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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증거 범죄 ㅣ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지금 소중한, 계속 소중할 가족이라는 이름의 안식처를 찾아서
사랑의 궁극적 극치는 가족이 아닐까. 어릴 때부터 편안한 집이 좋았다. 그건 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함께 하는 그들 때문에 밖에 나와 있으면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여기, 나와 같지 않았을까 싶은 남자가 있다. 뤄원. 닝보시 공안국 형기처 처장을 지내고 성 공안청 수사 전문요원으로 그 누구보다 법의학자라는 직업이 잘 어울리는 사람. 그에게도 단란한 가족이 있다. 아니, 있었다고 해야 하나. 아내와 어린 딸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가 출장 후 돌아온 집에 있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따스하게 맞아 주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증발해 버렸다. 뤄원은 8년이 넘도록 가족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머리카락 한 올 찾을 수 없고, 그들에 대한 소식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딘가에 살아 있겠지, 희망을 갖고 생각할 수밖에. 그러다가도 최악의 순간을 떠올리기도 했다는 그. 그의 눈앞이 얼마나 막막하고 까맸을까. 그 긴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견뎌온 걸까. 헤아릴 수 없는 안타까움에 신음했다.
실마리 하나 찾을 수 없던 연쇄살인사건.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범행도구와 지문, 피해자 입에 물려 있는 리췬 담배 그리고 ‘나를 잡아주십시오’라고 타이핑된 종이 메모. 긴 간격을 두지 않고 또다시 발생하는 살인사건. 그 모든 건 단 하나의 진실로 향하고 있었다.
결국은 이렇게 될 일이었다……. -421쪽
처음엔 그저 흥미로웠다.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중국 작가가 쓴 글인데도 어렵지 않게 몰입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읽은 《잠중록》과는 또 다른 의미로 눈을 뗄 수 없었다. 사회파 추리소설을 더욱 중점적으로 읽게 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이웃한 나라이다. 중국에서의 사회 모습이나 한국에서의 사회 모습이나 일본에서의 사회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게 경악스럽고 충격적이다. 흉악 범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더욱더 현재 사회 모습을 반영한 글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구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현실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니까. 앞으로 더 많은 관심을 둘 생각이다. 다른 나라 소설이라 어려울 것 같아서, 배경 지식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피하지 않겠다. 내 눈과 귀를 가린다고 가려질 현실은 아니기에.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어마어마한 인력이 투입되고, 이미 경찰 일을 그만둔 수학 교수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이 찾아든다. 범죄논리학 전문가인 옌량은 항저우시 형정지대 지대장인 자오톄민의 부탁으로 비밀리에 수사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뤄원을 만나면서 풀 수 없는 방정식을 만나고 만다. 그 방정식을 풀 방법은 반증법.
미지수를 유추하는 단계가 끝났으니, 이제는 고차 방정식의 해를 검증할 차례였다. -266쪽
해를 정하자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진실을 향해 질주한다. 끝내 진실은 두 천재를 덮쳤다.
어느 누구도 웃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이런 결말은 생각하지도 못 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결말이었던 걸까. 입이 쓰고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이라 책을 덮고도 한참을 멍하니 희미한 조명 아래 앉아 있었다. 《모래그릇》과 비슷한 뒷맛이 느껴졌다. 정신 차렸을 땐 동틀 무렵의 깊은 새벽이었다.
때로는 투명한 진실이 막연한 희망보다 더 잔인할 때가 있다. 날카롭게 파고든 진실의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아마 전부 잊을 수는 없으리. 사회파 추리소설 중 단연으로 꼽힐 만하다. 이 작품의 시리즈인 《동트기 힘든 긴 밤》과 《나쁜 아이》 또한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읽어야 할지 망설일 이유조차 없다. 그저 읽고 통감하기를 바란다.
*한스미디어에서 도서 지원 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