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의 여름
이윤희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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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랗고 새파란 파랑이 일렁이는, 그건 사랑이었지.


항상 언니였던 적밖에 없어서 언니나 오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누군가 의지해 주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의 품에 의지하고 싶을 때가 더 많다. 유약하고 연약한 사람이라 어른이 된 지금도 나이가 많은 지인들에게 자주 기대고 싶어진다. 여기, 다정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무던한 언니를 둔 해원이 있다.


열세 살. 파랑이 잘날 없는 날들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남자애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지고지순했던 마음이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무슨 기념일도 아닌데 시도 때도 없이 뭔가를 그 애 사물함에 몰래 넣어 놓고, 마음을 담은 편지도 참 많이 전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돌아오는 마음은 차갑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주보는 마음이 아니라 그렇게 애타고 절절했는지도 모르겠다.

해원이 여름방학에 아버지 출장지로 엄마와 언니와 가는 모습부터 그 파란 바다에서 같은 반 산호를 만나는 장면까지 참 예쁘게도 담겨져 있어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해원과 산호처럼 그렇게 예쁜 열세 살의 기억이 없어서일까. 내내 씁쓸하고 서툴고 엇갈리기만 했던 열세 살. 그때는 되고픈 것도, 하고픈 것도 많았는데, 재고 따지고 할 거 없이 좋으면 무작정 달려들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한 번 행동하려면 수십 번을 생각하고 고민해야 했다. 어른이 되면 마냥 좋겠다 싶었는데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서글프고 애달픈 어른 신세라니. 그렇게 세상에, 현실에 치여 있을 때 추억의 아이들을 만나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해원이 진아와 교환일기를 쓰는 걸 보고 ‘아, 나도 친구랑 저거 했었지!’ 추억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좋아하는 남자애 때문에 고민하는 해원을 보며 ‘나도 저랬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해원이 좋아하는 애가 우진이라는 잘못된 소문에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속상할까.’ 감정을 많이도 녹여내 깊게 공감했다.

설익고, 덜 자라고, 떫은 푸른 맛이 강해도 그건 사랑이었을 것이다. 사랑이 달리 사랑이 아니라 해원이 산호에게 품었던 마음도, 산호가 해원에게 품었던 마음도, 우진이 해원에게 품었던 마음도, 려희가 우진에게 품었던 마음도 다 사랑이었을 테다. 그 아이들은 열세 살을 어떻게 기억할까? 시어서 삼키지 못하고 뱉고 싶은 맛일 수도 있고, 박하사탕처럼 달기도 맵기도 해서 개운한 맛일 수도 있고, 파란 바다처럼 깊고 편안해지는 맛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였든 그 시절의 푸른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면 좋겠다. 검푸른 빛이었어도 열세 살, 그때 여름을 떠올리며 작게 웃을 수 있기를. 오랜만에 지난날을 추억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두께감이 있어 읽는 데 오래 걸리겠구나 걱정부터 했는데 순식간에 읽어 버려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림도 예쁘고, 무엇보다 등장하는 아이들 마음이 여러모로 예쁘게 보여 좋았다. 그때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해서.


현실에서 멀어져 잠깐이라도 추억에 젖고 싶다면 당장 해원과 산호와 우진을 만나러 오길! 그 아이들은 언제나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 창비에서 도서 지원 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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