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사랑은 확실히 사람을 미치게 하고


잊지 못할 상처를 가진 채 자란 아이는 상처 있는 어른이 된다. 얼마 전 읽은 시마모토 리오의 《퍼스트 러브》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여자가 등장한다. 칸나. 직접적인 폭력은 없었지만 정신적인 폭력으로 인해 어딘가 결여된 채 살아가야 했다.


엠마 슈타인은 정신과 의사이면서 어릴 때 아버지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을 가진 채 자란 어른이다. 엠마는 행복해 보였다. 사랑하는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임신한 평범한 나날이 계속되는 여느 평범한 여자와 다르지 않았다. 한 학회에서 한 거짓말에서부터 모든 일이 시작된 지도 모르겠다.


학회로 인해 지친 몸으로 가기보다 학회 측에서 잡아 준 호텔에 머물기를 택한 엠마. 그날 르젠호텔 1904호에서 있었던 일 이후, 엠마는 집 밖에 나가지 못 하고 지독한 편집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우편배달부에게서 부재중인 이웃의 소포를 대신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악몽 같은 시간의 서막이었다.


세상이 워낙 흉흉해서 사람을 잘 믿지 못 하는 요즘. 어린 시절 트라우마 때문에 한동안 교복 입은 남학생이나 젊은 남자만 봐도 무서워 일부러 멀리 돌아가거나 멀찍이 떨어져 빨리 걸어갔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완전히 낫진 않았다. 그런 세상에 엠마처럼 끔찍한 일을 겪은 직후라면 어떠하겠는가. 우편배달부라도 보기 껄끄럽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웃의 소포까지 맡아 버리다니. 게다가 받는 사람 이름까지도 수상한데…….


엠마가 정말 정신병에 시달리는 건지, 아니면 정말 그녀를 그렇게 만든 놈이 가까이에 있는 건지. 예측할 수 없는 전개에 답답함을 감출 수 없는데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후반부에 이르면서부터는 혼돈의 카오스 속에 있는 듯했다. 뭐가 진실이고 현실이고 거짓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소름 끼치는 예감이 들었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얼마나 사랑해야 그런 미친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는 걸까.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읽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처음 읽는 독일 작가가 쓴 글이라 혹시라도 정서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공감이 잘 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미친 듯이 생생해서 실제, 안색이 초록색으로 변하기도 했을 것이다(거울이 없어 확인은 못 했지만 속이 좋지 않았다). 쉬는 텀이 많았는데 그건 너무도 생생했던 탓이다. 엠마가 구역질을 하면 구역질이 목구멍 바로 앞까지 치밀었다. 그만큼 사실적이고 세세한 심리 표현과 현장 설명이 끝내 줬다.


마지막까지 섣부른 판단은 금물. 맨 끝 문장을 읽기 전까지 긴장 늦추지 말길. 뒤통수 맞아도 책임 못 진다. ‘사랑’이 눈에 보이는 형태를 갖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거기다 정도에 따라 색도 달리 보였다면, 그랬다면 누구 하나라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다 읽고 난 지금도 충격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자의 첫 국내 출간작인 《테라피》는 반드시 읽어야겠다. 궁금해서 미칠 것 같으니까!




*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 지원 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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