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b >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은 분석
세계를 뒤흔든 1968
크리스 하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책갈피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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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를 대표하는 단어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베트남전쟁, 히피문화, 흑인운동, 반핵운동, 워터게이트, 등인가요? 1968년은 전세계적으로 학생운동이 일어났던 해이기도 합니다. 국가에 따라 내세우는 요구는 조금씩 달랐지만, 학생운동의 물결은 프랑스, 영국, 미국, 이탈리아, 독일,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폴란드, 멕시코에까지 이르렀죠.
국가마다 상황과 조건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동시대에 학생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인가 공통적인 요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전에 세계노동운동사를 공부하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68년 사이의 자료가 상대적으로 너무 왜소하다는 불평을 한 적이 있는데요, 다름 아니라 그 시기는 세계 자본주의가 20년에 가까운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던 시대였습니다. 이 호황의 한몫을 2차 세계대전 전후에 등장한 케인즈주의 경제학, 즉 경제에 대한 국가의 조정과 수요창출이 담당했을겁니다.
전례없는 풍요 속에서 1991년 소련이 해체되었을 때 만큼이나 많은 변화들이 있었을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1930년대에 활약했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 중 몇몇은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선언하며 자본주의에 투항하기도 했으니까요.

“존 스트래치는 1930년대 영국에서 다른 누구보다도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여전히 마르크스의 분석에 찬사를 보냈고 사회를 자본주의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제 그 역시 실업과 위기가 과거의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대중 민주주의와 케인스가 발견한 정부의 경제 개입 방법 덕분에 이제 자본주의가 계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평화 속에서 일어난 1968년의 사건들은 자본주의가 호황기를 마감하고 다시금 불황기 -구체적으로는 1973년 오일쇼크 - 에 접어들게 되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신분까지 가리지는 않을겁니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으로 대표되는 각국의 학생운동을 비롯해 노동자운동이 거대하게 일어났고, 몇몇 국가에서는 정부 수반들이 교체되기까지 하죠. 그리고, 거대한 저항의 물결은 1975년~1976년을 끝으로 일단 가라앉게 됩니다.

1968년을 단지 ‘학생운동의 해’로 기억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평화 속에서 거대한 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왜 이들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각자의 제자리로 돌아간 것인지, 이 운동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이들이 비워준 무대를 채우고 있는 20대 우리와 신자유주의의 몫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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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일련의 사건들에서 학생운동은 분명 선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선도적’ 이란, 이들이 먼저 물꼬를 틔웠기 때문에 불만과 열망을 가지고 있던 이들도 직접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학생운동이 전체운동에서 갖는 선도성은 유럽 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에서도 여러차례 목격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419 혁명에서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1980년대 518 광주민중항쟁에서 대학생들이, 1987년 6월항쟁에서 대학생들이 늘 투쟁의 물꼬를 틔웠죠.

학생운동이 선도적인 역할을 도맡았던 데에 주된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일에 매여있지 않고, 여러 사상을 널리 접할 수 있다는 점이죠. 이들은 일상적으로 여러 다양한 의견들을 폭넓게 접하고 연구할 수 있고, 고민의 결과를 구체적인 행동이나 실천으로 옮기는 데에도 큰 제약이 없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이니, 이유라고 하기 보다 조건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객관적인 조건은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일에 매여있지 않기 때문에, 학생운동은 부득이하게 동맹휴업, 대학점거, 거리시위, 등의 형태를 보이게 되는데, 이런 형태의 저항은 사회의 지배계급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수단은 되지 않는 것이죠. 지배계급의 이윤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노동자들의 저항형태인 파업과 대조적입니다.

운동의 초기단계에서, 학생운동은 노동자운동의 파업 공장점거와 같이 지배계급을 위협하는 강한 힘이 부족했고, 노동자운동은 운동을 선도할 수 있는 선도성이나 정치성이 부족했죠. 두 운동은 서로를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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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석, 즉 마르크스주의 계급이론은 1968년 유럽과 북미의 운동을 이해하는 데에도, 오늘날 한국 학생운동을 이해하는데에도 무척 유용합니다.

왜 당시 유럽 학생운동가들의 진지한 일부가 대학점거에서 공단으로 옮겨갔는지, 왜 유럽의 지배계급이 학생들의 공장에서의 선동을 물리력으로 가로막았는지, 왜 ‘학생권력‘을 부르짖던 유럽의 학생운동조직이 해체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으며, 왜 1970년대 유럽의 학생운동가들과 198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가들이 공장으로 투신했는지를 이해하게 해줍니다.

오늘날 한국 학생운동의 몰락을 논평하는 이들 중 대다수는, 학생운동이 대중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피상적으로 분석합니다. 학생 대다수가 학생회 선거에 무관심한 것을 그 증거로 들죠.
그리고, 이런 비판을 수용한 학생운동조직들 중 일부는, 자신의 정치를 희석화하는 것으로 위기를 탈출하고자했구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중운동을 표방하고 있는 한총련 운동이 그렇구요. 이들은 취업이나 복지와 같은 학생 일반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의 정치를 희석화했습니다.

한총련과 마찬가지로 학생회를 기반으로 하는 좌파 학생운동의 일부세력도 마찬가지였죠. 이들도 어느정도 여기에 타협하다가 결국 스스로 해체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의 해체는 곧 인정입니다. 자신의 정치를 희석화하는 것을 통해서는, 대중성도 얻을 수 없고, 운동 자체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죠.

위기는 이들이 무비판적으로 학생회라는 형태에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학생운동이 반드시 학생회운동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를 희석화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뚜렷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했습니다. 아직까지 세력을 유지하며 활동하고 있는 몇몇 좌파 학생운동세력은, 학생회 선거에 목매달지도 않으며, 학생운동을 학생들의 문제로 국한시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학생사회도 장사 잘되는 학과 위주의 구조조정, 등록금 인상, 복지의 축소, 학생자치의 탄압, 등 숱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운동의 일부일 뿐이지, 전부이거나 필수조건이 아닌 것이니까요.

유럽에서 ‘학생권력’을 부르짖던 학생운동조직들의 해체와 한국 학생회운동의 몰락은 근본적으로 같은 맥락입니다. 거대한 사회변화에 맞서 대학만을 고집했던 편협함, 응당 전체 운동 속에서 학생운동을 자리매김시키지 못하고 학생운동의 선도성만을 고집했던 올바르지 못한 정치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학교운영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한국에는 고액의 등록금이 시사하듯 변화하는 학생사회의 계급적 기반에 대한 분석의 결여를 덧붙일 수 있겠군요.

학생회를 고집하던 학생회운동은 몰락했지만, 학생운동은 몰락한 것이 아닙니다. 시대가 쥐어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사그러든 것 뿐이죠. 몇몇 논평가들이 비아냥거리듯 몰락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다수의 동의를 얻느냐 소수의 동의를 얻느냐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정치라면 없는 것이 낫습니다. 그것을 두고 기회주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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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언론에서, 유럽이나 남미에 좌파 바람이 분다고, 또 몇 년 지나니 우파 바람이 분다고 호들갑을 떨던 것을 기억하실겁니다.
언론에서 소위 ‘좌파‘라고 지칭하는 유럽의 정당들은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민당, 영국 노동당, 등일텐데 이들 정당은 적어도 1970년대 이래로 계속 정권의 주위를 맴돌았던 기성정당들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좌파, 재야단체와는 다르죠.

좀 있다 말씀드리겠지만, 이들 좌파정당의 지도부들이야 말로 ‘내부의 적‘입니다. 이들은 1968년 운동의 물결을 잠재우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죠. 이들이 자본주의 질서 외의 대안을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것의 함축된 공개선언이 익히 알려진 ’유로꼬뮤니즘‘이죠.

