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한 추상적인 개념의 ‘자유‘가 역사를 통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리고 수치심이 끓어오른다. ‘나‘의 가벼움에 닭살이 돋는다. 내 아픔만 크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베트남 학살로 고개를 숙인다. ‘나‘의 성공을 위해 달렸던 순간들이 일제 통치 하에서 한 명의 개인으로서 성공하고 싶었던 박정희와 다를 바 없었다. 비전향으로 감옥에서 죽은 최남규 선생의 말에 그 사정을 알리 없는 또 다른 ‘나‘는 웬 치매 걸린 노인이 헛소리를 하느냐고 코웃음을 쳤을까? 김일성에 대한 무지한 편견은? 마을 구석에 숨어 있는 듯 나타난 여호와의 증인 건물을 보며 여기에 세워진 이유가 있겠지 사이비가 아닐까? 반감어린 호기심으로 시선을 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란 의견에 동조하고 싸잡아서 비판했던. 그 마음이 미워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는 그저 운 좋게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