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ㅣ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빌 브라이슨의 글은 유머와 재치로 가득하다. 잘난 척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표현한다. 종종 신랄하지만, 악의는 느껴지지 않고 때로 음흉하지만 솔직하다. 상쾌한 문체다. 때문에 짜증의 광풍이 몰아칠 때 읽으면 한결 진정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래 문장의 시시껄렁함은 대학시절 친구들과 후미진 술집에서 낄낄대며 주고 받던 시덥잖은 농담 같아 유쾌하다.
네덜란드 맥주를 손에 들고 창가 테이블에 앉아 창밖의 광경을 보면서 이 큰 도시를 아름다운 운하와 쾌활한 창녀들, 풍부한 마약으로 채우다니 네덜란드 인들은 얼마나 멋진 사람들인가 말하곤 했다. <발칙한 유럽산책>, "암스테르담", 133쪽
그런데 변하지 않은 점도 있었다. 독일 여성들은 여전히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았다. 나는 항상 이 점이 어리둥절했다. 모두들 그토록 세련되고 아름다운데 팔만 들면 수세미가 매달려 있다. 그 편히 풋풋하고 구수한 흙냄새도 나면서 자연스럽지 않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밭에서 캐는 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겨드랑이에 무를 달고 다니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함부르크", 159쪽
물론, 이런 농담만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이런 진지한 고민도 있다.
오늘날 모든 것은 지금 기차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실용성이 떨어지는 풍차처럼 기껏해야 세련된 외관을 자랑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웬만한 도시 외곽마다 양철이나 콘크리트로 대충 지어놓고 대형 마트라고 부르는 곳들처럼 싸구려 가건물처럼 보인다. 인간은 문명을 건설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쇼핑몰이나 짓고 있다. "코펜하겐", 165쪽
여러 블록에 걸쳐 길 하나가 전부 이런 가게들 일색이며, 주변 골목길까지 이런 매매춘 업소가 퍼져 있었다. 암스테르담에, 아니 세상에 단지 사정이라는 행위 하나를 하기 위해 이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걸 믿을 수 없다. "암스테르담", 145쪽
그리고 이런 (편견이 섞인 하지만) 재치있는 해석도 있다.
스무살 때 나는 개방성과 관용, 마약과 섹스 그리고 나이 스물에 하지 못해 안달인 여러 악행에 대한 느긋한 태도 때문에 암스테르담을 좋아했다. 실은 열렬히 존경해 마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하게도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하다. 암스테르담 주미들은 이런 톨레랑스(자신과 다른 종교, 종파, 신앙을 가진 사람의 입장과 권리를 인정하는 것)의 전통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취한 다음에는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는 사람들처럼. 이런 문제에 대한 지성인의 관용 또는 톨레랑스를 수백년 동안 찬양해 왔기 때문에 낙서나 마약에 찌든 히피와 개똥, 쓰레기 따위를 점잖게 묵인하는 태도를 이제 와서 버릴 수가 없다. 물론 내가 상황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개똥과 쓰레기를 좋아해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제발 그렇기를 바란다. 개똥이 많아도 보통 많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 141쪽
남의 시선을 의식한 글보다는 본인의 생각과 견해에 충실한 글이 훌륭한 글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의 교육은 일하는 기계가 아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http://sekaman.tistory.com에서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