이들이 정권을 잡는다 해서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사회체제를 제 의지대로 움직일리 만무합니다. 이들은 우파정당들과 - 역시, 우파라고 해서 한나라당 수준으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집권 초 열린우리당 정도로 하죠. - 차이점 보다 공통점이 더 많았습니다. 우파 정당들과는 다른 정책을 펼칠 수 있을거라는 환상이 집권과 동시에 깨어지자, 이들은 우파 정당과 한치도 다를 바 없는 오히려 더 한 복지삭감, 긴축정책을 시행하게 되고, 기대했던 대중들은 지지를 철회합니다. 이제 다시 우파 바람이 불죠.

하지만, 우파 바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위 극좌파들도 지지율이 상승했죠. 극좌파라 불리우는 이들이 1960년대 베트남전 반대운동, 1968년 운동에서 배출된 학생운동 출신 운동가들입니다. 이들은 1968년 운동을 극복하면서 노동자 운동으로 투신하게 되고, 그 속에서 기반을 쌓아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한국도 유럽과 한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만, 유럽처럼 사상이나 정치경험이 충분하지 못해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자신의 운동경력을 팔아서 정부를 장악한 자들이 80년대 함께 거리를 뛰어다녔던 동료들을 탄압하는 세상입니다. 386이라는 명함은 그들이 가져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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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까 운을 띄웠던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1968년 운동을 이해하는데 있어, 학생운동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노동조합 관료제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노동조합 관료제는 소위 갈 때까지 가는 모양입니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비리사건으로 구속되고, 연이어 터지는 노동조합 간부들의 취업비리에,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는 것을 두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노동자는 하나’라던 대의원들끼리 물리적 충돌까지 있었으니까요.

엊그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연단에 오른 노동조합 간부들은 ‘총파업’을 외쳤지만,
‘한차례 충돌이 예상된다’는 언론의 호들갑과는 달리, 집회에 참석한 많은 노동자들 중 어느 누구도 민주노총이 실제 총파업을 하리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이 속았다는거죠.

노동조합 간부들과 현장의 노동자들은 분리되어 있고, 현장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간부들을 믿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조합을 탈퇴하지는 않죠.

이번 노동자대회에서 목격한 집회장에서의 술자리는,
피상적으로 보기에는 신성한 집회의 자유를 흠집내는 몹씁 짓일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노동조합 관료제의 뒷면을 보여주는겁니다. 전태일 열사 기일은 챙겨야겠는데, 믿지는 못하지만 내칠 수는 없는 노동조합 지도부들의 발언을 듣고있자니 더 이상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던거죠.
엊그제 집회장에서 술을 마신 그 늙은 노동자는 분명, 작년까지는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연단을 집중했을겁니다.

혹 제 얘기가 생소하신 분들이 있다면, 필경 노동조합운동과 노동자운동을 구분하지 않고 계시기 때문일겁니다.
그것은 언론과 지배계급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노동조합운동의 위기에 대해서 쾌재를 부르면서 비리를 보도합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노동조합운동의 비리를 곧 노동운동의 도덕성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죠.

하지만,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자운동의 한 형태일 뿐입니다. 물론, 일상적인 시기에 노동자운동은 노동조합운동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것은 유일한 저항의 수단이죠.
1968년 유럽의 운동과 같은 격렬한 저항의 물결이 일어날 때에야 비로소 노동자운동은 노동조합의 틀을 벗어나게 됩니다. 물론,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고, 결국 노동조합 관료들에 의해 운동은 꺾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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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관료들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이해하려면, 노동조합에 대해서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적인 성격의 조직이지, 절대 자본주의 사회를 뛰어넘거나 극복하려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 관료들의 행동은 노동조합의 이러한 한계를 반영합니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이해를 일관되게 반영하기 보다는, 때로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촉진하고 때로는 통제하면서, 조직의 틀에 노동자들을 끼워맞춥니다.

노동자와 자본가, 적대적인 계급 사이에서 조직을 유지하려면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하는 셈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지만, 노동자와 지배계급 둘다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니까요.
지배계급이 너무 무성의한 나머지 아무 것도 얻어낼 수 없겠다 생각이 되면 몇 번의 집회를 열어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압력을 넣었다가, 노동자들의 투쟁이 너무 격렬한 나머지 지배계급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면 투쟁을 자제시키기도 합니다.
너무 투쟁을 하지 않는 것도, 너무 열심히 투쟁하는 것도 조직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 것이죠.

하지만, 대중의 요구와 정서는 지시를 내린다고 만들어지는 휴대용 무기가 아닌겁니다.
소위 ‘적당히’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이들은, 통제가 어려운 ‘투쟁’보다는 ‘교섭’을 통해 그 수위를 조절하려고 하는겁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통제하고 동원하려는 노동조합 관료제를 통해서 고통받지만, 결정적 시기가 아닌 일상적인 시기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크게 저항하지 않습니다. 즉, 노동조합 선거를 통해서 사람이 몇 명 바뀐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죠.

이들의 열망은 결정적인 시기, 즉 노동자들 스스로 자본주의 사회에 파산선고를 던질 때 발현됩니다.
1968년 유럽에서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조합의 틀을 순식간에 뛰어넘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프랑스 노동자들의 공장점거투쟁인데, 역사상 가장 거대한 1000만명에 이르는 규모였죠.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정도에 이르면, 자신이 직책을 맡고있는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체계는 무용해지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경우가, 노동조합 체계와 별도로 ‘노동자위원회’라는 자발적인 조직체계를 구성하기까지 했죠.

“잭 존스는 TUC(영국노총) 총평의회에서 말하기를 만약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비공식적 요소들이 총평의회를 대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1974년 영국

하지만, 지도부를 거부하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대안을 발견하지 못하자, 이들은 가출했다가 춥고 배가 고파 돌아오는 것 처럼, 다시 노동조합 관료제의 통제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제 노동조합 관료들은 이미 정도를 뛰어넘은 투쟁의 물결을 잠재운 후(현장복귀 명령),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협상테이블로 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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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관료제의 기본골격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노동조합에서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지배계급이 노동조합 관료를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을 해야 가능한 것이죠. 이를테면,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노동조합 관료제는 지배계급의 전략인 셈입니다.
오랜 호황을 깨면서 시작된 경제불황과 거대한 저항을 탈출하고자 하는 전략입니다. 강압적인 탄압 만으로는 한계에 다다르면서, 회유와 포섭을 시작한 것이죠. 전체를 통제할 능력이 있는 소수를 포섭해서 그로 하여금 투쟁을 잠재우고자 한 것입니다.

아레일사는 재계의 장기적 이익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사실은 이랬다. 만약 우리가 봉급을 평균 인플레이션 수준보다 낮게 유지하려 했다면, 무엇보다도 정치적 자유와 노조 활동의 자유를 양보안으로 내놓아야 했다. 만약 우리가 시장 경제 모델이 지속될 수 있는 신자본주의를 보장하려 했다면, 개혁을 받아들여야 했다.”
- 1977년 스페인

물론, 이들의 비용계산은 정확했고 머리는 복잡해집니다. 이들 역시 줄타기를 하는겁니다.
왜냐하면, 노동조합 관료라고 해서 무조건 인정해주고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죠. 어차피 탄압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에, 힘이 없는 노동조합이라면 굳이 협상까지 할 필요없이 무시하면 되는 것이고, 이 관료들의 능력이 부족해도 무시할 수 있겠죠. 물론, 반대로 노동자들의 저항의지가 거셀 때는 관료들이 잠재워준다는 약속도 있어야 하구요.

이런 지배계급의 전략이, 조직보존에 급급한 노동조합 관료들의 이해와 맞아떨어진 것이죠.

