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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전경린 지음 / 이가서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삼 년 전, 네팔을 여행한 적이 있다. 출발하기 전 비행기 티켓을 전해준 여행사 담당자 왈, 네팔은 신들의 축복을 받은 자만이 들어설 수 있는 곳이며, 한 번 가게 되면 3년 안에 반드시 다시 가게 된다고 했다.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여행 후에 떨리는 옛사랑의 기억처럼 네팔을 마음 속 깊이 품고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억이 있기에 주목할 만한 여성 작가가 네팔에 다녀와서 쓴 여행기라고 하여 망설임없이 책을 주문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배송을 기다렸다. 의외로 사진 이미지 컷은 많지 않았으나 넓은 행간을 즐기며 찬찬히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맛나게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난 작가 전경린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책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표출되는 삶에 대한 지독한 피로와 인간에 대한 얼마간의 기피증, 약간은 히스테리컬하게까지 느껴지는 음식과 환경에 대한 까다로움에 조금씩 답답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가는 한 달 정도의 여정으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와 휴양도시 포카라, 그리고 룸비니를 여행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계획했었으나 일정상 취소되었고 위의 일정속에서 각 여정마다 몇 군데 관광지를 돌아보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책을 읽고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는 듯 했다.
그런 가운데서 작가는 때때로 고달팠던 지난 날의 피로와 과거의 자의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과연 작가가 여행지에서 그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깨달음의 지평을 넓혀가는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찾았는지는 의문이다. 네팔리의 삶과 문화에 아직 다가 서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어느새 후반부에는 여러 아포리즘 같은 단상들이 이어지더니, 마지막은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라니 뭔가 생뚱맞은 느낌마저 든 것도 사실이다.
부언하여 히말라야 트레킹을 빠뜨리고 네팔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마치 북경의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등 일부만을 보고와서 중국 여행기를 쓴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네팔을 여행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 그 또한 큰 축복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