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
기노시타 한타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기노시타 한타. 나로서는 이름도 처음 듣는 작가였다. 프로필을 읽어보니 이렇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야구소년.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학원을 다니며 파친코로 생계 유지. 이후 영화감독이 되고자 영화 전문 학교에 입학했으나 강사진과 싸우고 중퇴. 그리고 나서 극단을 결성해 각본가와 배우로 활동하다 극단 해산 후 남은 배우 한 명, 스태프 세 명과 또 다른 극단 창단. 극단 활동을 하면서 배우 양성소의 강사로도 활약을 했지만 그 양성소가 파산하게 되어 오갈 데 없어진 학생들과 또 다른 극단 창단. 연극을 하면서 지인과 술집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개점 후 술집 문을 닫을 때까지 5년 동안 하루하루를 술로 지새움. 이후 작가로 데뷔했는데 데뷔작, 『악몽의 엘리베이터』는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 옮겨졌고 40만부의 누적 판매량 기록. 현재는 술을 끊음.

 

파란만장 하다.

그리고 책 내용도 꼭 그렇다. 파란만장.

 

내가 좋아하는 일본 영화 중에 <녹차의 맛>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괴짜 가족인 하루노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사람들, 참으로 엉뚱하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런 과한 엉뚱함 속에서도 정겨움과 유머와 따스함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내가 영화, <녹차의 맛>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처음에 『폭주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라는 책의 제목과 간략한 줄거리를 접했을 때, 나는 영화, <녹차의 맛>을 떠올렸다. 대학생 연인에게 버림을 받은 아빠는 일본에서 가장 긴 미끄럼을 한 번 타고 나면 실연의 상처를 잊을 수 있을 것이라며 가족 여행을 제안한다. 그리고 아빠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그 여행을 흔쾌히 따라나서는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 여기까지만 읽어도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평범하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이 책과 이미 마음에 든다는 결론을 내린 영화 사이의 유사성을 찾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녹차의 맛>과 유사한, 내 기준에서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유머와 감성코드를 기대했었던 것 같다.

 

책은 술술 잘 읽힌다. 책의 뒷머리에 등장하는 옮긴이의 말에는 '무척 즐겁게 번역했다'고, '영화 만큼은 아니지만 드라마를 보는 만큼의 속도로 번역한 것 같다'고 쓰여 있었다. 번역자도 흥이 나서 술술 번역해 내려갔던 것처럼 독자로서 나도 속도면에서는 막힘없이 술술 잘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는 빨강을 더 없이 좋아하고 또 다른 누구는 빨강을 지독히도 싫어하듯이 동일한 대상이라도 누군가로부터는 총애을 받고 또 누군가로부터는 그 만큼의 대접을 못 받을 수도 있는 듯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에게 이 소설은 그다지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계평화를 위해 뭘 할 수 있느냐고요? 집에 돌아가 당신의 가족이나 사랑하세요." -테레사 수녀-

책의 서두에 등장하는 한 문장. 이 책의 주제다. 그런데 이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이렇게 극단적인 사건과 캐릭터들까지 동원해야 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가정교사와 육체관계를 맺는 고등학생 아들,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벌써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은 딸, 그 딸을 잊지 못해 나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가족을 몰살시켜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는 야쿠자 피라미같은 딸의 전남편, 남편의 사후 보험금을 노리고 본심을 숨기고 테레사 수녀처럼 살아가는 부인, 딱히 하는 일 없이 이 여자 저 여자랑 계속 바람이 나는 남편, 그리고 매력적인 외모 덕에(?) 몸을 함부로 굴린다는 비난을 받는 가정교사, 교통사고에 납치, 강간미수,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이없는 죽음까지.

 

(다시) 옮긴이의 말을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뭔가를 읽을 때마다 의미를 찾아내려는 것도 병이다.'

나는 그런가 보다. 뭔가를 읽을 때마다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독서 성향인 걸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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