“공산당과 노동자위원회는 사회당, UGT와 손잡고 정부 고용주들과 몬클로아 협약에 서명했다. 그들은 물가가 29%나 상승한 시기에 임금 인상을 20~22%로 제한한다는 데 동의하고 ‘통화주의’에 입각해 신용을 제한하고 공공지출을 삭감한다는 것도 받아들였다. 그 대가로 그들은 일련의 경제 개혁을 약속받았다.”
- 1977년 스페인

사례를 하나 들자면, 1995년 자발적인 노동조합의 협의체였던 전노협이 민주노총을 출범하게 됩니다. 민주노총은 이때까지만 해도 불법이었죠. 구속과 수배가 늘 뒤따랐습니다.
이런 민주노총이 합법화 된 것이 바로 97년 노동법개악 때입니다. 이때 김영삼 정권과 신한국당은 경제위기에 직면해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등을 통과시켜서 어떻게든 극복해보려고 했는데, (날치기 할만큼 급박했죠) 이것이 합법화를 바라는 민주노총 관료들의 이해와 맞아떨어지게 됩니다.

민주노총 관료들은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노동자들의 투쟁열망을 적절히 통제하면서 협상에 목을 매더니 결국 민주노총 합법화를 따내는 대신, 위의 법안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무직 노동자들까지 참가했던 거대한 총파업은 민주노총 관료들의 복귀선언 때문에 무마되고 말았구요.

1968년 유럽 노동자운동의 물결도 이런 식으로 잠재워졌습니다. 유럽의 주요 노동조합들과 정당들이 합의의 당사자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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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의 거대한 투쟁을 두고 ‘학생운동의 해‘라는 제목을 붙이는 이들은, 드러나는 현상에만 주목할 뿐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왜?‘를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운동에 뒤이어 일어나 1970년대 중반까지 일어났던 거대한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거나 무시하며, 학생운동의 몰락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크리스 하먼의 <세계를 뒤흔든 1968>은 사실을 묘사하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운동의 시작과 전개,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어떤 내적 원인을 가지고 진행되었는지를 분석하는데 있어 탁월하기 때문에,
그 분석은 1968년의 유럽 뿐만 아니라 한국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됩니다.

현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주관 없이 사회의 흐름 속에 휩쓸리기 마련입니다.
크리스 하먼의 <세계를 뒤흔든 1968>은 마르크스주의가 오늘날 얼마나 유용한 도구인지 다시 한번 알려주는군요. 추천합니다.

“금요일에 이르기가지 모든 르노공장과 거의 모든 항공 산업, 로디아스타의 전 사업장을 노동자들이 점거했고, 파리와 노르망디의 금속 산업이나 서부의 조선소들로 확산됐다. 바리케이드의 밤이 지나고 1주일째 되던 날 밤에 철도 노동자들이 기차역을 점거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투쟁은 주말을 지나서도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월요일이 되자 파업은 보험사, 대형 상가, 운행, 인쇄업 쪽으로 번졌다. 인쇄 노조는 일간 신문은 인쇄했지만 기타 정기 간행물은 거부했다. 2~3일 내에 900만 1000만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의대생과 인턴, 레지던트 들이 운동에 참가해 병원의 고질적인 위계 질서의 종식을 선언했다. 미대생과 화가는 미대 건물을 장악하고 그곳을 포스터 제작 본부로 바꾸어 운동을 지지하는 포스터 수천 장을 집단 창작했다. 영화 제작자들은 경쟁적인 칸 영화제에서 철수하고 영화 산업을 이윤 동기와 독점에서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다. 프로축구 선수들은 축구연맹 본부를 점거했다.”
“16만 8000명의 군인 중 12만명이 징집병이었고, 그 중 일부는 노골적으로 파업에 동조했다. 위원회들이 꾸려져서 상관의 명령에 반대하고 수송과 장갑차의 출동을 거부할 조짐이 나타났다.”
“경찰 개개인은 근무를 마친 뒤 불필요한 언쟁에 휩싸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모자와 뺏지를 숨겨야 하는 현실의 불만이 있었다.”
“사람들 스스로 그토록 강하다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었다.”
- 1968년 5월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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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나는 '쓰다'의 주어다

오늘자 한국일보(06. 06. 14)의 연재물,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은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김윤식 서문집>을 다루고 있다. 제목은 "나는 '쓰다'의 주어다". 본문에서도 언급되지만, 서문이란 대표적인 '곁다리텍스트'이며, '곁다리텍스트'는 이 카테고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반가운 마음에 옮겨놓는다.

 

 

 

 

-<김윤식 서문집>(2001, 사회평론)은 놀라운 책이다. 그 놀라움을 낳는 것은 텍스트의 내용이라기보다 형식이다. 아니, 텍스트 너머에 어른거리는 긴 세월의 고된 글 노동에 대한 상상이다. 이 책은 국문학자 김윤식(70)이 1973년부터 2001년까지 낸 책들의 서문을 모아놓은 것이다(*물론 이후에도 그는 많은 책, 많은 서문을 썼다). 어느 프랑스 비평가는 한 책을 이루는 여러 물질적 요소 가운데 본문을 뺀 나머지(서문이나 발문, 헌사, 판권 난, 저자 소개, 표제, 부제, 제사, 차례 따위)를 곁다리텍스트(파라텍스트)라 부른 바 있다. 그러니까 ‘김윤식 서문집’의 텍스트는 곁다리텍스트만으로 이뤄진 텍스트다.(*나의 '곁다리텍스트를 위하여' 참조) 

-도대체 한 저자가 제 책의 서문만으로 또 한 권의 책을 만들자면 얼마나 많은 책을 써야 할까? 서문의 길이도 천차만별이고 책의 두께도 그럴 테니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김윤식 서문집>을 기준으로 어림짐작해보자면 100권 안팎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저자가 낸 책 95권의 서문이 묶였다. 그 모두가 순수한 저서는 아니다. 책 끝머리에 모인 7편의 서문은 역서와 편서의 서문이고, 나머지 서문 88편에도 아주 드물게 같은 책의 개정 증보판 서문이 끼여들긴 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빼도 이 책에 제 서문을 빌려준 김윤식 저서는 80권이 넘는다.

-그것만해도 보통 저자라면 엄두도 못 낼 양이다. 그런데 김윤식은 2001년 이후에도 기운차게 책을 내고 있다. 그러니까, 2001년까지의 저서 가운데 ‘김윤식 서문집’에 그 이름이 빠진 책이 없다 쳐도, 김윤식이 지금까지 쓴 책은 100권에 바짝 다가간다. 거기에 편서와 역서를 보태면 김윤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책은 100권이 훌쩍 넘는다. 이 책들 대다수가 가벼운 읽을거리가 아니라 학문이나 비평의 영역에 속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놀라움은 더욱 커진다.

 

 

 

 

-<김윤식 서문집>의 서문, 다시 말해 서문들의 서문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모으면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러니까 김윤식 생각에 책의 서문이란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다. 물론 이 표현은 겸양에서 나온 것이겠으나, 서문을 곁다리텍스트로 여긴 프랑스 비평가의 생각과 통하는 데가 있다.

-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 앞에 다시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붙이면서, 저자는 1962년 ‘현대문학’ 8월호에 실린 자신의 ‘천료(추천 완료) 소감’을 옮겨놓고 있다. 문학청년의 치기가 묻어나는 그 소감에는 “노예선의 벤허처럼 눈에 불을 켜야만 나는 사는 것이었다”라는 문장이 보인다. 그의 지난 반세기 글 노동을 지탱한 것이 바로 ‘눈에 불을 켜야만 살 수 있는’ 운명이었을 테다.

 

 

 

 

-이렇게 많은 글을 쓴 저자가 글쓰기 자체에 대한 성찰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혼자 하는 작업이다. 한밤중 원고지 앞에 앉아 있노라면, 그것이 우주만큼 넓고 아득하여 절망한다. 그렇다고 어디로 도망칠 곳도 없다. 우주가 나를 가두었던 것. 이 속에서의 작업은 일종의 게임인데, 상대는 누구이겠는가. 운명이란 이름의 나 자신이었던 것”(<김윤식 평론 문학선>, 1981, 서문).

