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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37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장석봉 옮김 / 푸른숲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시이튼의 동물기를 본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같다. 꽤나 두꺼운 책이었음에도 그 재미에 폭 빠져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15년도 더 지난 지금, 난 다시 시이튼에게 빠져있다. 이제 와 다시 읽는 시이튼의 동물 이야기엔 내가 초등학교 때 느끼지 못했던 생명과 자연 사랑이 담겨 있었다.
한국의 고전적인 작품에는 동물을 다룬 것이 드물다. 간간히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그 동물을 보고 무엇을 느끼느냐 하는 점이 초점이었다. 그러나 시이튼의 '아름답고 슬픈 야생 동물 이야기'에는 살아 숨쉬는 동물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인간의 위한' 동물이 아니었다.
사람 손에 잡히자 자유를 찾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야생마, 인간에게 잡힌 자식을 구출하기 위해 애를 쓰다가 결국은 자신이 직접 자식을 죽이고 마는 여우. 책 속에는 인간의 사회 못지 않은 동물들의 사회가 그들 나름의 질서를 지니고 들어 앉아 있었다. 왜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는가?
산업 사회의 발달은 우리에게 물질적인 풍요와 함께 인간적인 소외를 동시에 안겨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 지구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의 본분을 개발이란 이름으로, 발전이란 이름으로 망각하게도 했다. 인간은, 다른 생물보다 우월하다는 이유로 그들의 존재를 위협하고 삶을 침해하고 있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는 왕따현상이라든가 소수자의 인권유린 현상과 같은 맥락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양함을 인정해야한다고 외치면서 나는 그 한계를 사람에게만 국한시키지 않았던가?
이 책은 나에게 내 눈에 보이는 이 세상 외에 더 큰 세상이 있음을, 넌지시 일러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