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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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는 사과나무와 함께일 때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한 편의 시로 인해 메트로폴 호텔의 허름한 다락방에서 평생 지내게 된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스 백작. 누구든 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백작은 자신이 처한 난감한 상황에서도 행복을 찾으려 한다. 어쩜 자신의 콧수염을 밀어버린 무자비한 인간에게도 화내지 않을 수 있는지. 성인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성품이다. 이런 사람을 미워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은데, 비숍(레플렙스키 지배인)은 한결같이 신사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빛이 있으니 어둠이 있는 건 당연한 이치인가.


읽는 내내 백작의 신사다운 면모가 어찌나 멋지고 좋은지 정신없이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책표지도 신사님처럼 멋지고 고급스러워서 자꾸만 보게 됐다. 상징적인 그림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더 마음에 들었다. 700쪽 넘는 책이라 완독할 수 있을지 걱정 먼저 앞섰는데 일단 읽으면 순식간에 책장이 넘어갔다. 러시아의 시대적 배경과 많은 예술가가 등장할 땐 소설을 읽는 건지 역사 공부를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만큼 시대가 변화하는 모습을 현실적으로 잘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시대가 해야 할 일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할레키 씨. 그리고 신사가 해야 할 일은 시대와 함께 변화하는 것이지요.” -122쪽


신사님은 호텔을 벗어나지 않고 지내는 생활에 지쳐가던 어느 날, 스스로 모든 걸 정리한 채 생을 마감하려 한다. 어찌나 가슴 철렁하던지. 이때 그를 살릴 건 사과나무였다. 잡역부 아브람의 역할도 컸지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건 사과나무였다. 니즈니노브고로드. 신사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인 그곳. 어쩌면 이 광활하고 풍성한 이야기는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뒤로 하고 돌아온 신사님은 보야르스키 식당에서 웨이터로 근무하게 되면서 큰 전환점을 맞는다.


인간은 우리가 가능한 한 많은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겪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관한 견해를 보류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194~195쪽


괄괄한 것 같지만 세심하고 철저한 주방장 에밀, 따뜻하고 배려 깊은 지배인 안드레이, ‘대사’의 이름을 지어 준 절친 미시카,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배우 안나, 예편한 적국 대령인 오시프,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 준 꼬마 숙녀 니나, 그리고 니나가 데리고 온 세상 가장 소중한 소피야. 그 모두는 신사님의 소중한 사람들이다. 이들 덕분에 30년 세월 동안 호텔에 갇혀 지내면서도 신사님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잔뜩 새길 수 있었다. 사람은 곁에 있는 사람들로 인해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절절하게 느꼈다.


하루살이 같은 사랑을 하루살이 신세에서 면하게 해주는 것은 결국 우리의 애끓는 슬픔뿐이니까. -295쪽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후반부에 몰아쳐서 더 좋았던 작품이다. 요즘처럼 자유롭게 다니지 못할 때, 보고 싶은 사람들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이때 읽어 더 적격이었다. 신사님의 무한 긍정 에너지를 생생히 느끼고, 위로받고, 힐링하고 싶다면 단연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신사님의 매력 속으로 퐁당 빠져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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