 

 

 

 

 -김윤식은 말하자면 자신을 상대로 한 그 외로운 게임의 중독자였다. 요즘 젊은 세대 말로 글쓰기 ‘폐인’이었다. 김윤식이라는 이름은 동사 ‘쓰다’의 주어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문학사가이자 문학비평가다. 다시 말해 그의 방대한 텍스트들은 다른 텍스트들을 분류하고 배열하고 논평하는 텍스트들이다. 그러니, 김윤식이라는 이름은 동사 ‘읽다’의 주어를 겸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읽기는 20세기 이후 한국에서 ‘근대’의 표지를 지닌 채 발설된 모든 문학 텍스트를 향했다. 임화와 이상과 김동리가 보여준 이념의 엇갈림도, 이광수에서 신경숙에 이르는 세대의 엇갈림도 김윤식이 보기엔 근대성 안의 엇갈림일 뿐이었다.

 

 

 

 

-‘쓰다’와 ‘읽다’의 붙박이 주어 김윤식에게 소위 ‘명문(名文)’이라는 것은 어떤 뜻을 지녔을까? “명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가져본 적이 없다. 다만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문장이기를 바랐을 따름이다”(<문학사와 비평>, 1975, 서문). 이것이 겸양에서 나온 말인지는 또렷하지 않다. 자신이 엮은 <애수의 미, 퇴폐의 미- 재북 월북 문인 해금 수필 61편 선집>(1989)의 서문에서 그가 ‘명문’에 대한 경멸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 말해볼 수는 있습니다. 곧 명문이란 없다는 점. 설사 그런 것이 있더라도 대수로운 것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을 임화의 ‘수필론’과 서인식의 ‘애수와 퇴폐의 미’가 조금 말해놓고 있지 않습니까. 뜻을 전달하기 위해 말이 있다는 점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 일이 그것이지요. 말을 바꾸면, 되지도 않는 자기 감정을 질펀하게 노출시켜 남을 감동시키고자 덤비거나 대단치 않은 스스로의 주제를 돌보지 않고 흡사 무슨 도사의 표정을 짓는 짓 따위에서 벗어나, 자기 분석을 겨냥하는 일이 그것이지요. 자기 성찰과 자기 도취의 형식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도 수필이라는 이름의 산문 형식이 필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진술은, 소설문학에 대한 그의 다른 발언, 곧 “(문학작품에 대한) 절대적 평가기준이란 무엇인가. ‘언어’가 그 정답이다. 언어의 밀도가 작품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김윤식의 소설 현장 비평>, 1997, 서문)는 말과 통한다.

-이 기준들은 보기에 따라 꽤 엄격하다. 김윤식의 문장은 이 기준들을 넉넉히 채우고 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아니라는 쪽에 걸겠다. 문제는 명문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중기 이후 텍스트에서 사뭇 가시기는 했으나, 김윤식 텍스트는 ‘문법에서 벗어나는’ 문장들을 너무 많이 품고 있다. 그의 웅장한 학문적 성채의 적잖은 부분은 읽어내기 힘들만큼 조악한 한국어를 벽돌로 삼아 세워졌다.

 

 

 

 

-한 세대에 걸쳐 김윤식이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문학 교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법에 대한 그의 이 대범함은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직업적 나태였다 할 만하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의 문장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란 무엇이겠는가’, ‘~가 아닐 것인가’ 같은 표현은 그가 경멸해 마지않는 ‘자기 도취에 빠진 도사의 표정’에서 얼마나 멀까? ‘언어의 밀도’를 잃어버린 ‘명문’의 허세에서는 또 얼마나 멀까?

-김윤식이 ‘쓰다’의 주어일 뿐만 아니라 ‘읽다’의 주어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의 글쓰기 무게중심이 중기 이후 ‘연구자의 논리’(근대문학 연구)에서 ‘표현자의 사상’(현장 비평)으로 조금씩 옮아가면서, 그 읽기 대상도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당대 소설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갔다. “‘표현’과 ‘인식’의 완전한 일치”(<작은 생각의 집짓기들>, 1985, 서문)라 스스로 정의한 비평에서 이 원로 비평가는 성실했는가? 아니 그 비평의 전제인 읽기에서 그는 성실했는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고희의 나이에도 이어지고 있는 월평들은 김윤식이 이 시대의 가장 열정적인 소설 독자(가운데 한 사람)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문단 한편에서 들추듯, 그의 비평은 해석의 타당성을 떠나 작품의 줄거리 자체를 그릇 잡아내는 일이 드물지 않다. 너무 많이 읽는 탓에 읽기의 ‘밀도’가 낮아졌는지도 모른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최고 권위자가 건네는 눈길은 아직 이름을 세우지 못한 작가들의 가슴을 한껏 설레게 하는 격려가 될 테다. 그러나 이 원로의 독서가 날림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그는 권위라는 자산을 너무 함부로 쓰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이런 트집이 무슨 소용이랴? 20세기 한국문학 텍스트를 김윤식만큼 많이 읽은 사람은 없다. 20세기 한국문학에 대해 김윤식만큼 많이 쓴 사람도 없다. 그가 아니었으면 도서관 한 구석에 처박혀 세월을 보내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텍스트들이, 그리고 그 텍스트들의 저자들이, 김윤식의 손을 거쳐 한국문학사에서 제 자리를 얻었다. <김윤식 서문집>은 그의 이 끝없는 읽기-쓰기의 그림자다. 한국문학은 이 불세출의 독자-저자에게 큰 경의를 표해 마땅하다.(*짐작에 그의 저작을 30-40권쯤 갖고 있는 나 또한 그에게, 혹은 한 '주어'에게 경의를 표해 마땅하다.) 

06. 06. 14.

P.S. 고종석이 '또다른 다산(多産) 저자들'로 꼽고 있는 고은과 강준만에 대한 군말도 마저 옮겨온다.

-다산성에서 김윤식과 겨룰 만한 저자가 한국에 있을까? 있다. 얼른 생각나는 사람이 시인 고은(73)과 언론학자 강준만(50)이다. 고은 저서의 저자 소개에 ‘저서 1백여 권’이라는 표현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무렵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고은 자신이 이미 그 무렵부터 저서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해온 데다, <김윤식 서문집> 같은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인보>나 <백두산> 같은 서사시들의 낱권을 각각 한 종으로 친다면, 고은의 저서가 1백 종이 넘는 것은 확실하다. 저서의 다수가 시집인 터라, 글자수로 따져서 고은이 김윤식과 겨루기는 어렵겠지만.

 

 

 

 

-고은의 산문은 한 시절 수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김윤식이 ‘명문’과 관련해 빈정거린 ‘도사의 표정’과 ‘자기도취의 형식’을 짙게 지니고 있었다. 또 청년 김윤식의 글보다 훨씬 더 문법에 대범했다. 그러나 이 약점들은 고은 특유의 주정적(主情的) 문체 속에서 서로를 지워내며 기이한 매력을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일종의 강점이 되었다.

 

 

 

 

-강준만은 그 저서 수에서 이미 김윤식을 앞지른 듯하다. 강준만 저서의 적잖은 부분은 자료의 가공/재구성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점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눈길도 있지만, 그것은 강준만이 김윤식에 뒤지지 않는 ‘읽다’의 주어이자 실증주의자라는 것을 뜻한다. 더 나아가, 강준만이 사실과 현실에 바짝 붙어서 (미시)이론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가 여느 이론가와 달리 대중의 언어를 쓰는 데 대해서도 탐탁지 않은 눈길이 있지만, 그것 역시 이론을 학자들의 닫힌 담론 공간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건강한 욕망과 결부시킬 수 있겠다.

-고은 같은 탐미 취향은 없으나, 강준만은 그 대신 ‘문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문장’을 구사한다. 이것은 그 같은 다산 저자에게 드문 강점이다. 강준만의 글은 김윤식이 강조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 있다는 점에 많은 관심을 갖는” ‘자기 성찰’의 글에 가까워 보인다.

