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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평점 :
"나는 육체노동자가 되려고 했던 생각을 접고, 다시 인텔리의 자리로 돌아갔어요. 그러면서 나는 소위 머리에 먹물 든 인텔리라는 개인이 그 편안한 직업과 사회문화적 권위를 팽개치고 사회의 천시를 받는 육체노동자가 되려는 생각이 얼마나 관념적인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나는 무슨 변명을 해도 결국은 한국형 인텔리로서 다시 권력의 심부름을 할 수밖에 없는 언론인으로서, 독자 대중에 불성실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자신의 처지가 서러웠어. 다만 어차피 육체노동자가 될 수 없다면, 모든 외적 제약과 구속에 대해서 최대한으로 저항하면서 개인으로서 가능한 노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 그것이 1969년 겨울의 일이었지." 리영희, 임헌영, <대화>, 396쪽.
고등학교 시절, 수학은 내 공부시간의 절반을 차지했다 (턱 없이 부족했던 절대공부시간 중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학성적은 공부시간에 비례하지 않았고, 바닥을 쳤다. 선생은 수학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고 통보(?!)했다. 성적은 주가가 아닌지라, 바닥을 친 성적은 끝내 튀어 오르지 않았다. 과감하게 난 공부시간의 절반을 자유시간으로 전환했다.
그 시간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개가 무협지와 만화책이었지만, 이 외에도 여러 종류의 책을 접하려고 노력했고 그 때 우연히 접한 책이 바로 리영희 선생님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였다.
생각해보면 그의 글을 온전히 이해했던 것은 아니다. 글 전반을 관통하는 엄격한 논리와 근거 그리고 단호한 태도는 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서술체계였고 매력적이었지만 그만큼 낯설었다. 그러나 몇 푼의 이해였을지라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의 소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의 주장이 내가 알고 있던 '진실'보다 설득력 있고, '평화'적이라는 사실이 놀랍고 혼란스러웠다.
그것은 하나의 계기였다. 무조건 옳다고 믿었던 정부와 언론과 학교선생의 말들을 차츰 의심하기 시작했고, 모든 '말'들의 이면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렇게 사춘기의 저항심은 적절한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교과서 밖의 세상을, 어른들이 내게 주입하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훔쳐 보았다'는 사실에 어떤 쾌감에 휩싸였다. 학교생활에 지친 내게 그것은 일종의 해방감이었다. 1996년 여름 문턱이었다.
(http://sekaman.tistory.com에서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