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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김없이 남김없이
김태용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작년에 김태용 작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의 글을 외국어로 번역하고 계신 분들과 함께 한 자리였는데, 그 기회를 통해 나는 김.태.용.이라는 어쩌면 조금은 낯선 작가의 정신세계(?)를 약간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는 그의 소설집, 『풀밭위의 돼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약간 쭈뼛거리시는 것 같아 '이 분이 과연 이 낯선 이들 사이에서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되기도 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참 달변이셨다. 그리고 그가 쏟아내는 세계라는 게 음... 나로선 100% 다 이해할 수는 없을 정도의 난해함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첫 장편소설, 『숨김없이 남김없이』를 읽고 난 후 나는 비로소 그 때 느꼈던 난해함은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읽기 힘든 책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만나본다. 그냥 읽자면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읽는' 것은 '본다'는 행위에 '이해한다'는 행위가 더불어 이루어지는 상태임을 감안해 볼 때 나는 아마도 이 책을 '본' 것일지는 몰라도 '읽은'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도 아직은. 혹은 어쩌면 영원히.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태용 작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정돈되지 않은 과감함이나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우연성을 지닌 B급 영화에서 문학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모르긴 몰라도 그는 그의 첫 장편소설을 B급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게 분명한 것 같긴 하다. 도무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글이 정돈되지 않았고 다음 문장이 어느 방향으로, 어느 형태로 튈 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또, "생각해보면 잔혹함, 비현실적인 설정에서 뜻밖의 유머가 나오는 것이 B급 영화의 정신"이라고도 했는데, 아쉽게도 소설의 잔혹함과 비현실적인 설정 사이에서 뜻밖의 유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 장을 넘겼더니 갑자기 쏟아지는 ㅅ소나기.
ㅅㅅㅅㅅㅅㅅㅅㅅ
ㅅㅅㅅㅅㅅㅅㅅ
ㅅㅅㅅㅅㅅㅅ
ㅅㅅㅅㅅㅅ
ㅅㅅㅅ
ㅅㅅ
ㅆ
ㅅㅅ
ㅅㅅㅅ
ㅅㅅㅅㅅㅅ
ㅅㅅㅅㅅㅅㅅ
ㅅㅅㅅㅅㅅㅅㅅ
ㅅㅅㅅㅅㅅㅅㅅㅅ
'그 동안 한국문학에 이런 소설은 없었다.'
서사 아닌 서사의 실험, 언어 아닌 언어의 실험!
소설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소멸되고 생성되는 언어를 통해 글쓰기를 말하다!'
라는 휘황찬란한 홍보글을 보고 읽게 된 소설인데, 역시! 그 홍보멘트 자체도 상당히 추상적이었음을 미리 눈치챘어야 했다.
도대체 '서사 아닌 서사의 실험', '언어 아닌 언어의 실험', 소'설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소멸되고 생성되는 언어'가 정확히 무엇이란 말인가.
새로운 시도에는 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것을 접하는 모든 이가 그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그 의도를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하튼 나는 작가의 그 방향과 목표를 알 수 없는 실험적인 글쓰기 덕분에 이틀 동안 정말 너무 지리하도록 미궁을 헤매다 간신히 빠져나온 느낌이다.
읽고 나니 진이 다 빠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