 

 

 

 

-문법적으로 단정할 뿐만 아니라, 심미적으로도 반들반들 닦인 글을 쓰는 다산 저자는 없을까? 있다. 고은처럼 시와 산문을 넘나드는 김정환(52)이 그다. 그러나 그의 저술 양이 고은이나 강준만에 미치지 못하는 걸 보면, 아름답게 쓰면서 많이 쓰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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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엉터리 국어정책 유감

흐루시초프에 관한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지난 1월에 러시아어 등의 외국어 표기법에 개정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 월드컵 때 선수들의 인명 표기에 상당한 변화/혼란이 빚어졌던 게 우연이 아니었던 것. 뒷북치는 셈이 됐지만, 여하튼 이런저런 개정 내용이 불만스럽다. 개정내용을 소개하는 한겨레의 기사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스포츠칸의 기사를 옮겨온다. 스포츠칸의 엄민용 기자는 기자협회보에 '엉터리 국어정책 유감'이라고 그래도 답답한 마음을 좀 풀어주는 기사를 실었는데, 그걸로 페이퍼의 제목을 삼는다. 마지막엔 축구선수들의 표기 문제를 사례로 짚어본다. 중앙엔터테인먼트&스포츠의 기사이다.    

 

 

 

 

한겨레(06. 01. 08) 포르투갈어 등 3개언어 새 표기법 마련

-국립국어원은 5일 포르투갈, 네덜란드, 러시아 등 세 언어의 새로운 표기법을 고시했다. 이 표기법은 현지 언어의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포르투갈어에서 r를 ‘ㄹ’과 ‘ㅎ’으로 구분하여 적고 브라질 지명·지명은 포르투갈어와 다른 브라질의 발음 특성을 반영하고 △네덜란드어의 g는 ‘ㅎ’으로 적고, v는 ‘ㅍ’과 ‘ㅂ’으로 나누어 적으며 △러시아어 p, t, k, b, d, g, f, v가 무성 자음 앞에 올 때는 받침으로 적고 sh와 shch는 ‘시’로 적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포르투갈의 인명 Ronaldo는 ‘호나우두’, Rivaldo는 ‘히바우두’로 적어야 한다. Jorge는 포르투갈 사람이면 ‘조르즈’로, 브라질 사람이면 ‘조르지’로 적어야 한다. 이과수폭포(브)는 이구아수, 리우그란데(브)는 히우그란지, 바스코 다가마(포)는 바스쿠 다가마 등으로 바뀐다. 네덜란드어의 경우 에인트호벤은 에인트호번, 에라스무스는 에라스뮈스, 호이징가는 하위징아, 스키폴 공항은 스히폴 공항으로 써야 한다.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 고골리는 고골, 하바로프스크는 하바롭스크, 흐루시초프는 흐루쇼프, 푸슈킨은 푸시킨, 루빈슈타인은 루빈시테인으로 각각 바뀐다. 그러나 리우데자네이루, 아드보카트, 하멜, 보드카, 프라우다 등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 표기를 그대로 인정키로 했다(*흐루시초프나 푸슈킨이 아드보카트보다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말인가? '하위징아'는 또 뭔가? '하위징아'로 무얼 검색하란 말인가?).

-이번 표기법 고시는 1986년에 제정한 현행 표기법이 이들 언어에 대해 자세한 표기 규칙을 두지 않아 현지 발음과 동떨어지거나 체계적이지 못하여 언어생활에 혼란을 빚어 온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러시아어 등에 써오던 표기와 달라지는 것이 많아 상당한 혼란이 예상되며 정착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달라진 표기법이 '현지 발음', 특히 '러시아어 발음'에 더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 왜 이런 억지를 강요하는 것인가? 원칙도, 철학도, 실리도 없는).

-한편, 국립국어원은 올해 안에 그리스어, 아랍어, 터키어 등 3개 국어에 대한 표기법을 고시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이로써 24개 외국어에 대한 표기법이 완성된다고 말했다(*이런 식이라면 그들만의 표기법이겠다. 국립국어원에서 할 수 있는 더 유익한 일들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몽골, 아프리카어에 대한 표기법은 특별한 불편과 수요가 없어 따로 두지 않기로 했다.(임종업 기자)

 

 

 

 

스포츠칸(06. 01. 10) 새 외래어표기법 ‘희한하네’

-국립국어원이 지난달 28일 포르투갈·네덜란드·러시아어 등 세 언어의 새로운 표기법을 지정·고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음, 그러니까 작년말이었다는 얘기군). 국립국어원은 지난 5일 “1986년에 제정한 현행 표기법이 이들 언어에 대해 자세한 표기규칙을 두지 않아 현지 발음과 동떨어지거나 체계적이지 못해 언어생활에 혼란을 빚어왔다”며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새 표기법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써오던 표기와 달라지는 것이 많아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더욱이 규칙 자체에 문제점을 드러내 정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새 표기법에 따르면 ‘거스 히딩크'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이 ‘휘스 히딩크’로 바뀌는 것을 비롯해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 고골리는 고골, 하바로프스크는 하바롭스크, 흐루시초프는 흐루쇼프, 루빈슈타인은 루빈시테인으로 써야 한다(*'고골리'는 이미 '고골'로 쓰고 있다. 한데, '흐루시초프'를 굳이 '흐루쇼프'로 바꿔 표기해야 할까? 이 안에 따르면 러시아어의 'sh'와 'shch'의 음성표기가 동일하게 된다. 비슷한 소리이지만 동일한 소리는 아니며 영어 표기에서는 앞에서처럼 구별해준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수백억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교과서를 바꾸고 민간 출판사들도 온갖 책들을 다시 찍어야 하는 일을 벌이면서도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언론외래어공동심의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하멜’ ‘리우데자네이루’ ‘아드보카트’ 등 6가지를 ‘관용’ 표기토록 했을 뿐이다(*아드보카트가 언제 한국에 다시 올는지 모를 일임에도 '관용'으로, 국내에 많은 책들이 소개돼 있는 흐루시초프나 푸슈킨 등이 '관용'에서 예외로 처리된 건 놀라운 일이다. 그들만의 행정으로 봐주어야 하는 일일까?) .

-하지만 이마저 언론을 의식한 ‘면피용’으로 비친다. 최근 언론에 부쩍 많이 나오는 축구국가대표 감독 ‘아드보카트’에 대해 “원래는 ‘앗보가트’가 맞지만 관용 처리한다”고 하면서, 더 많은 국민이 알고 있을 흐루시초프 등은 관용표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이 관용표기는 ‘아드보카트의 아들 앗보카트가…’ ‘하멜표류기를 쓴 하멜의 자손인 하멀은…’ 따위로 써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지난달 28일 고시하고도 그 사실을 1주일 넘게 알리지 않은 이유도 의문이다. 이와 관련, 국어연구원의 관계자는 “현실적 쓰임과 지나치게 괴리하는 말은 토의를 거쳐 관용표기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엄민용 기자)

기자협회보(06. 01. 18) 엉터리 국어정책 유감

-국립국어원은 지난달 28일 포르투갈·네덜란드·러시아어 등 세 언어의 새로운 표기법을 지정·고시했다. 그리고 지난 5일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언론에 알리면서 “1986년에 제정한 현행 외래어표기법이 이들 언어에 대해 자세한 표기규칙을 두지 않아 현지 발음과 동떨어지거나 체계적이지 못해 언어생활에 혼란을 빚어왔다”며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새 표기법을 마련했다”고 밝혔다(*더 이상의 혼란을 막은 게 아니라 그 이상의 혼란을 더 보탰다!).

