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 김희재 장편소설
김희재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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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욕심이 되는 순간


책을 받고 설렘보다 놀람이 더 컸다. 표지 디자인은 미스터리인데 크기가 ‘어머, 귀여워’ 소리 나오게 작았다. 정식 출간본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고. 최근에 읽은 장편소설 중 가장 짧은 건 분명하다. 읽고 나서 여운은 벽돌책 그 이상의 것이라 자부한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결말. 충격적인 진실에 닿기까지 숨 가쁘게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최첨단의 집. 거기, 정진과 서원 그리고 원우가 살고 있다. 벤처기업 대표이자 출중한 실력의 프로그래머인 정진은 정석 그대로 ‘공대오빠’였다. 인간미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그에게 서원은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이었다. 허나, 서원은 정진의 사랑을 온전히 담을 수 없다. 함께 살았던 연인인 승우를 계속 사랑하는 상태이기 때문. 전 연인의 아이까지 낳은 여자와 결혼한 정진.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욕심인지 그 경계가 첨예하다.


“원우 데리고 내려올게요. 같이 배웅할게요.”

원우라는 말에 정진의 얼굴이 급속하게 굳어졌다. -12쪽


배우자가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심정이란 어떨까. 감히 상상조차 하기 싫은 지옥 아닌가.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서원이나, 헤어진 연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진이나. 사랑 하나로 감내하긴 모두가 아픈 진흙탕. 게다가 서원은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연인, 승우의 아이까지 낳아 기르고 있다. 보통 이해심으로는 견딜 수 없는 현실. 정진은 모든 걸 감내하고 결혼했지만 밤마다 2층으로 향하는 서원에게 서운할 수밖에 없다.


몸이 아프고 열이 있으니 시야가 흐려졌을 수도 있고, 눈에 한 꺼풀 낀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진은 2층의 움직임에서 지난밤과 비슷한 것을 느꼈다. 섬뜩함이었다. -115쪽


아내와 아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가 지내는 2층. 그곳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 사람만 모르는 일이.


여느 19금 로맨스 소설 못지않은 농염함과 긴장감 넘치는 전개가 작품의 몰입도를 높여 준다. 한국 장르 소설이 이렇게까지 재미있을 수 있구나, 또 한 번 느끼게 된 작품이다. 다채로운 영상처럼 느껴지는 생생한 문체 또한 작품에 푹 빠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로맨스 소설이라면 질색하던 사람이 이 정도로 극찬하는 작품이면 읽고 봐야 한다. 진실에 닿은 순간,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다. 아직도 씁쓸한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미스추 마니아라면 올해 꼭 읽고 넘어가야 할 작품이다. 다만, 모호하게 끝나는 결말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한 번 더 생각해 보길 권한다.




* CABINET에서 도서 증정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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