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일기 - 아프리카의 북서쪽 끝, 카나리아에서 펼쳐지는 달콤한 신혼 생활
싼마오 지음, 이지영 옮김 / 좋은생각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 보면 가끔씩 그런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자체 보다는 저자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그런 작품. 그래서 저자가 이야기를 주무르는 솜씨가 좋든 나쁘든 '됐고! 이 작가, 한 번 만나보고 싶네.'라는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런 작품.

최근 읽은 대만 작가 싼마오의 『허수아비 일기』가 나에게는 그러했다.

 

지난 2007년 조사한 '중국 현대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100인' 중 싼마오는 6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녀는 소위 '인기 있는' 작가다. 물론 '싼마오와 그녀의 글들이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품 자체의 문학성이 뛰어나지는 않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사실이다. 그녀의 작품이라고는 에세이집 딱 한 권 읽은 상황에서 필력이 좋네 안 좋네 글이 문학적이네 어쩌네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개인적으로 싼마오가 신들린 필력을 지닌 작가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에세이집 『허수아비 일기』를 통해 드러나는 싼마오라는 인물은 참 매력적이다. 매력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그래, 글은 이 정도 쓰면 됐어. 이제 작가를 만나보고 싶다고!!'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쩔꺼나. 이 작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지 올해로 20년째라고 한다!

 

많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잠시 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허수아비 일기는 저 먼 아프리카 땅 카나리아 제도에서 펼쳐지는 저자인 싼마오와 그녀의 남편인 호세(그렇다! 스페인 사람이다.)의 신혼일기다. 어린 시절 보았던 사막 사진에 마음을 빼앗긴 싼마오는 호세와 결혼을 하고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으로 덜컥 떠났다고 하는데 카나리아 제도는 사하라에 이어 그들이 두 번째로 보금자리를 잡은 곳이라고 한다.

 

책은 크게 2부로 나뉜다. 카나리아 제도에서의 일상을 담은 글들은 2부를 구성하고, '도둑 싼마오 이야기', '파란만장 유학기', '사랑하는 시어머니의 탄생'이라는 세 토막의 짧은 이야기가 대만의 어린 싼마오부터 스페인, 미국, 독일을 떠돌던 유학생 싼마오, 그리고 스페인 집안의 일원이 된 호세의 부인 싼마오의 이야기를 차례로 더듬으며 책의 1부를 구성한다.

저자를 소개하는 글에서 싼마오의 글은 '자유롭고 발랄하고 소탈하면서도 한구석에는 깊은 우수가 어려 있다'는 문구를 봤는데 정말 정확한 묘사인 듯하다. 그녀의 글은, 아니 그녀의 행동은-본인이 직접 했던 행동을 글로 옮긴 것이니 어쩌면 그녀의 글이라기보다는 그녀의 행동이라고 하는 편이 더 옳을 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거침없이 자유롭고 발랄하고 소탈했으며 동시에 무언가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반항적이었던 아이에서 중국인으로서의 교양을 지키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다 어느 순간 그것이 능사는 아님을 깨달은 유학생 소녀, 자기만의 지혜와 재치로 새롭게 사귀게 된 이들와 연을 맺어가는 여인의 모습까지. 어쩌면 나는 싼마오에게 내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하며 책을 읽어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대만의 가족이 보고싶어 타이페이로 가출을 감행한 싼마오를 다시 카나리아 제도의 보금자리로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 호세가 보낸 편지들을 소개한 부분이었다. 싼마오가 없는 호세의 삶은 마치 한 달 동안 단 하루의 예외도 없이 계란만 쪄 먹고 삶아 먹고 볶아 먹고 튀겨 먹는 질리도록 무미건조한 삶, 바로 그것이었나보다. 친정으로 도망간 그녀를 다시 자기 곁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애를 쓰는 호세의 모습이 참 귀여워 보였달까? 그리고 그런 호세의 귀여운 머리 굴리기에 진짜로 속은 건지 아니면 속아준 건지 홀딱 넘어간 싼마오의 모습도 너무 재미있고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에너지 넘치고 '자신다운 모습'으로 삶을 살아낸 싼마오라는 작가가 요절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토록 알콩달콩 신나는 신혼생활을 즐겼던 부부의 이별이 실제로는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다는 사실-결혼한 지 5년 만에 호세는 잠수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을 미리 알고 읽어서 그런지 번져 나오는 미소 속에 안타까움이 섞여들 수 밖에 없었던 독서였다.

 

천국 어딘가에도 카나리아 제도가 있다면 아마도 지금쯤 그곳에서 싼마오와 호세는 다시금 만나 알콩달콩 신혼일기를 이어가고 있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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