-그러나 오히려 새 표기법 때문에 국민의 국어생활이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 염려된다(*내 말이 그 말이다. 이런 문제제기가 스포츠신문의 기자 한 사람에게서만 나왔다는 것도 신기한 노릇이다). 새 표기법에 따르면 그동안 온 국민이 ‘거스 히딩크’라 부르던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은 ‘휘스 히딩크’로 바뀐다. 또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 고골리는 고골, 하바로프스크는 하바롭스크, 흐루시초프는 흐루쇼프, 루빈슈타인은 루빈시테인으로 써야 한다. 그뿐 아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만든 ‘관용 표기’인지 모르겠지만, ‘아드보카트의 아들 앗보카트가 한국에 왔다’거나 ‘하멜의 자손인 하멀은…’ 따위로 써야 한단다(*엄기자가 잘 꼬집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이처럼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 일을 벌이면서 국민의 얘기는 한마디도 듣지 않았다. 공청회는 고사하고, 신문사에서 매일 외래어표기법과 씨름하는 교열기자들에게도 일언반구가 없었다. 수백억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교과서를 다시 찍어야 하고, 민간 출판사들도 제 돈을 들여 온갖 책을 다시 찍어야 하는 상황을 국립국어원은 아주 비밀스레 만들었다. 그 이유가 뭘까? 국립국어원의 한 관계자는 “표기법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일인데, 그 일을 하면서 일일이 알릴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들이 한 일을 일일이 공표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내부용으로만 돌려보면 될 거 아닌가?).

-무서운 말이다. 슬픈 얘기다. 그 관계자의 말이 국립국어원 전체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라면 이미 우리의 국어는 죽은 송장이다. 말과 글의 주인은 국민, 즉 언중이다. 일부 학자들이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할 것이 못된다. 한글맞춤법이 어찌되어 있든, 표준어규정이 어떻게 정하고 있든, 많은 언중이 자주 쓰면 그 말이 표준어가 되는 게 상식이다. 외래어도 마찬가지다. 미국인이 어떻게 소리내든, 아프리카 원주민이 뭐라 발음하든, 그런 말이 우리 국민이 똑같이 쓰는 말을 못 쓰게 만들 수는 없다. 세상에 ‘그런 벱’은 없다(*이 정도의 상식도 통하지 않는다는 게 거듭 유감스럽다).

-국립국어원은 ‘나라의 적기가 외국의 소리와 달라 어린 백성이 혼란을 겪는 것이 안쓰러워’ 새 표기법을 만들었다고 했다(*그 취지가 심히 한심해서 말도 안 나온다). 그 말이 맞는다면 ‘라디오’ ‘컴퓨터’ ‘밀크’ 따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외국 어디도 우리를 대한민국이라 불러주지 않는다. ‘KOREA’라 쓰고 ‘코리아’라고 소리내는 영문도 지들 마음대로 ‘COREE’라 적고 ‘꼬레’쯤으로 소리낸다. 그것이 외래어표기다.

-외래어 표기는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당신네 말을 당신네 소리대로 잘 적어주고 있지요’라고 자랑하려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국어생활에 통일을 기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이 정도의 상식도 모른다면, 국립국어원의 명칭을 국립외국어원으로 바꾸는 게 차라리 낫겠다). 따라서 한번 정해진 것은 쉬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툭하면 바뀌는 외래어 표기는 정말 문제다.

 

 



-더욱이 이번 새 표기법은 국립국어원이 수년 전 1백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만든 <표준국어대사전>마저 쓰레기로 만들었다. 그 사전은 이제 버려야 한다. 아직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새 표기법과 다른 말이 수천자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 표기법은 이미 지정·고시됐다. 이제 와서 왈가왈부한다고 해서 만든 표기법을 버릴 수도 없다(*대신에 무시하는 도리밖에 없겠다). 하지만 이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 국립국어원이 몇몇 학자들 중심으로 표기법을 만들고 국민들은 무조건 따르라는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러시아어 표기만 하더라도 전공자들마다 의견이 다 제각각이다. 전문가의 자문이랍시구 한두 사람의 의견을 수렴해서 국민 모두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국립국어원이 언중 위에 군림하면 국어가 죽는다.

JES(06. 07. 06) 호나우두 혹은 호날두

-이번 월드컵을 보다 보면 생각나는 록 밴드가 있다. 바로 너바나다. 1990년대의 록을 이야기할 때의 너바나를 빼놓는다면 깍두기 없이 설렁탕과 다름없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DJ 배철수씨는 너바나라는 그룹을 모른다. 그에게 이 밴드를 물으면. “아. 니르바나(Nirvana)?”하고 되묻는다. 불교 용어로 열반(涅槃)을 뜻하는 니르바나는 천년 전부터 한국인들이 쓰던 단어인데 한 미국 밴드가 그 단어를 이름으로 썼다고 해서 새삼 다른 식으로 읽을 이유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마다나’를 ‘마돈나’라고 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늘 바뀌는 외국 인명ㆍ지명의 한글 표기에 경종을 울리는 주장이다.

-한글 외래어 표기는 언론인들의 영원한 숙제다. 현행 기준 중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현지인이 발음하는 대로 적는다’는 것이다(*가장 웃기는 원칙이다. 우리끼리 쓰면서 '현지음' 흉내를 왜 내는가? 입에 침이 마르는군. "워러 플리즈!"). 물론 중요하다. 똑같이 써도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미국으로 건너가면 청바지 상표인 리바이-스트라우스로 변하고. 역시 알파벳만 보면 미국 조지아 주와 구 소련 지역의 그루지야 공화국이 혼동되기도 한다(*실제로 '그루지야'를 '조지아'라고 표기하는 사례가 종종 나온다).

-하지만 대회때마다 바뀌는 축구 선수의 권장 표기 명칭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지난 98년 미국월드컵에 등장한 호나우두 이후로는 포르투갈어의 R을 ‘ㅎ’으로. L을 ‘이우’로 읽는 관행이 정착됐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복병으로 등장했다. 외모와 실력을 겸비해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이 선수는 호나우두에서 하루 아침에 호날두로 개명을 당했다.

-이유가 가관이다. 같은 포르투갈어지만 L이 이우로 발음되는 것은 브라질 식의 발음이고. 포르투갈 본국에서는 그냥 ‘ㄹ’로 발음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물론 한심하다). 국립국어원에서 언제쯤 호나우두의 조국은 브라질이 아닌 ‘브라지우’라고 표기해야 한다는 공문이 나올지 궁금할 뿐이다.

-한국에서 ‘반니’라는 애칭으로 불린지 오래인 반 니스텔루이 역시 하루 아침에 판 니스텔로이가 됐다. 글쎄. 어련히 알아서 정했겠지만 지난해 내한했던 PSV 에인트호벤(이것도 국립국어원이 정한 권장 표기다) 관계자가 “우리 팀의 이름은 아인트호벤인데 왜 한국에서는 에인트호벤이라고 쓰는지 모르겠다”는 걸 보면 정말 현지 발음에 더 가깝기는 한 건지 좀 의심스럽기도 하다.

-현지 발음에 가까운 것도 좋지만 일단 정착된 표기는 최대한 존중하고.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한글 표기법의 사명이 아닐까(*공무원은 때로 복지부동하는 것이 차라리 국민에게 유익하다). 지금까지는 사실 강 건너 불이지만. 이런 과잉 교정의 열풍이 언제 연예계로 밀어닥칠까 불안하기만 하다. 영국 출신인 비틀즈 멤버 존 레논과 미국을 대표하던 배우인 잔 웨인이 ‘파리’ 아닌 ‘빠히’에서 만났다고 기사를 쓰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송원섭 기자)

06.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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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멜기세덱 > 백석 시의 절창 - "멧새 소리"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주옥같은 시들을 남겨 놓고도 아직 그 온전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뛰어난 시인이다. 월북한 시인들이나 이북의 시인들이 해금되면서는 누구보다 정지용이 가장 크게 조명되었다. 하지만 백석은 근래에 들어 그 연구가 전개되고 있으나, 아직도 백석의 시적 가치를 온전히 밝혀내기에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백석의 시중에서 <여승>이라던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시를 교과서에서 배워 알 뿐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온전히 백석의 시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여승>에서 보이는 슬프고 애절한 이야기 시적 경향이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의 시적 자아의 고독의 편지와 같은 경향은 백석의 많은 절창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백석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러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의 일순위로 꼽히는 김소월과 같은 지역 출신이며, 김소월을 잇는, 그러면서도 가일층 변화된 발전을 보여주는 우리 시사의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왜 이런 평가를 단정하여 그에게 부여하는가?

