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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변경선 ㅣ 문학동네 청소년 9
전삼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지난 2009년 단편소설, 「딱」으로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한 전삼혜 작가. 그녀의 장편소설을 읽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않는 작가는 없는 듯하다. 그리고 여기,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어린(1987년 생이다.) 작가, 전삼혜는 『날짜변경선』이라는 제목의 다분히 자전적인 소설을 내놓았다. 놀라운 것은 내가 스스로를 알 것 다 아는 성인이라 여겼던 대학교 1학년 때 초등학생이었고 내가 가슴에 늠름하게 이름표 달고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 쯤 세상을 향해 첫 울음을 터뜨렸을 이 작가가 풀어낸 이야기는 나와 내 동년배 친구들이 공유하던 이야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설, 『날짜변경선』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우진, 윤희, 그리고 현수. 이들의 삶이 교차하는 지점에 '백일장'이 있고, 인터넷 모임터 '날짜변경선'이 있다.
이들 셋은 소위 '백일장 키드(Kid)'다. 시가 좋아서, 시를 읽고 쓸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서 예고로 편입까지 해 백일장에 참가하는 우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그림을 잘 그렸으면 그림을 그렸을 것이고 노래를 잘 불렀다면 음악을 했을 것이라는, 하지만 거의 매번 참가하는 백일장마다 상을 휩쓰는 윤희. 그리고 왜 그런지 딱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상 한 번 못타면서도 꾸준히 백일장에 참가하는 현수.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백일장에 참가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서로를 질투하고, 오해하고, 미워하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이들은 서로에게 다가가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믿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나도 백일장에 자주 참가했었다. 상을 타거나 할 때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크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마음껏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과는 거리가 먼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 이외의 다른 꿈을 키우게 되었다.
물론,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우진과 윤희와 현수의 그것, 그러니까 백일장 키드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고민을 한 때는 나도 했었고 그들이 맛보는 좌절과 희망을 나 또한 경험한 바 있다.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학만 들어가면, 대학교 시절에는 직장만 잡으면 나의 앞날은 마치 호호 불어가며 깨끗하게 닦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맑은 날의 풍경처럼 선명할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또한 그렇지 않았다. 한 계단을 올라보면 그 다음 계단에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보이질 않고 다음번은 다르겠지라는 생각으로 한 걸음 더 내딛어 보면 그 또한 매한가지인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고등학교 2, 3학년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 책을 나는 마치 현재의 내 이야기이기라도 한 듯 마음을 담아 읽을 수 있었다.
『날짜변경선』에는 굉장히 드라마틱한 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왕따 이야기까지 등장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드라마틱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이 그렇다. 등산장비를 완벽하게 준비해서 다리, 허리, 어깨 줄줄이 뻐근하도록 해발 몇 천미터를 올라가 봉우리를 찍고 내려오는 그런 극적인 소설이라기 보다는 신던 운동화 직직 끌고 언덕이라고 불러도 될법한 동네 뒷산엘 올라갔다 내려온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동네 뒷산에도 희노애락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세계의 유명산에서는 쉽사리 만나볼 수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의 일상이 숨어 있다.
과거의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지금의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그리고 어쩌면 미래의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소설, 『날짜변경선』. 한 10년 쯤이 흐른 후에 이 작가가 어떤 글을 쓰게 될 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