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데드키
D. M. 풀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은행은 클리블랜드시가 파산하고 딱 2주
뒤에 문을 닫았다. 직원들은 자신의 책상을 비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열쇠는 분실되었다. 대여금고는 버려졌고, 건물에는 20년 동안 자물쇠가
채워졌다. | 본문 중에서
목차가 특이합니다. 얼핏 보면 시간 순서 같긴
하지만, 1978년과 1998년을 오갑니다. 그렇다고 가나다순도 아닙니다. 데드키라는 음산한 제목에 수수께끼같은 목차.
한번 펼치면 계속 읽어야 하니
주의하세요.
상황묘사가 무척 리얼합니다. 적절히 섞인 욕설은 더욱
분위기에 빠져들게 하고요. 읽는 내내 섬뜩함에 몸서리를 쳤는데요. 겁쟁이인 저는 영화든 만화든 제목만 보고도 무서운 거라며 피하기 일쑤면서도 또
그 이야기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편입니다. 공포 영화를 90%를 눈가리고 볼만큼... 처음엔 정말 이 책이 유령과 인간의 대결인 줄 알고
실감나는 작가의 문장에 두려워하며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이죠.
만약 어느 날 내가 사라진다면, 누가
나를 찾아줄까? | 본문
중에서
거듭 말하지만 문장이 너무 실감납니다.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앞에 그려져요. 그래서 더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는 전에 자취할 때 '마스터키'를 쥔 주인때문에 경찰서에 고발까지
한 경험이 있습니다. 작중 은행이나 제가 살던 원룸이나 어떤 곳에서든 마스터키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소름돋는 것
아니겠습니까.
1978년도의 데드키를 쥔 여자와 1998년도의
데드키를 가진 여자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 구성이라 목차가 특이했던 겁니다. 적절한 때에 끊어져 버리는 각 장의 결말이 궁금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죠. 그래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 것이었어요.
이름이 데드키라서 이 열쇠를 소유하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인가 싶었는데 어느 정도는 그런 의미도 담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놀라웠죠. 저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인간의
끝을 모르는 탐욕은 늘 재앙과 죽음을 불러올 뿐인 것 같습니다.
샤워할 시간은 없었다.
그냥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는 칫솔을 몇
번 놀려 지저분한 재떨이 같은 입안의 악취를
쓸어냈다. 헝클어진 갈색 머리카락은 빗질도 하지
않은 채 고무줄로 잡아맸다.
| 본문 중에서, 자세한 표현에
감탄!
이 책은 무려 651쪽이나 됩니다. 나의 아이폰
충전기의 뚱뚱한 부분과 견줄 정도로 어마어마한 두께를 가졌어요. 내용이 무서울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분량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려, 먼저
작가소개란을 읽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드디어 프롤로그를 펼쳤지요. 그때부터 저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끼니도 컵라면으로 대충
때우고, 화장실도 잘 안갈만큼... 무서운데 재밌어서 멈출 수가 없었던 거예요. 평소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 이 책처럼 두꺼운 책을 단숨에
읽어버린 적은 없습니다. 소설은 흡입력이지 않나요. 그런 면에서 참 대단한 책이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혹시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 그 자리에서 확인해야만 했거든요.
레이먼은 하루에 담배 세 갑을 피우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바리톤으로 말했다. | 본문 중, 기막히는
문장!
작가의 이력이 특이합니다. 구조공학자가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단 말인가요. 옛날이고 지금이고 놀라운 재능을 가진 분들은 늘 존재했지만요. 반대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작가가 실감나게 쓰는
것도 대단하지만. 작가가 모르는 일을 조사하고 파헤쳐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의 창의력에 놀랍고, 다른 직업을 가진 이가 작가로서
글솜씨를 뽐내는 것은, 조금 쉽게 표현하자면 글발 혹은 말발이 놀랍습니다. 저는 아무리 책을 읽어도 글솜씨가 나아지질 않던데. 허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한겨울에, 지친 몸과 마음을
흥분의 도가니로 이끌어 매서울 정도로 저의 집중력을 뽑아내준 이 책이 좋네요. 자-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