒤얽힌 과거, 아오키가하라 수해에 관한 수수께끼가 서서히 밝혀진다. 이 과정에서 치밀하게 직조된 이야기가 놀라온 결말을 선사할 것이다.
책장을 덮을 때, 당신은 과연 어떤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형벌의 무게와 의미>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과연 사람이 사람을 죽인 일에 대한 형벌은 어떤 의미일지, 얼마 만큼의 무게일지 번뇌하게 만든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국가가 정한 법에 따라 심판 받는다. 과연 그 심판은 얼마나 완전한 것일까. 그 법을 만든 존재가 바로 불완전한 사람인데.
딸을 잃은 남자와 여자. 딸을 죽인 사람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처우라고 희생자의 유족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그 범죄자가 죽는다고 죽은 딸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살아 숨쉬는 꼴은 못 보겠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희생된 생명을 보상 받아야 되는가. 공허한 십자가는 끊임없이 묻고 있다.
이번 글도 결코 쉽지 않았다. 결코 가볍지도 않았다. 그들의 고통을 전부 이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생각하게 됐다. 나한테도 있지 말라는 법 없는 그 일에 대하여.
법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존재해야만 된다. 그렇다면 사람을 죽인 인간들은 모두 죽어야 하는 걸까. 반성하지 않은 채 죽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려둘 수 있을까. 저자는 해답을 주지 않았다. 나 역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할 수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