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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ㅣ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평점 :

진실은 언제나 하나!
‘독자가 추리해야 진정한 추리 소설’이라고 말했다는 저자. 밀고 당기기 정공법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악의》 대신 읽게 된 작품인데 기대 이상으로 몰입했다. 읽기는 한참 전, 받자마자 다 봤는데 마지막까지 결론을 내릴 수 없어 마감날까지 끌고 왔다. 다른 이들의 추리를 봤는데도 완벽하게 납득되지 않는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일 진 데 이번 이야기는 왜 이토록 진실에 다다르기 어려운 걸까. 가독성도 좋고,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도 마음에 드는데 결론이 없어서 후련한 맛이 부족하다.
“내가 죽으면, 아마 가장 좋을 거 같아.” -45쪽
야스마사는 동생 소노코와의 통화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오랜만에 고향 집에 내려온다던 동생은 계속 연락 두절 상태.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소노코의 맨션을 찾은 야스마사는 죽은 누이와 마주한다. 형사의 직감으로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음을 간파한 야스마사는 집안에 남아 있는 흔적을 지운다. 스스로 범인을 찾겠다 맹세한 것. 출동한 경찰 중 날카로운 눈매로 현장을 살펴보는 이가 있었으니, 가가 교이치로 등장! 사소한 증거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기민한 자세는 변함없다.
“하지만 영수증이 없어요.”
“영수증?” 야스마사는 가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허를 찔린 듯한 심정이었다.
“소노코 씨는 돈 문제에는 상당히 꼼꼼한 편이었어요. 독신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가계부를 착실히 써왔거든요. 11월분까지는 모두 더 적어두었고, 12월분은 영수증을 챙겨뒀더군요. 아마 월말에 한꺼번에 기입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89쪽
소노코가 타살이라면 용의 선상에 오르는 자는 둘. 연인이었던 준이치와 단짝 친구라 믿었던 가요코. 여기서부터 쓴웃음 나는 삼각관계 냄새가 난다. 흔한 소재라 살짝 아쉬울 뻔했는데, 소노코가 죽음에 이른 방식이 생전 처음 접한 방법이었기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살에 쓰였던 방법이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의견에도 무게가 실린다. 대체 그녀는 누가 그렇게 만든 걸까. 어째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는가. 그녀가 사라지면 누구에게 이로운 걸까.
가가에게 주어진 단서가 얼마 없다. 그 안에서 진실로 가는 길을 찾아야만 한다. 야스마사의 계획을 꿰뚫어 보듯 앞서가는 가가의 추리 능력에는 고개를 내둘렀다.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꽃같이 곱게 생긴 사내가 어디에 이런 냉철하고 날카로운 면을 숨기고 있는 것인가. 형사가 체질인가. 가가의 매력은 파도 파도 끝이 없다.
가가 형사, 당신과 다시 한번 술을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요, 라고 말한다면 이 남자는 어떤 얼굴을 할까. -383쪽
이 한 문장에 명료하지 않은 결말에 대한 기분 나쁨이 사르르 녹았다고 한다면 믿을 텐가. 두 형사는 다시 한번 술잔을 기울였을까? 《잠자는 숲》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아직까지는.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보다 멋있고 부드러운 ‘가가 교이치로 형사’를 만나고 싶다면 어서 정주행 모드 발동하시길. 《악의》 정말 읽고 싶다. 거기엔 형사로 전직한 가가의 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