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준의 생활명품
윤광준 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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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서 읽을때 즈음은 내 생일이 다가 오고 있던 때였다.

와이프는 며칠전 부터 선물로 뭐 갖고 싶냐고 물어 오던 터였고, 그닥 선물로 받고 싶은건 생각 나지도 않았다. 그냥 날 내버려 두는게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긴 했지만, 차마 입밖으로 뻔뻔하게 농담을 가장하여서라도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꼭 선물을 고르기 위해서 샀던책은 결코 아니었다.

윤광준의 책은 '소리의 황홀'때 부터 즐겨 읽었고, 그의 수컷 다움을 배우느라  왠만하면 신간을 내면 장르 안가리고 사읽어 왔었다.

문장 자체가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해독하는 수준이 아니면서도 꽤 깊이 있는 생각들도 접할 수 있기에 그의 책은 항상 재밌다. 항상 옆에서 조분조분 이야기 해주는 느낌이다.

이번 책의 제목은 또 어떠한가. 결코 안사고는 배길 수 없을 만큼 흥미로운 제목이다. 이제 '윤광준'이라는 말은 단순히 저자가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정보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화된, 즉 '윤광준이 이번에는 무슨말을 할까'라는 흥미를 자아내는 그 자체로서의 타이틀이 되버린 그런 단계에 이른것이다.

아무튼 시기적 상황이 그러했었고, 또 물어보는 와이프의 뭐 받고 싶냐는 말에 계속되는 면도로 트러블이 끊일날 없는 턱 밑이 갑자기 생각나서 전기 면도기나 하나 받고 싶다고 했다.

책을 쇼파에서 읽다가 근처에 던져 놓고 회사를 갔다온후 생일날, 커다란 상자가 마루에 놓여있었고, 나름 음,, 생일 선물인가 보다 하고 헤헤 거리며 현관문을 들어 섰었다.

근데 , 왠 면도기가 저래 클까?라고 생각을 하기도 전에 시야에 들어온것은 필립스라는 로고였다.

아차 싶었다.

와이프가 내가 읽다만 저 책을 뒤적 거렸었다면, 분명 필립스 아키텍 전기 면도기를 봤을테고, 속으로 '저인간이 이걸 보고 전기 면도기를 사달라고 했던 거였던가??'라고 생각했을테고, 그렇다면 만만치 않을 가격을 보고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을테고, 그러다가 어쩔수 없이 울며 겨자 정도가 아닌, 울며 캡싸이신(고추의 매운성분으로서 식당에서 매운맛을 낼때 이 캡싸이신 농축액을 쓴다) 먹기로 하나 뿐인 남편 선물을 사러 갔을테고, 다시 한번 사기 직전에 자기가 예상한 예산을 뛰어 넘는 남편 생일 선물로 어지간히 고민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구 어쨌거나, 와이프에게는 오해 아닌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했다.

결국 너 필립스 아키텍 그거 갖고 싶어서 생일 즈음에 이책을 사서 교묘히 집안에 두고, 나름 잔대가리 굴려서 받아 낸거 아닌가 아닌가 하는 ...

아무튼 잘한건지, 어떤건지 판단이 잘 서지 않지만, 책 덕분에 와이프에게서 뜻밖의 고가의 선물을 받아서 투자대비효율(ROE)에 있어서는 최고의 책이 되버리고 말았다.

 

아참, 책에 대해서 말하자면, 명품이라는것은 결국 명품이라고 말해지는 그것이 아니라, 자신이 애착을 갖고 그 물건의 효용과 가치를 발견해서 만들어 가는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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