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미래 - 최신 인지과학으로 보는 몸의 감각과 뇌의 인식
카라 플라토니 지음, 박지선 옮김, 이정모 감수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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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공상과학영화를 즐기는 편이다.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를 다룬 이야기나 마블사의 아이언맨처럼 몸 속에 무언갈 이식하여 수퍼히어로가 된다거나 한다는 이야기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벌써 영화와 가까이 진보한 인간의 기술에 매우 놀랐다. 사이보그와 로봇은 정말 먼 미래에나 가능할 줄 알았다. 살면서 '언젠간 영화처럼 로봇을 흔히 볼 수 있는 시대가 오겠지' 막연하게 생각만 했을 뿐이지, 실제로 가설을 세워 실험을 하고 연구결과를 도출해내는 많은 연구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너무도 작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세상엔 호기심 가득하고 뛰어난 지능을 가진 분들이 정말 많다. 책 속 내용에 따르면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연구도 있다. 대부분 의료목적으로 연구되는 것들이지만 확실히 걱정되기는 한다. 어쨌거나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위해 열정적으로 연구에 몰두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44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어려운 과학 이야기같은 게 가득할까봐 걱정했는데 결코 어려운 책이 아니다. 과학기자인 저자 카라 플라토니가 3년 동안 인지과학의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여 생생하게 경험한 사실들을 쓴 책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 많은 사례들을 읽다보면 지루하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 빼놓을 수 있는 내용이 없다. 저자는 과학자만 만나본 것이 아니라 피어싱 기술자, 디자이너, 요리사, 피클 제조자, 조향사 등을 만났다. 이 부분에서 벌써 흥미가 생겨 이 두꺼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제1부에선 인간의 오감을 다룬다. 나는 여기서 여섯 번째 맛이라는 개념 자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의 우마미가 다섯 번째 기본 맛인지도 몰랐는데 이에 더해 여섯 번째 맛, 일곱 번째 맛 등 다른 기본 맛도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충격적이었다.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이미 세계는 여섯 번째 맛에 대해 한창 연구중이다. 일본의 우마미가 인정되기까지 한참 걸린 이유가 문화적 차이라는 게 너무 신기하다. 여섯 번째 또는 그 이상의 기본 맛일지도 모르는 '코쿠미'를 행성의 요건을 갖추었는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던 명왕성에 빗댄 부분도 재밌다. 화학 원소 주기율표처럼 맛도 주기율표처럼 추가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앞으로 관련 뉴스가 뜨길 기대해본다.


나는 후각이 뇌와 특히 관련이 있는 감각인지 몰랐다. 이는 곧 뇌가 인식하는 문화와도 관련된다. 향기는 직관적이지 못하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같은 향을 맡아도 각자의 경험과 문화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향기 기억 요법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새삼 깨달았다.


고통에 관한 챕터는 나에게 특히 흥미로웠다. 실연이나 사회적 외면을 당했을 때 상처받은 마음, 즉 사회적 고통을 신체적 고통을 억제하는 진통제로 줄인다는 것이다. 두 가지 고통에 반응하는 신경이 같다는 것도 과학적으로 밝혀졌단 사실만으로도 왠지 내가 위로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감을 다룬 1부와 초감각적 인식인 시간, 고통, 감정을 다룬 2부에서는 인간의 인식이 주관적이고 조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특히 문화적 배경과 언어가 인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다 아는 것 같은 내용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3부에서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같은 신기술을 다루며 선택적으로 비인간화를 하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윤리적인 부분에 부딪히고 어느 정도까지의 비인간화를 허용할 수 있는지 아직은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 이상의 존재,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뭔가를 할 수는 없어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뭔가를 경험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진정으로 인간다운 바람이라고 하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감각의 미래」는 그저 과학 이야기를 지루하게 늘어놓는 책이 아니다. 최신 인지과학을 친절하고 위트있고 생생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과학기술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고, 어떤 미래가 만들어질지 미리보기를 할 수 있다. 내가 인지과학에 한 발 다가선 것 같다. 나와는 관련 없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인지과학이 이렇게 재밌게 다가올 줄 몰랐다. 이런 책을 쓴 저자에게 감사하다.





캘리그라피로 보는 책속 한줄

 

 

 

 

 

그는 칼슘과 지방의 경우 맛이라고 부를만한 의식적이고 단일한 인식의 대상이 없기 때문에 그 맛을 설명할 단어를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문화는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말을 만들지 않는다. (p.49)

 

 

 

 

 

 

 

이것이 바로 향기 기억 요법이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에게 부리는 마법이다. 고트프리드가 말한 지형적 특징이 사라져버린 후각 지형도처럼 남자의 지도는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에게 재스민 향의 지형도는 장미향의 지형도와 같았다. 하지만 목적지가 어디든 상관없다면, 즉 어떤 기억이든 단순히 뭔가를 떠오르게 해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도가 잘못되어도 괜찮다. 남자는 길을 잘못 접어들었지만 오래 전 여자친구에게 꽃을 주던 기억은 치매로 손상되지 않은 뇌에 지금도 남아있다. 그리고 향이 생생하게 불러온 기억은 그때 느꼈던 달콤한 감정까지 전한다. (p.113)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프리크라임Precrime' 시스템으로 생각을 감시당하는 시대가 도래하여 두개골 안에 담긴 것조차 사생활의 영역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다른 사람이 내 머리를 스캔하여 은밀한 정보를 읽어낸다면? 우리의 생각을 낱낱이 떠벌리는 로봇을 정말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p.175)

 

 

 

 

 

 

 

 

천문학자의 딸인 첸소바 더튼은 감정 인식을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것과 유사하게 생각한다. "엄청나게 많은 별이 있어요. 컴퓨터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 별을 모두 인식하기란 불가능하죠. 하지만 우리의 문화는 어느 별자리가 중요한지 알려줘요. 전 오리온자리에 어떤 별들이 포함되는지 잘 알아요. 그 별자리를 그릴 수도 있고 밤하늘에서 찾을 수도 있지요. 이와 유사하게 문화는 감정의 별자리와 신체 감각의 별자리 가운데 우리가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그녀가 말한다.
그녀의 연구는 문화가 감정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 연구팀은 10년 넘게 연구를 진행하면서 슬픔이나 우울을 처리할 때 중국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은 몸의 감각에 더 집중하는 반면 유럽과 미국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은 감정적 사고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연구팀은 사람들이 별자리를 배우듯이 증상을 고르는 법을 학습한다고 생각한다. (pp.285-286)



"의사에게 이해받지 못하면 우울함이 증가합니다. 의사가 자신이 속한 문화에 환자의 증상을 너무 빨리 욱여넣어버리면 환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사가 환자에게 이해받지 소회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셈이지요." (p.305)

 

 

 

 

 

 

 

"페이스북을 사교클럽 파티처럼 느껴지게 만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또는 온라인 도박을 하며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요? 실제 세계에 존재하면서도 가상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말입니다. 그러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까요?" (p.343)

 

 


마법이 깨지는 순간은 때로 마법에 얼마나 강하게 묶여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p.345)



"우리는 적외선을 볼 수 없습니다. 박쥐나 개처럼 주파수를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실은 이미 어느 정도 조정된 현실입니다." 척이 말한다. 조정에서 한 단계 더 나가면 무엇일까?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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