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교환양식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고(vigo)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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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과 교환양식'은 전작 '세계사의 구조'의 단순한 축약본이 아니다. 분량은 줄었으되 사유는 깊어졌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사의 구조'에서 사유의 기본구도로 네 가지 교환양식을 제시한다. 네 가지 교환양식이란 A(공동체, 증여와 답례)와 B(국가, 지배와 재분배), C(자본, 상품과 화폐 교환), D(어소시에이션)이다. 가라타니는 B와 C의 폐해가 지양된 상태에서, A의 고차원적 회복 형태인 D가 언젠가 그리고 마침내 도래할 거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세계사의 구조'와 '힘과 교환양식'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개 방식이다. '세계사의 구조'에서는 각 양식의 의미와 그 특정 양식에서 다른 양식으로의 전환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A의 의미를 설명하고 A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 주로 활성화됐는지를 보여준 다음, A에서 B로의 변환이 이뤄진 이유를 설명하는 식이다.

반면 '힘과 교환양식'은 가일층 복합적이다. 한 양식 안에 이미 다른 양식들이 들어와 서로 밀고 당기며 비트는 것이다. 그 양식 바깥의 시공간도 역동적으로 바뀌어간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꿈틀거리는 내재적, 외재적 변화의 함량에 따라 그 특정 양식에서 다른 양식으로의 변환의 싹이 움튼다. '세계사의 구조'에서는 A에서 B로의 전환이 상대적으로 정태적 설명에 치중하고 있다면 '힘과 교환양식'에서는 훨씬 더 역동적이다.

(물론 '세계사의 구조'에서도 각 양식 안에 다른 양식이 보조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A 안에 B와 C가 들어와 작동한다는 건데, 그 다른 양식, 즉 B와 C가 단지 작동하고 있다는 점만을 설명할 뿐이다. 다시 말해 각 양식 간의 상호 작동 관계, A 안에서의 A와 B와 C의 상호 작동 관계에 대한 기술은 거의 없거나 충분하지 않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힘'이다. 유령, 물신 등으로 불리는 그 힘이 이런 역동적 변화를 설명하는 원천이다. 가라타니는 그 힘을 이 책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현안에 대한 적극적 접근이다.

기본소득 문제, AI 문제, 기후환경 문제 등 현세대 인류가 당면한 시급한 현안에 대한 언급이 많아졌다. 특히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이 가라타니 자신의 사유 구도 하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일관성과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결론 부분이다.

가라타니는 '세계사의 구조'에서 칸트와 마르크스를 참조해, D로서의 어소시에이션(세계공화국과 세계동시혁명)은 각 국가가 국제연합에 군사력을 증여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많은 논자들이 그 비현실성을 지적해왔다. 하지만 최근 급변하는 세계 정세는 고진의 그런 구상이 단순한 공상만이 아님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이미 발발한 전쟁이거나 중국-대만 간 잠재적 위험성일 것이다. 고진 스스로 '힘과 교환양식' 서론과 후기에서 전쟁의 현실적 또는 잠재적 위기와 그로 인한 D의 필연적 도래를 언급하고 있다. 물론 전쟁 확대는 불행한 일이고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세계 정세는 사람의 뜻대로만 전개되지 않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계사의 구조'에서보다는 현실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이지 세계사가 반드시 그렇게 전개될 거란 보장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가라타니 스스로가 D는 초월론적 가상으로서의 규제적 이념이라 일컫고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난이도 문제다.

초중기작 '탐구1,2'에 비해 최근작 '세계사의 구조'나 '힘과 교환양식'에서 사유는 갈수록 익어가고 그 서술은 점점 더 친절해져간다. 보다 젊었을 때 다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면 노년의 가라타니는 편안해 보인다. 물론 사유는 치열하다. 학자의 풍모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감히 들었다.(물론 대중적으로 더 많이 읽히기 위한 전략, 더 나아가 번역의 용이성을 염두에 둔 전략일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힘과 교환양식'은 여러 모로 가라타니 자신의 고차원적 회복(이라기 보다는 극복)이라 할 만하다.

P.S 이 책이 번역 출간된 지 2주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언론에서 기사 한 줄 나오지 않는 것이 의아하다. 그동안 가라타니가 신작을 낼 때마다 앞다퉈 보도하던 전례에 비춰보면 다소 이례적이다. 무조건적 열광이나 찬사는 경계해야 하겠지만, 이유 없는 무관심도 학계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직 서평 기사가 없을까? 출판 담당 기자들이 아직 열심히, 꼼꼼히 읽고 있는 중이라서?

P.S2 가라타니는 이전 저작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묵가를 이 책에서 부각시키고 있다. 이소노미아의 한 예로서 주목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부분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엥겔스에 대한 재평가도 주목해볼만한 부분이다. 가라타니는 이전 저작들에서 엥겔스가 사적 유물론(생산양식=생산력+생산관계)의 숨은 창시자이며, 마르크스의 사상 궤적에서 사적 유물론은 중기에 해당한다는 것, 후기('자본론') 마르크스는 D의 고차원적 회복을 모토로 삼았다는 것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가라타니는 이번 저작 '힘과 교환양식'에서 엥겔스가 마르크스와는 별개로, 보편종교를 지렛대 삼아 독자적 방식으로 D의 고차원적 회복을 사고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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