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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2 - 건축가 김원 편 ㅣ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시리즈 2
이용재 지음 / 도미노북스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어디서 본 건 또 있어가지고 소위 '건축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엔 우리집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사판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 그 때 그곳에서 노가다를 하는 아저씨들을 보며 멋지다, 멋져!라며 감탄한 적도 있었을 정도로.
도대체 이런 환상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를 고민해 보니 아무래도 범인은 엄마방에서 찾아 읽었던 『아름다운 집』인가 하는 잡지인듯하다. 그 잡지 어딘가에 소개된 널따란 정원에 둘러싸인 환상적인 집. 그 집 구석구석을 찍은 사진과 함께 실려있던 '건축가 OOO씨와 OOO씨 부부의 집'이라는 문구가 가슴에 콕 박혔었는지 그 후로는 왠지 '건축가'라고만 하면 귀가 쫑긋 서고 가슴이 콩닥거리는 게 아무래도 건축가 귀신에 씌여도 단단히 씌인 듯하다.
여기에 '사람이고 사물이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본성이 더해져 평소에도 건축물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돌아다녔고 때때로 건축에 관한 책(주로 사진집)을 들춰보기도 하던 중, 『궁극의 문화기행-건축가 김원 편』을 읽게 된 것이다.
저자가 '김원 실록'이라고 소개한 이 책은 김원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건축물들을 지어왔는지를 가감없이 소개한다. 건축가와 그의 작품이 뼈대를 이루지만 이야기는 그를 둘러싼 역사, 사회, 정치, 경제를 아우르며 살을 붙여나간다. 무겁다면 무겁다고도 할 수 있는 주제지만 가끔씩은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들 정도로 술술술 쉽게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자는 책 서두에 '이 책은 김원 선생조차도 손대지 않은, 그야말로 자신이 보고 들은 그대로 쓴 원고'라고 밝힌 바 있는데,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하지 않은 그저 툭툭 내뱉는 듯한 말투를 연상시키는 저자의 문체를 따라가다보면 '정말 그런가보다.' 싶기도 하다. 마치, 오프더레코드, 그런 거 따로 안 키운다, 단지, 오프더레코드 거리만 깡그리 모아서 이 책을 쓴다는 듯한 말투다.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다.
1. 문화시설: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미당 서정주 시문학관, 국립국악당 등
2. 교육시설: 이화여자대학교 글로벌타워, 광주가톨릭대학교, 통일연수원 등
3. 주거,업무시설: 주한러시아대사관, 평창동 개인주택 등
4. 종교시설: 나주 순교성지,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등
5. 못다한 김원 이야기, 그리고 김수근
저자는 건축가 김원을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라고 소개한다. 책을 다 읽을 즈음엔 그 말에 고개를 자연히 주억거리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동안 봐 왔던 많은 굵직굵직한 건물들이 실제로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기 때문이다. 내가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관심분야과 관련된 '문화시설' 부분과 천주교 성당과 성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종교시설' 부분이었다(비록 성당도 잘 안 나가는 불량 신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유아 세례를 받으신 몸이라고요!).
건축에 관한 도서답게 자료사진도 섭섭지 않을만큼 포함되어 있어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읽으면서 한 가지 신경쓰였던 부분은 거의 매번 공사를 수주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김원의 OO고등학교 선배인 OOO', 혹은 '김원이 OO대학교 후배라서', '알고보니 OOO는 OO대학교 동기였는데' 등의 문구였다. 역시 한국에서는 학연, 지연 아니면 공사 수주도 안되는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 다른 책이었다면 이런 부분은 두리뭉실 넘어갈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실제 사실 그대로 그냥 써 버린 것을 보면 이 책, 실록(實錄)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