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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 언어생활자들이 사랑한 말들의 세계 ㅣ 맞불
노지양.홍한별 지음 / 동녘 / 2022년 3월
평점 :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데에서 느끼는 기쁨.│22
날 행복하게 하는 책은 네가 언젠가 말한 것처럼 소설가나 전문 작가, 즉 글쟁이가 쓴 책, 그렇게 까다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평이하지도 않아 약간은 도전이 되는 책, 무엇보다 문장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책이야.│32
최대한 한국어처럼 읽히게 자연스럽게 옮기려 하다 보면 담대한 시도는커녕 지나치게 길들여 동글동글 순한 자갈돌들만 남겨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 출발어와 도착어가 만날 때 서로 다른 언어 체계와 문화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충격, 단층, 균열이 그 특별한 만남의 흔적으로 글에 남아 있어야 하지 않냐는 거지. 모난 돌들이 글을 읽는 우리의 살갗에 거슬리고 낯설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가슴에 상처를 내고 언어 감각에 사라지지 않는 압흔을 남길 수 있는 것도 그 모난 돌들일 테니까.│101
번역이 잘된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책의 번역가 이름과 이력을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돼. (…) 내가 만족스러운 독서 체험을 할 수 있게 된 건, 밤늦게까지 스탠드 불을 밝혀 놓고 눈이 아플 때까지 검색을 하고 동의어 사전을 뒤진 번역가 덕분이다 싶어져. 이게 쉽게 나온 결과물이 아니란 걸 아니까.│179~180
가끔은 아무리 사랑하는 책이라고 해도 직접 번역을 하면 책에 애증을 갖게 되기도 하잖니. 멀리서 보면 한없이 훌륭한 사람이지만 같이 살거나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면 환상이 깨지는 것처럼 말이야.│226
내가 번역한 책이 출간되거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때도 기쁘지만 역시 번역이나 집필 의뢰가 들어오면 그날 하루는 웃으며 보내게 되더라. 우리에게 메일을 보내는 편집자들은 거의 모두 문장력이 좋고 예의도 바르잖니. 내 번역서나 책을 읽고 어떤 점이 좋아 의뢰를 하게 되었다는 메일을 받으면, 작은 사랑 고백을 받은 것마냥 기뻐져.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 오로지 내 노력과 성과로 인정받는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조금은 기특해하라고, 자기 학대 같은 건 하지 말라고 말 걸어주는 것 같아.│247~248
#우리는아름답게어긋나지 #노지양 #홍한별 #동녘
편지로 오가는 마음은 언제나 아름답다.
동녘의 편지 시리즈 ‘맞불’의 첫 번째 이야기를 읽으며 번역가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 두 번역가를 포함한 번역하는 모든 분들은 얼마나 많은 고뇌와 싸워 이긴 걸까. 번역하는 마음이 창작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안다(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이 기회에 더 잘 알게 됐다).
번역을 대하는 마음에서부터 화자에 맞춰 언어를 연구하는 노력, 수많은 번뇌 끝에 번역한 작품을 출간하지 못하고 워드 파일로만 간직해야 하는 아쉬움, 사라지는 것이 운명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것이 규칙일지라도 번역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친밀하고 담담하게 담아냈다. 친구와 주고받는 편지 느낌이 물씬난다.
두 번역가는 영어로 된 작품을 번역한다. 일본문학을 좋아하는지라 낯익지는 않아도 알고 있던 이름들. 앞으로는 두 번역가의 작품을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작품이 가까이 느껴지리라.
번역가의 꿈을 가지고 있다면 꼭 읽어 봐야 될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만큼 솔직하고 세세하게 번역가에 대한 마음을, 실상을 녹여낸 책은 찾기 힘들 테니.
이 책을 읽다 보니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라는 작품이 많이 떠올랐다. 서간체 형식의 작품이 더 많이 기획되고 출간되면 하고 바라게 된다. 편지에는 마음 한 켠이라도 진솔하게 담아내고 녹여낼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동녘의 ‘맞불’을 계속 기다릴 것이다.
*동녘에서 도서 증정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