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숨결
박상민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안온한 날들을 살아가다 보면 종종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전부가 꿈은 아닐까, 하는 망상 같은 느낌 말이다. 아주 행복한 한때를 누리고 있는 지금이 꿈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이제껏 살아온, 사랑한 모든 것들이 꿈이었다면. 생각하기도 싫게 끔찍할 것 같다.

 

이 책을 덮고 나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독자가 판단하도록 하는 동일한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새로운 시도는 좋다. 한국 미스터리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싶어 감탄하기도 했다. 허나, 많은 걸 담다 보니 뒷심이 부족했던 걸까. 숨 가쁘게 따라갔으나 명확한 진실은커녕 안갯속을 헤매다 결국,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안개 안에 갇힌 채 모든 게 끝난 것 같았다. 충격을 안겨준 동시에 허탈했다. 이런 끝을 알았더라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어째서 ‘논란의 결말’이 됐는지 실감한 순간이다.

 

외과 레지던트 현우는 안온한 삶을 추구해 왔다. 친부 죽음에 의문을 가진 환자 나리와 조우하기 전까지는. 처음부터 모녀의 갈등은 진했다. 벌레 보듯 엄마를 싫어하는 나리. 주치의인 현우에게 나리는 아버지의 죽음이 엄마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리 아버지 죽음에 대한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모든 게 흐릿해져만 간다. 진실이라 믿고 있는 사실은 과연 진실이 맞는 걸까. 중반부가 조금 넘을 때까지는 진실 찾기에 몰두하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붉은 공포가 들이닥친다. 이가라시 다카히사의 《리카》가 찾아온 줄. 어찌나 무섭던지. 몰아치는 후반부는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거 알아요? 저도 원래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어릴 때 어떤 의사 선생님이 저보고 의사가 될 운명이라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저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가 의사가 될 거라고 믿었어요.” -401쪽

 

믿고자 하면 꿈도 현실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어 버리는 존재니까. 진실이든 아니든 결국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 믿으면 그게 곧 진실이 된다. 진정 무서운 일이다.

 

“진실이 항상 옳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천만의 말씀. 주변을 둘러봐요.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알고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네? 당장 쌤도 고작 그놈의 진실 땜에 이 세상에서 사라지실 예정이구. 쯧쯧.” -403쪽

 

장마가 찾아온 시기에 읽기 딱 좋았다. 현직 의사가 써서 그런지 한국 의료계의 현실적인 모습이 단연 돋보였다. 의료진의 고충, 교수와의 관계, 환자와 의사의 관계, 동료 사이 등 사회 비판적인 모습도 생생히 담겨 있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랬기에 더 살갗에 와닿는 충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차기작이 나온다면 다시 한번 믿고 읽어 보고 싶어질 것 같다.




* 이 작품은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피맛골잔혹사 카테고리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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