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베이커리 1 한밤중의 베이커리 1
오누마 노리코 지음, 김윤수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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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밤중의 베이커리』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사실 난, 구병모 작가의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를 떠올렸다. 아마도 제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던 한 고등학생 소년이 우연한 기회에, 인간으로 위장한 마법사가 운영하는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 여기에 각자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이커리를 방문한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읽는 이는 삶의 어느 한 구석이 조금씩 삐걱대는 주인공 소년과 베이커리 손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를 상처를 간접적으로나마 치유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작가인 오누마 노리코의 소설, 『한밤중의 베이커리』도 기본적인 설정은 『위저드 베이커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베이커리'라는 특정 장소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런 식의 스토리는 기존에 출간된 다른 많은 소설들과 TV 드라마 등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것일 듯하다. 하지만 이런 진부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한밤중의 베이커리』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힘을 지닌 이야기였다.

일본의 한 주택가 부근에 블랑제리 구레바야시Boulangerie Kurebayashi라는 간판을 단 빵가게가 있다. 각각 검은 옷과 흰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운영하는 이 가게는 독특하게도 오후 23시부터 오전 29시까지(묘한 느낌을 더하기 위해서였는지 책에는 이렇게 나와있지만 아마도 23시에서 다음 날 새벽 5시까지인 듯하다) 문을 연다. 여느 때와 같이 평온하게 영업을 시작하던 이 빵가게에 어느 날, 노조미라는 고등학생 소녀가 들이닥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유일한 피붙이인 엄마로부터 어려서부터 제대로 보살핌을 못 받고 이 집 저 집을 떠돌며 자라온 데다 설상가상으로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까지 당하고 있는 노조미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세상 어려움 모르고 자라온 듯 선해빠지고 약간은 어리버리해 보이는 빵집 주인 구레바야시와 성격도 불같고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르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정이 넘치는 제빵사, 히로키와 함께 블랑제리 구레바야시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노조미는 조금씩 변해간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여기에 가족의 보살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온 어린아이지만 제 엄마만큼 끔찍하게 사랑하는 고다마, 불행했던 과거의 기억 때문에 현실에 제대로 발 붙이고 살지 못하는 고다마의 엄마, 오리에, 42제곱미터의 원룸 안의 세상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자칭(때로는 타칭) 변태, 마다라메,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혼란을 느끼는 여장 남자인 소피아 등의 인물이 함께 등장하면서 혼자라면 불안하게 흔들리는 이들이 함께 모여 든든하게 두 발로 서게 되는 모습을 그려간다.

인생에는 궂은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다고는 하지만, 사람에 따라 유난히 맑은 날이 많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유난히 궂는 날이 많기도 할 것이다. 『한밤중의 베이커리』에 등장하는 이들의 삶에도 (지금까지는) 유난히 궂는 날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고민이 있을 때 내가 털어놓는 고민에 귀기울여 줄 친구 한 명만 있어도 고민의 절반쯤은 줄어들지 않던가? 한밤중의 베이커리에 모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힘들고 어려울 때 일수록 서로 힘이 되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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