    멧새 소리

  처마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위의 시를 나는 백석의 절창 중의 으뜸으로 꼽는다. 왜 그런가? 제목에 보이는 '멧새'는 시행 어디를 봐도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 멧새의 울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도 않다. 제목을 빼고 보면 이 시는 영락없는 명태타령이다. 시 제목을 명태라고 한들 이 시가 어디에 내 놓아도 기죽지 않음이 분명하다. 얼핏 제목을 잘못 지은 것만 같지만, 우리는 이 시를 더욱 뜻깊게 읽기 위해서는 행간 사이 사이 숨어있는 시인 백석의 위대성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제목이 '멧새 소리'다. 처음 읽을 때는 들을 수 없던 그 소리가, 두 번, 아니 세 번째 읽을 때는 강원도 어느 바닷가 해변에 길게 널린 명태 사이 사이에 손가락 만한 멧새 한 마리가 숨어 날아다니며 울음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 소리의 음향을 상상하며 이 시를 다시 한번 읽어보면, 곧 왜 제목이 명태가 아니고 멧새 소리인가를 알 수 있다.

  이 시에서 명태는 시적 화자 '나'와 동일시되는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하겠다. 즉 '나'는 추운 겨울 바닷 바람 싸늘히 불어오는 해변가에 '파리'하게 널린 '명태'인 것이다. 그 사이에 시인은 한 편 대조적이면서도, 가일층 쓸쓸하게 하는 음향을 첨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읽어 보라. 과연 멧새 소리는 이 시의 의미를 최고조로 강화시키는 훌륭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백석의 위대함이다. 김소월의 운율적 감각에 못지 않는 리듬이 있다. 우리 옛 이야기가 녹아나는 전통과 애환 또한 그의 시에 담아낸다. 그러면서도 시가 한 개인의 고뇌의 산물임을 또한 드러내고 있다. 우리시의 근대성, 혹은 현대성을 또한 찾는다면, 그의 시는 훌륭한 선구자가 될 수 있다.

  이런 백석의 시집은 그리 많지 않다. 그가 살아 생전 내놓은 것은 단 한 권의 시집 뿐이다. 바로 <<사슴>>이라는 시집이다. 아직도 그는 우리에게 청년 백석으로 기억된다. 그는 우리에게 어쩌면 목이 길어 슬픈 '사슴'이었던 거싱 아닐까? 백석의 위대함이 진정으로 조명되고 우리에게 기억되기를 나는 바란다.

 

 

  참고로 백석의 시 전집을 몇 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중에 나는 가운데, 이동순 선생이 편한 <<백석시전집>>을 추천한다. 부록으로 산문을 포함하고, 더욱 좋은 것은 백석의 시어들을 친절히 풀어놓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백석의 생애와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책은 이미지가 없지만, 건국대출판부에서 문학의 이해와 감상 시리즈로 출간한 백석에 대한 해설서다. 간단히, 하지만 충실히 백석의 생애를 중심으로 백석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두번째 책은 백석의 애인 자야여사가 백석을 회고하며 쓴 책이다. 그리고 최근에 <<백석 시 바로 읽기>>라는 책이 나왔는데, 얼마나 바로 읽었는지는 아직 확인해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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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요즘 시 어떻습니까?"

오늘자 한국일보 문화란에 '요즘 시'의 경향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오늘이 '시의 날'인 걸 기념해서인 듯한데, 며느리도 모를 법한 이 날의 유래는 이렇다고: "11월1일은 제19회 '시의 날'이다. '시의 날'은 우리나라 현대시의 효시로 알려진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1908년 11월 잡지 '소년' 창간호에 실린 것을 기념해 1986년 제정됐다." 1986년이면 전두환 정권하이다. 5공 때 이어령 선생이 문화부 장관을 한 적도 있으니 그 분 아이디어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딱 이어령표 마인드의 산물 같다. 어쨌거나, 그런 날이 벌써 19번째이건만, 무슨 행사를 벌인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시시한 날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저런 기념일을 챙기는 건 문화부 기자의 본분에 충실해 보이며, 덕분에 나는 아침부터 '요즘 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연예인들만한 사이즈로 지면에 오른 요즘 시인들의 면면들을 구경해볼 수 있었다. 혹 기사를 지나쳐버린 분들을 위해서 내용을 정리하고, 생각할 거리를 챙겨두도록 한다.

"일군의 젊은 시인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는 우리 시의 새로운 경향을 짚"고자 하는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요즘 시(詩)가 어려워졌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시인 평론가들조차 불편함을 토로할 정도다. 한 두 사람 한 두 편의 돌출적인 현상이 아니라, 최근 등단했거나 한 두 권의 시집을 낸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뚜렷한 경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 경향을 다른 말로는 '엽기시'라고 한다.

 

 

 

 

얼마전 미당문학상 수상작이 발표되었는데, 수상자는 작년에도 시인들이 뽑은 최고작을 쓴 바 있는 문태준 시인이며 수상작은 <누가 울고 간다>이다. 짧은 시이므로 옮겨본다.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낼 수 없는

특별히 덧붙일 것도 뺄 것도 없는 소품인데, 사실 이런 정서와 리듬감, 시상 전개 등이 한국 서정시의 주류를 형성해왔다(문태준 이전에는 장석남이 있었다). 기형도 이후에, 혹은 장정일, 유하 이후에 여전히 이러한 시가 씌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퇴행'이면서도 '관례'이다. 유구한. 그리고 그런 시인과 시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건 당연해 보인다. 2000년도 이후에 나는 시도 쓰지 않고 읽는 것도 게을리 하고 있지만(나는 시에 대한 '기대'를 거의 접었다) 요즘 동태를 보아하니 그 사이에 꽤 특이한 젊은 시인들이 여럿 등장한 모양이다. 세태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문학적 성감을 찾아나선 이들의 이름은 김행숙 황병승 김민정 김근 김언 이민하 김이듬 등이다. 기사에는 8명의 시인들이 8인방처럼 거명돼 있는데, 요약하면 1:8이요, '문태준과 아이들' 혹은 '문태준과 엽기들'이다. 이들을 차례로 호명해보자.

 

 

 

 

 

 

 

 

 

 모두가 올해 데뷔시집이나 새시집을 낸 젊은 시인들이다. 김이듬, <별모양의 얼룩>(천년의시작, 2005); 진수미, <달의 코르크마개가 열릴 때까지>(문학동네, 2005); 김근, <뱀소년의 외출>(문학동네, 2005); 김언, <거인>(랜덤하우스중앙, 2005); 이민하, <환상수족>(열림원, 2005); 김민정,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열림원, 2005); 황병승, <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중앙, 2005); 김행숙, <사춘기>(문학과지성사, 2005)

(평론가 이장욱에 의하면) '외계어'로 시를 쓰는 이들은 (평론가 권혁웅에 의하면) 우리 시단의 '미래파'이다. 물론 이들이 떼로 몰려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외계인들끼리는 소통가능한가?) 하여간에 앞에서 인용한 문태준류의 시와는 달리 알아먹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 시의 특징이고 특장이다. 기자도 이 점을 표나게 지적하고 있다: "그 변화의 선두에 김행숙(35) 시인의 비교적 짧은 시 ‘달무리’를 보자. “그의 진동이 그에게 후광을 만든다. 그가 문둥이같이 뭉개질 때/ 배는 출렁이고 있었다. 내가 깔고 누운 파랑은 나를 통과한 그의 뒤편일까? (중략) 그의 뭉개진 코가 킁킁대며 누구니? 누구니? 묻고, 다시 물을 때// 아으, 부풀어 오르는 한 그루 버드나무.” 그의 시는 이성적 사고체계로 스며들지 않는다. 오히려 무의식과 느낌, 환상ㆍ분열적 내면 풍경에 철저히 기대고 있는 듯하다. 전통 서정시의 독법에 따라 어떤 의미나 이미지를 포착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고 무모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실 알아먹을 수 없는 시가 문학사에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1930년대의 이상이 '욕먹는' 시 <오감도>를 썼다. 1950년대에는 '초현실주의 시'를 쓴 조향 시인 같은 분도 있었고(<조향 전집>(열음사, 1994)), 김춘수 시인의 무의미시나 이승훈 시인의 비대상 시들도 다 낯선 시들이었다. 그렇다고 이성복과 황지우의 시는 주류적인 시였나?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요즘의 '엽기시' 경향에 대해 특별히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어 보인다. 다만, 최근의 나온 시집들이 주된 경향을 이루면서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는 게 눈에 띌 뿐. 더불어, 현란한 이미지들이나 수사의 국적, 계보, 혹은 전통을 종잡을 수 없다는 게 이채로울 뿐. 해서 새로운 시 독법이 필요하다? 

