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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평점 :

욕망에 굴복당한 인간은 뭘 잃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 얼마나 비참한 인생인가. 여기, 그런 인생 하나를 끝까지 파헤치려 한 사람이 있다. 사라진 새의 행방을 찾기 위해, 인류가 잃은 소중한 것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가 있다. 이 책은 커크 월리스 존슨이 실제 일어난 사건을 생생하게 담아낸 논픽션이다.
6월 23일 아침, 에드윈은 눈을 떴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에드윈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142쪽
공교롭게도 11년 전 생일과 같은 날, 그리고 다음 날(6월 24일)에 걸쳐 이런 비극이 일어났다니. 혀가 절로 차졌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영 모른 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에 눈멀고, 진짜가 아니면 의미 없단 욕구의 노예가 된 에드윈 리스트는 영국 트링박물관에 침입해 새 가죽 299점을 가방 하나에 쑤셔 넣어 달아난다.
스무 살의 에드윈에게 박물관의 새를 훔쳐야겠다는 생각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더 정당화됐다. 그 새들만 있으면, 플루티스트로서 야망도 실현하고, 타잉계에서 그동안 누리고 싶었던 지위도 누리고, 가족도 도울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새의 가치는 점점 높아질 것이므로 어떤 힘든 상황이 와도 자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험이 될 것 같았다. -140쪽
스무 살, 꿈도 많고 하고픈 일도 많았다. 에드윈처럼 이루고픈 꿈도 있었고, 갖고 싶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궁하고, 뭔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어도 분수에 맞지 않는 것까지 욕심내 훔친 적은 없다. 어느 면에서는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남들은 생각만 했던 일을 실행에 옮긴 거니까. 그래도 범죄를 저질러 놓고 제대로 된 처벌도 받지 않은 건 엄연한 잘못이다. 그건 대단한 것도 뭣도 아니다. 그저 범죄일 뿐. 죄를 시인하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비겁자에 지나지 않는다.
“저는 제가 도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생각할 때 도둑은 강가를 어슬렁거리다가 남의 주머니를 슬쩍하는 사람이죠. 다음 날, 다시 거기로 가서 또 다른 타깃을 찾고요. 아니면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물건을 훔쳐서 먹고살거나 혹은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도둑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가 학교 텔레비전을 훔쳤던 일을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저는 제가 도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도둑이 ‘아니에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요. 지갑이 떨어져 있어도 저는 가져가지 않을 겁니다. 지갑에 신분증이 들어 있으면 어디 찾아줄 만한 곳에 갖다줄 거라고요.” -297쪽
플루티스트가 되고 싶었던 청년이 어느 날 플라이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아름다운 플라이를 직접 만들면서 진짜가 아니면 만족할 수 없어, 희귀 새의 깃털을 갖고자 인류의 재산을 훔치기에 이른다. 순순히 자백해놓고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해 아스퍼거 증후군 판정을 받는다. 재판 결과는 집행유예 12개월. 이미 멸종됐고 곧 멸종될 새를 훔친 에드윈 리스트는 단 하루도 감옥에서 보내지 않았다. 누군가는 목숨을 다해 수집하고 지켜온 소중한 자연을 훔쳤음에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인간의 집착과 욕망으로 언젠가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이 멸종할지도 모른다. 인류의 멸종 또한 머지않다는 걸 진정 모르는 걸까. 자연이 돌려줄지도 모르는 크나큰 재앙을 진정 모르는 걸까.
“그럼 대체 뭡니까? 그건 그냥 집착일 뿐이잖아요. 집착! 오리지널에 대한 집착. 하지만 빌어먹을 오리지널 따위는 세상에 없어요!” -267쪽
읽는 내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어 경이로웠다.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월터 로스차일드와 같은 학자들이 후대에 뭘 남기고자 했는지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알지 못 했을 것이다. 《깃털도둑》은 커크 월리스 존슨의 수고와 집념의 결정체와도 같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뛰어들었다. 커크 월리스 존슨 역시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표지에 있는 깃털의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채에 사로잡혔던 걸까. 에드윈 리스트가 그러했듯이. 마지막 쪽을 다 읽고 나서 느꼈던 허탈감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지금도 누군가는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 선명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