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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 - 텃밭 옆 작은 통나무집 88세, 85세 노부부 이야기
츠바타 슈이치.츠바타 히데코 지음, 오나영 옮김 / 청림Life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여차하면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아직 30 + α의 나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은퇴 후 나의 노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일단 어디에서 무얼하든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부와 명예를 가졌다해도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없겠지. 그리하여 건강은 필수. 그리고 노년에 경제적으로 쪼들리면 정신적으로도 쪼들리게 되기 십상이니 아주 부자는 아니더라도 경제적인 여유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노년의 질을 결정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마음가짐, 혹은 생활 태도를 가지고 시간을 보낼 것인지가 아닐까.
"텃밭 옆 작은 통나무집 88세, 85세 노부부 이야기"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는 6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8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독자들 앞에 풀어놓는다. 일본의 나고야시 근교에 위치한 코우조지 뉴타운에는 이들 노부부가 사는 일명, '츠바타 하우스'가 있다. 은퇴 전, 건축 관련 일을 했던 남편, 츠바타 슈이치씨가 조성을 담당했던 뉴타운이 지금은 이들 노부부의 보금자리가 된 것이다.
슈이치씨가 존경하는 건축가인 안토닌 레이먼드의 집을 본떠 만들었다는 이 집은 침실과 거실과 부엌의 경계가 따로 없는 원룸형 공간이다. 그리고 통나무로 만든 이 작은 집은 70여 종의 채소와 50여 종의 과일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200평 규모의 텃밭을 마주하고 있다. 철마다 이 곳에 씨를 뿌리고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친환경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과 나누어가며, 이들 노부부는 젊은 시절 꿈꿔왔던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니라던데, 과연! 함께 살아온 날이 반 세기가 넘는 이들 부부도 서로 닮은 듯 하면서도 굉장히 달라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 보완해가며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아 보였다. 가령, 굉장히 꼼꼼한 성격을 지닌 슈이치씨는 덜렁대는 히데코씨를 위해 직접 만든 메모를 집안과 텃밭 이곳저곳에 붙여놓아 히데코씨의 실수를 줄이고, 대범한 히데코씨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집안일이 굴러가게 만드는 데 앞장서는 식이다. 이렇게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었기에 이들 부부가 90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함께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글과 사진과 슈이치씨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이 책을 읽는 것은 매우 즐거웠는데,
-건강하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며 나와 내 남편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어서 좋았고,
-일부는 사진가가 찍고 일부는 슈이치씨와 히데코씨가 직접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에서조차 따스한 감성이 뚝뚝 묻어나와 좋았고,
-손재주가 뛰어난 슈이치씨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를 보는 것도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맛이 넘쳤고,
-치즈 크래커나 유베시, 미트 파이 등, 슈이치씨와 히데코씨가 즐기는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를 소개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피곤한 한 주를 보낸 주말, 내내 집에서 뒹굴뒹굴하다 월요일을 맞으면 왠지 주말까지 바쁘게 보낸 이후보다 더 피곤한 느낌이 든다. 괜시리 더 몸도 기분도 축 처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주말에도 바쁘게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츠바타씨와 히데코씨의 노년 생활이 바로 그랬다. 늘 무언가를 뿌리고 거두고 치우고 정리하고 만들고 나누는 생활. 몸은 조금 고단할 지 몰라도 마음이 건강하고 결과적으로는 몸도 건강한 생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어제가 그랬고 오늘이 그랬듯 내일도 따뜻한 햇살 속에서 보내겠다는 츠바타씨와 히데코씨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들이 맞이할 미래의 하루하루가 늘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펼쳐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미래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