"이들 시의 메커니즘은 다양하다. 빛이나 공기 입자의 산란처럼 어지럽게 좌충우돌하는 사유의 혼종성, 세계와 자아의 대립과 반영을 넘어 자아분열적이기까지 한 현란한 이미지, 성적ㆍ관능적 환상과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 상징 등…. 이성과 관념 이전의 원초적 시어들이 은닉하고 있는 ‘무엇’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 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김행숙 시인은 문학적 감성의 변화를 말한다. “어떤 시는 시인/평론가보다 시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 독자들이 오히려 뜨겁게 반응합니다. 폭 넓게 소통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좁은 대신 깊이 소통하는 층이 분명히 있어요.” 그는 그것을 생물학적 세대차이라기 보다는 차별화한 문화체험에서 비롯된 문화적 세대차이일 것이라고 말했다."(강조는 나의 것) 참고로 기자가 나열하고 있는 찬반론은 이렇다. 

이들 시에 대한 비판도 있다.

-문학의 본령이 문자언어를 통한 소통이다. 암호에 가까운 자의적 기호와 자폐적 무의식의 흔적들이 어떻게 문학인지 모르겠다.

-환상이 없는 문학은 없다. 두보의 시에도, 카프카의 글에도 환상은 있다. 하지만 이들의 시는 삶의 리얼리티를 상실한 채 머리(환상) 속에서 떠오른 느낌들을 시적 긴장 없이 풀어놓은 것 같다.

-하나 하나의 작품을 놓고 보면 참신하지만 모아놓고 보면 시를 형성하는 문법이나 문장을 엮는 방법 등이 흡사하다. 일종의 유행 같다는 생각이다.

그에 대한 반론이다.

-나는 말쑥하고 균형 잡힌 시를 혐오한다. 안정감 있고 깨달은 자는 침묵하면 좋겠다. … 나는 내가 쓴 시에 관해서 말하기가 뭐하다. 낯설고 잘 모르겠고, 몰라서 쓴다.… ‘노력’해야 한다면 그때는 안녕.(김이듬, ‘시와 반시’여름호-현대시와 퇴폐)

-시단에서 유일하게 죄악인 것이 있다면 바로 다양한 꼴을 못 보아주는 태도이다. 시적으로 봐도 그렇고 생물학적 측면에서도 굉장히 위험한 태도다.… 자신 안에 스스로 잡종의 비율을 높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김언, ‘웹진 문장’ 10월호-우리 시의 다양성과 새로움)

-아름다움은 움직이는 거다. …최근 시들을 비판하는 이들이 논거로 삼은 자리는 절대로,항구적인 진리의 자리가 아니다. 차라리 최근 시들이 진리로 간주되어온 그 자리를 비판의 대상으로 겨누고 있다고 말해야 옳다. (권혁웅 비평집 ‘미래파’-2005년 젊은 시인들)

긍정적인/전향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경향을 바라보는 세 평자의 의견:

-황현산(고려대 불문) 교수는 “한국 현대시단의 양대 흐름을 형성했던 농경사회적 정서와 도시적 정서의 굳은 틈을 비집고 서울의 하위정서 혹은 지방도시적 정서들이 새로운 경향을 형성하는 듯하다”며 “하기에 따라서는 향후 2~3년 내에 우리 시단의 지형도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통의 문제와 관련, 그는 “승리한 자의 말은 상식에 근거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소통되지만, 억압 받는 자는 말 한 마디 하기도 힘들고 하더라도 타박 당하기 일쑤”라며 “하지만 그 말은 우리가 반드시 소통해야 할 말“이라고 말했다.

-2003년 김행숙씨의 첫 시집 ‘사춘기’(문학과지성사)의 해설에 이장욱(시인ㆍ소설가ㆍ평론가)씨는 “우리가 도달해가는 현대시의 어떤 징후”라는 조심스러운 표현을 쓴 바 있다. 이제 그 징후는 좋든 싫든 하나의 도도한 경향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최근 젊은 시인들의 경향이 우리 현대시의 다양성을 확장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지배적 경향을 형성할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최근 낸 비평집에서 이들 젊은 시인들의 경향을 ‘미래파’라 명명한 권혁웅(시인ㆍ평론가)씨는 “60년대의 김수영, 80년대의 이성복이 당대 시단에 충격을 준 것처럼, 이들 시가 낯설고 불편한 것은 새로운 미학과 세계관을 한 발 앞서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먼 훗날, 이들의 작품이 낡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다르게 말해서 이들의 작품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시의 분명한 대안이라는 것을 인정할 날이 올 것이다.”(‘미래파’ 171쪽)

이어서 기자는 두 편의 시를 예시하고 있다. 나의 독후감으론 황병승과 진수미의 예시된 시는 종류가 좀 다르다. 그것은 시가 그 독법에 있어서 어느 만큼의 논리를 허용하는가, 혹은 어떤 종류의 논리를 요구하는가에 달려 있다. 더불어, 시의 난해성이 시적 주체의 개성과 연관되는 것인지, 아니면 개별성 이전의 전주체성(presubjectivity)과 연관된 것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요즘 시'를 한번 읽어보시라. 그리고 해독/해석해 보시라. 나의 생각은 조만간 다른 자리에서 정리해두도록 하겠다.

▲ 커밍아웃 / 황병승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얼굴을 맨바닥에 갈아버리고
뒤로 걸을까 봐요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나의 항문이 도무지 혐오스럽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입술을 뜯어버리고
아껴줘요, 하며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 봐요

부끄러워요 저처럼 부끄러운 동물을
호주머니 속에 서랍 깊숙이
당신도 잔뜩 가지고 있지요

부끄러운 게 싫어서 부끄러울 때마다
당신은 엽서를 썼다 지웠다
손목을 끊었다 붙였다

백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도 됐다가 고모할머니도 됐다가…

부끄러워요? 악수해요

당신의 손은 당신이 찢어버린 첫 페이지 속에 있어요

▲ 그러다가 어느 날 / 진수미

유방은 부풀어오른다 터질 듯이 고요한 프로펠러
갈증을 느낀 비행선이 그림자를 몰고 나타난다.
보라색 태양일랑 내가 오려냈다오.

승냥이들이 거품 무는 파도가 쫓아오고
내장 없는 배의 항로를 걱정하는
어머니, 이 배에 앓는 항구가 누워 있어요.

사랑스런 임차인들아,
나는 그들에게 돌려줄 것이 있다오.

당신의 장기를 물어뜯는 거리의 개들
적선은 더 큰 바람을 부를 거예요.

소유를 짤랑이는 열쇠와 함께
집달리들이 득달같이 들이닥친다.
그들은 신부의 의상을 하고 있어요.

냉장고는 머리가 깨져 시큼한 국물을 지리는데
벌레들이 바람의 커튼을 흔들며 날아올라요.

뒤엉킨 서랍의
껍질 벗고 교미하는 실뱀 한 꾸러미,
그들은 신부의 의상을 하고 있어요.

05. 11. 01.

P.S. 다시 생각해보니까, '시의 날'은 5공때 문공부 장관을 지낸 정한모 시인의 '작품' 같다. 이어령 선생은 노태우 정권때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확실하진 않지만, 내 기억이 말해주는 건 거기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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