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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황가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어쩌면 이게 세상의 이치인지도 모르지.
다른 사람을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는 스스로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거야. - 본문 중에서
첫 장부터 나는 숨 막히기 시작했다. 홀로코스트, 나치,
유대인 등. 나에겐 너무나 어려운 단어들. 옛날 전화번호부같은 두께 ... 이 책을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것이 어려운데 한몫하는 것은 바로 데이비드
그로스만의 문장이었다. 특이했다. 여러 언어가 섞인 데다, 줄표 속 문장이 끊임없이 나왔고, 명조체였다가 고딕체가 되는 단어들이 무수히 많았다.
'이거 실화냐?'라는 속마음이 불쑥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한마디로 나는 무지하게 정신 없었다. 난독증이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가 의심되었다.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다.
정신 없는 문장들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었지만
다행히도 나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문장구조와 단어들은 어려웠으나 그로스만의 문장은 흡입력이 굉장했다. 어느새 빠져들어 멈출
수가 없더라. 묘사가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실감났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생각하는 거지?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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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자칼처럼 울부짖는 소리에 측백나무들은 두려움에 미쳐 날뛰며 누가 배를 간질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허리를 뒤틀고
몸부림친다.
- 그가 허리띠를 끄르자
몸이 강물처럼 흘러넘쳐 거실을 가득 채우고 모미크를 부엌까지 밀어 내다시피 한다.
- 작은 노른자 같은 태양을
납빛 구름이 집어삼키자 빛이 차츰 희미해졋습니다. 신은 천천히 자신의 장난감들을 거둬들였죠.
- 수평선 위에 감긴 구름
스카프 사이의 그녀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신비롭고 성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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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나의 온 존재가 불부은 종이처럼 쪼그라들어 눈앞에서 사라진 것 같았단다.
2장 <브루노>에서는 중간중간 문장부호가
하나도 없는 페이지가 있다. 이런 책은 처음 본다. 마침표조차 없다. 그래서 뭔가 쉼없이 읽게 돼서 점점 빠져드는 그런 묘한 매력이 있다.
백퍼센트 이해를 하며 읽은 것은 아니지만 바다를 의인화하여 '그녀'와 대화를 하는 대목은 상상력을 자극했다. 3장 <안셸
바세르만>에서 바세르만이 나이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엔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이렇게 긴장될 만큼 생생한 나이겔이라는 인물
묘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지막 장인 <카지크의 삶에 관한 완전한 백과사전(초판)>에서는 그동안 힘겹게 이해하려 했던 이야기들에
드디어 참여할 수 있었다. 정말 사전처럼 단어마다 설명이 쓰여져 있는데, 그중 유일하게 '삶의 의미' 항목에만 따로 이야기가 없었다. 이 책을
마스터한 분의 리뷰가 궁금해지는 시점이었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는 한 편의 영화같다. 정말
처음엔 단 하나도 이해를 못했는데 의식의 흐름같은 이 문장들을 타고 흘러가듯 읽다보니 점점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이게 그런
의미였구나!'하며 소름돋을 때가 많았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궁금점이 많지만 이 책이 왜 대단한지는 알 것 같다. 사실 이 책이 가지는 크고
중요한 의미는 비극을 재조명하고 문학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아닌 다음 세대로서 거리를 두고 바라본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시점, 환상적이고 은유가 뛰어나다는 점,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 놀랍도록 아름다운 책이라는 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대학시절
영상 공부를 위해 보던 외국의 유명한 독립영화같은 느낌이다. 읽는 동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대단히 즐거웠다. 이 어려운 책을 내가
이해하려 하고 있다니! 스스로를 응원하며 읽은 보람이 큰 책이다.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은 읽고 또 읽었다. 그 문장 하나에 앞서 읽어온
모든 문장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며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책의 분량이 엄청난 만큼 출판사 서평도 길다. 아, 참.
안네의 일기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캘리그라피로 읽는 책속
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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