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가 장난 아니던 목요일 오후.

일에 대한 집중도는 급격히 저하되고, 어디 짱박혀 있을데가 없을까 고민하며 글라스타워를 배회했다.

배회하더라도 화장실밖에 뾰족히 나를 짱박아줄 공간은 없었다.

이놈의 비인간적인 글라스타워 또는 티맥스소프트의 여유없음.

 

화장실에 앉아 손에 잡히는 핸드폰을 열고 전화번호부를 ㄱㄴㄷ순으로 죽 읽어 내려간다. 도대체 왜 저장되어있는지 정체를 알수 없는 이름들은 언제 왜 저장한건가 하고 하나둘 삭제를 하기도 했고, 이인간은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하고 연락한지 오래된 녀석들의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 보기도 하다가, 전화번호부의 마지막을 향해 갈때쯤 차현철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잘지내냐? 소주한잔 해야지?'

문자를 날렸다.

1분도 안돼서 울리는 전화벨.

'이놈도 엥간히 일하기가 지루했다 보다.'

 

누구누구하고 언제 볼까를 마치 중요한 비지니스 협상하듯 이래저래 따지다 결국 다시 전화 준다는 말과함께 간만의 통화를 마쳤다.

다들 바쁘고, 사정있고, 외국에 나가 있고 해서 결국 홍근이, 나, 현철이 금요일 강남에서 보기로 정리가 되었다.

 

비내리는 금요일 오후 7시30분 강남역 6번출구.

올라가는데만 10분이 걸린다.

맘먹고 뛰어 올라가면 15초도 안되는 계단이다.

미어터지는 인간들의 무더기.

결국 5번출구쪽으로 돌아 나오라고 현철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강남을 돌아다니는 여자들이 유독 눈에 많이 들어온다.

몰랐는데 정말 많이들 짧아졌다. 반바지든 미니스컷이든 허벅지를 내놓지 않는 여자들은 적었다.

밤에 보면 살색이 아닌 하얀색으로 밖에 안보이니 당연히 눈에 많이 들어 올 수 밖에.

 

초장부터 소주 뚜껑을 거침없이 돌려댔다.

교묘히 살짝 이어져 있는 소주 뚜껑의 그 가느다란 알루미늄 연결 부위가 적당한 힘을 주어 돌리때 끊어져 나가는 그 건조한 금속성의 가느다란 소리.

아무튼 셋이서 그 소리를 9번 들었다.

결코 적지 않은 양의 소주속의 알콜이 혈관을 통해 일부는 뇌 어디론가 들어가서 희안한 말들을 만들어 내고, 일부는 가슴 어디론가 들어가 괜한 흥분을 하게 하고, 일부는 장기 어디론가 스며들어 다음날 몸을 무겁게 만들어 놓았다.

 

확실히 불과 2~3년전 하고 몸상태가 많이 달라졌다.

발기가 전에 만큼 확실하고, 용기있게 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올린다는 것이 상당히 귀찮다는듯이 그녀석이 게으름을 피우는것과 무관하지도 않다.

몸속의 기운이라 불리우는 어떤 보이지 않는것들이 숨쉬는 사이 이산화탄소에 섞여 날아가는 알콜과 함께 공기중 어디론가 사라진듯하다.

결국 이게 나이들어가는것, 老化의 첫 도입부분이 아닐까 하는 아주 우울한 생각을 하게된다.

알콜성 우울증의 미세한 초기 현상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나마 맥주보다 소주가 나은듯한테, 지난주 있었던 티맥스 돌발 맥주 회동후 그 후유증보다는 그래도 오늘은 조금 나은듯 했다.

이제는 술을 먹은 다음날은 내가 조금씩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낄수 밖에 없어 괜한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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