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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우에무라 나오미 지음, 김윤희 옮김 / 한빛비즈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1978년 8월 21일 자 동아일보 3면. 이곳에 실린, 도서, 『안나여 저게 코츠뷰우의 불빛이다』의 소형광고를 찾았다. '이따위 숨찬 책은 만든적도 없다!'는 평화출판사의 고백과 함께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것인지 울고 있는 것인지, 혹은 무언가를 이제 막 말하려는 참인지 알 수 없는 한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그의 이름은 우에무라 나오미(植村 直己, うえむら なおみ).
"너와 나는 절망이란 말을 쓰지를 말자"던, "위험한 곳이 어디냐, 불가능한 곳이 어디냐, 좀이 쑤신다. 한 번 해보는 거다."라던 나오미는 북극을 가로지른 그의 발자취가 한국땅에 알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84년 2월 13일, 세계 최초로 매킨리 동계 단독 등정 후 하산하던 중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절판되었던 『안나여 저게 코츠뷰우의 불빛이다』가 2011년 3월, 한빛비즈 출판사를 통해 복간되었다. 복간본의 제목은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이번 복간결정이 없었더라면 우에무라 나오미(이하 나오미)라는 존경스러운 한 인간에 대해 내가 알게 될 길이 과연 있기나 했을까? 감사할 따름이다.
'도전 앞에 머뭇거리는 당신을 위한 책'이라는 다분히 자기개발서적인 추천사가 달려있는 이 책은 추천사의 진부함이 무색하게 느껴질만큼 훌륭하다. 게다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극도의 추위 속에서 직접 사냥을 해서 식사를 마련하고 매일매일 추위에 곱은 손으로 텐트를 쳐가며 각 대륙 최고봉을 오르거나 극지방을 탐험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조차도 손에서 책을 놓기 힘들 정도로 흥미롭다.
북극을 횡단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시작된 여행. 나오미는 그린란드의 야콥스하운을 출발해(1974.12.20.) 두 번의 생일을 북극의 눈보라 속에서 오직 썰매개들과 함께 보내고 1976년 5월 8일, 꿈에도 그리던 알래스카의 코츠뷰에 도착한다.
북극권 12,000km를 가로지르는 이 장대한 여정 동안 나오미는 거의 매일 일기를 쓴 것으로 보인다.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먼 길을 떠나는 두렵고도 설레는 마음, 잠시 방심한 사이에 썰매를 끌던 개들이 모두 달아나버리고 혹한의 어둠 속에서 썰매와 단 둘이 버려져 이제 죽는구나라고 생각하던 순간, 출발지인 야콥스하운부터 함께 해 온 리더개, 안나가 몇 몇 동료들을 데리고 그의 곁으로 돌아와주었을 때의 환희, 예상보다 얼음이 빨리 녹기 시작해 썰매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게 되자 음식이 떨어지고 어설픈 사냥솜씨 덕에 개들의 먹이는 물론 자신의 끼니까지 걱정하게 되면서 살아남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그 동안 동고동락해 온 썰매개들을 잡아먹어야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순간, 홀로 추위와 어둠과 고독을 견디다 만난 극지방 이누이트 친구들의 환대와 아낌없는 도움에 감사하는 마음.
실제 나오미가 경험했을 1년 5개월에 비하면 너무나도 간략한 300페이지 분량의 일기. 그 꾸밈없이 소박하고 현실적인 글을 읽다보면 코 앞에 살랑살랑 다가온 봄날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마치 내가 여우털로 목 둘레를 덧댄 코트에 백곰바지, 해표가죽으로 만든 장화를 신고 안나를 위시한 썰매개그룹을 이끈 채 시오라파르크에서 리조류트를 향해 쏜살같이 달리는 썰매 위에 앉아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식량도 없이 혼자 헤매거나 꽁꽁 언 얼음이 갑자기 깨지면서 바닷물에 빠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우리도 살다보면 참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을만큼 피곤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앞길이 깜깜할 때 그저 '언젠가는 이곳에도 봄이 오겠지.'라든가 '누군가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찾아오겠지.'라는 생각만 하다가는 꼼짝없이 홀로 얼어죽을 수 밖에 없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알래스카 코츠뷰의 불빛을 따라 야콥스하운을 출발한 한 남자가 실제하는 코츠뷰의 불빛을 찾아 그것을 손에 쥔 이야기,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누구나 가슴에 코츠뷰의 불빛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불빛을 발견하기 위해 당신은 얼마나 도전했는가?'라는 물음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